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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을 즐겨 찾는 이들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찰이며, 해발 629m의 기암절벽 정상에 위치한 연주대와 함께 관악산의 명소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연주암은 677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집니다. '연주암중건기' 등 자료에는 의상스님이 관악산에 의상대를 세우고 수행하였으며, 그 아래에 관악사를 창건하였다는 내용이 전해지나 현존하는 유물이나 의상 관련 문헌 등에서 이를 입증할 만한 자료는 발견된 게 없습니다. 다만 현존하는 3층 석탑이 고려 후기에 속하는 양식임을 볼 때, 창건 연도가 꽤 오래된 고찰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연주암이라는 사찰 이름에 대해서도 두 가지의 유래담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고려 말 충신들과 관련한 내용입니다. 고려 말 충신이었던 강등룡, 서견, 남은진 등이 고려 왕조가 멸망하자 산에 은신하였는데, 그때 이들이 찾은 곳이 관악산 의상대였으며, 멀리 송도를 바라보며 고려 왕조를 그리워했으므로 연주대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입니다.
두 번째는 조선 태종의 두 아들과 관련한 내용입니다. 태종의 맏아들인 양년대군과 둘째인 효령대군은 아버지 태종이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 즉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유량길에 나섰다고 합니다. 두 대군은 관악사를 찾아와 수행을 하며 왕위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려고 하였으나 그럴수록 더욱 힘이 들었고, 관악사의 원래 위치에서는 왕궁이 멀리 보였으므로 40칸 규모의 건물을 지어 현재의 위치로 거처를 옮겼다는 것입니다. 이후 사람들이 두 대군의 심정을 기리는 뜻에서 의상대를 연주대로, 관악사를 연주암으로 각각 부르게 되었다는 설입니다.
이러한 유래담은 사찰의 이면에 깃든 소중한 자료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위의 두 이야기는 '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될 당시까지도 관악사라는 사찰명이 존속되고 있었다는 사실로 볼 때, 모두 그대로 믿기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사찰 이름을 바꾼 누군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으며, 이는 연주암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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