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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정보
상세설명
은적사(隱跡寺)는 서기 926년 신라 경애왕 3년에 창건된 절로서 은적사란 이름이 생기게 된 연유는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이 있다.
신라말 후삼국 때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자 신라 경애왕이 고려 왕건에 구원을 요청했다.
구원병과 대구에 온 왕건은 팔공산 동화사 방면으로 가다 산기슭에서 견훤의 군대에 포위를 당해 전멸의 위기에 처했다.
이 때 신숭겸의 계책으로 탈출한 왕건은 현재 은적사 대웅전 우측의 대나무 숲속에 있는 자연동굴에 숨었다.
이 굴에서 3일간 머물고 현재 안일사와 임휴사에서 쉰 왕건은 김천 황악산을 경유해 철원으로 회군했다.
그 뒤 왕위에 오른 왕건은 자신이 3일간 숨어있으면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 그 굴이 있는 곳에다 당시의 고승 영조대사에 명해 숨을 은(隱)자, 자취 적(跡)자로 은적사라는 절을 짓게 했다. 이것이 은적사가 생긴 연유이다.
천년 고찰인 은적사 경내에는 대웅전, 요사채, 삼성각이 들어서 있으며 차고 깨끗한 약수가 있어 등산객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또 현재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불교 홍포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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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새소식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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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적사 불교대학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22
은적사 불교대학은 올바른 신행활동을 하실 수 있도록 불교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울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워서 참된 불자로 거듭나는 좋은 인연을 맺으시기 바랍니다.
수강안내
강사 : 법현스님(전 동화사 강사)
시간 : 금요일 오후 1시 ~ 3시
장소 : 설법전
회비 : 5만원(교재비 포함)
접수처 : 은적사 종무소 (053) 653-1572 -
- 은적사 법회안내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22
은적법회
초하루 3일 신중기도 법회
일시 : 매달 음력 초하루 ~ 초삼일
보름 포살법회
일시 : 매달 음력 15일 오전 10시장소은적사 큰 법당
관음재일 (인등기도) 법회
일시 : 매달 음력 24일 오전 10시장소은적사 큰 법당
지장재일 기도법회
일시매달 음력 18일 오전 10시
합창단 연습 (찬불가 연습)
일시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
어린이 법회
은적사 룸비니 유치원에서 2째, 4째 일요일에는 어린이 법회가 있습니다.
관심있는 유치부 초등부 친구들은 오전 10시까지 룸비니유치원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법회시간은 10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입니다.
차량운행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유치원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053-621-1003)
많은 참여 부탁 드립니다.
매년 연례 기도
정초기도음력 1월 5일 ~ 1월 11일사월초파일음력 4월 7일 ~ 4월 8일백중기도음력 5월 26일 ~ 7월 15일동지기도양력 12월 20일 ~ 12월 22일성도재일음력 12월 7일 ~ 12월 8일 -
- 은적사의 유래 및 창건역혁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21
은적사의 유래
비슬산 은적사는 신라 55대 경애왕 3년<고려 태조8년>에 창건된 유서깊은 천년고찰로써 대구지역 불자들의 정신적인 귀의와 기도처로 유명하다.
후삼국시대 말 후백의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여 국운이 위태롭게 되자 경애왕은 고려왕건에게 청병하였다.
왕건은 구원병을 이끌고 달구벌(현 대구)에 입성하여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대패한 후 왕건은 명장 신숭겸의 지략으로 구사일생 비슬산으로 피신하여 이곳 은적굴에 3일간 숨어 지냈다.
마침 3일간 짙은 농무로 굴의 자취를 찾기 힘들었고, 굴의 입구는 거미들이 줄을 쳐주어 안전하게 피신한 왕건은 훗날 김천 황악산을 경유해 강원도 철원으로 회군하였다.
그 뒤 왕위에 오른 왕건은 자신이 숨어 3일간 보낸 굴이 있는 곳에 당시의 고승 영조대사에게 명하여 이곳에 사찰을 건립하고 자신이 숨어 생명을 건진 곳이라하여 숨을 은(隱)자, 자취 적(跡)자로 명명하였고 이후 은적사는 많은 불자들의 소원을 성취한 기도영험사찰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은적사 창건연혁
비슬산 은적사는 신라 55대 경애왕 3년(서기926년)에 창건된 유서깊은 천년고찰로써 대구지역 불자들의 정신적인 귀의와 기도처로 유명하다.
후삼국시대 말 후백의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여 국운이 위태롭게 되자 경애왕은 고려왕건 에게 청병하였다. 왕건은 구원병을 이끌고 달구벌(현 대구)에 입성하여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대패한 후 왕건은 명장 신숭겸의 지략으로 구사일생 비슬산으로 피신하여 이곳 은적굴에 3일간 숨어 지냈다. 마침 3일간 짙은 농무로 굴의 자취를 찾기 힘들었고, 굴의 입구는 거미들이 줄을 쳐주어 안전하게 피신한 왕건은 훗날 김천 황악산을 경유해 강원도 철원으로 회군하였다. 그뒤 왕위에 오른 왕건은 자신이 숨어 3일간 보낸 굴이 있는 곳에 당시의 고승 영조대사에게 명하여 이곳에 사찰을 건립하고 자신이 숨어 생명을 건진 곳이라하여 숨을 은(隱)자, 자취 적(跡)자로 명하였다.
그후 조선 이조 4년(서기1644년) 취감스님께서 재창하고 1947년 해응스님과 1978년 종원스님이 중건중수하였으며, 1981. 1월에 장윤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심어주고자 1982. 2월에 은적사 부설 룸비니유치원을 설립하였고 1985년 사요스님이 유치원 확장공사를 1992. 3월로 3학급이던 유치원을 7학급으로 늘렸고, 요사채와 후원채를 중건하고 도량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1994년 법민스님이 도량정비사업과 컴퓨터 행정업무를 일신하여 정보화에 주력하였으며, 1998년 회룡스님, 2003년 허운스님과 2006년 ∼ 2014년 허주스님께서 전주지 스님들의 유지를 받들어 청소년 선도와 어린이 포교에 매진하였다.
2014년 12월에 원일스님이 부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많은 불자들의 소원을 성취한 기도영험사찰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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