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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우리의 숨결! 고려선원 청평사
청평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新興寺)의 말사(末寺)이며 춘천을 대표하는 사찰입니다. 소양호 한쪽에 우뚝 솟아 있는 오봉산(과거 청평산ㆍ경운산) 기슭에 자리했으며 고려 광종 24년(973년)에 창건되었으며 세 번의 중창과 조선 명종 때 보우대사가 중건하여 대사찰이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거의 소실된 것을 1970년대에 전각들을 다시 짓고 회전문을 보수하고 범종각과 요사채를 앉혔습니다. 천년이 넘은 고려선원(高麗禪園)의 정취와 흔적을 느낄 수 있으며 청평사를 포함한 주변 일대가 명승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가장 오래된 고려정원 영지(影池)는 일본이 자랑하는 교토(京都) 사이호사(西芳寺)의 고산수식(枯山水式) 정원보다 200년이나 앞선 정원입니다.
청평사의 현존건물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극락보전, 삼성각, 회전문(廻轉門, 보불 제164호), 관음전, 나한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문화유산으로는 공주와 상사뱀 설화, 강원도문화재자료 제8호인 삼층석탑(공주탑)을 비롯하여 문수원기, 진락공 부도(眞樂 公浮屠), 환적당 부도(幻寂 堂浮屠), 세향원 등이 있습니다. 다양한 교통수단 중 특히, 소양강댐에서 배를 타고 방문할 수 있어 일명 ‘섬 속의 절’이라고도 불리며 춘천의 필수 여행 코스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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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새소식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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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평사종합안내도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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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평사 유무형 문화유산 배치도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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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평사 공주와 상사뱀(공주설화/公主說話)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5-25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 태종의 딸인 평양공주가 있었는데 청년이 그를 사랑하였다고 한다.
이에 황제는 일반 백성인 청년이 황제의 딸을 사랑한다는 노여움을 받아 처형되었다. 청년은 죽어서 뱀으로 변해 공주의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상사뱀의 이름은 이런 이유로 생기게 되었다). 황제는 점술가와 의원을 불러 치료를 부탁하였으나 모든 방법이 듣지 않았다. 또한 중국의 여러 사찰을 돌며 부처님께 빌어 보았으나 효험이 없자 신라에서 온 스 님에게 말을 듣고 신라의 산하를 두루 다녔다.그렇게 다니던 중에 청평사에 도착한 공주는 공주굴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아침 종소리를 듣고 뱀에게 절에 가서 밥을 얻어 올 테니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동안 공주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던 상사뱀이 공주의 몸에서 떨어져 공주는 절에 올라갔다. 마침 절에서는 가사불사를 하고 있었는데 공주는 공주탕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가사에 서너 바늘을 뜬 다음 법당에 들어가서 염불을 하고 있었다.
기 다리다 지친 상사뱀이 공주를 찾아 정문을 들어가려 할 때 뇌성벽력과 함께 소나기가 쏟아져 물에 떠내려가고 말았다. 후세 사람들은 이 문을 회전문이라 부르게 되었다. 공주가 밥을 얻어 동굴로 돌아와 보니 상사뱀이 죽어 폭 포에 떠 있었다. 공주는 시원하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하여 청년의 화신인 상사뱀을 묻어 주고 이 사실을 본국에 알렸다.
당나라 태종은 재상 저수량에게 공주의 혼인 때 쓰려고 비축해 두었던 금덩어리 세 개를 주어 화려한 법당 을 세우게 하였다. 저수량은 금 한 개로 법당과 공주 이궁 및 저수량 봉교서비를 세우고 또 한 개는 장차 중건할 때 쓰라고 어디에 묻었으며 나머지 한 개는 공주의 귀국 여비로 주고 떠났다. 공주는 구성폭포 위에 삼층석탑을 세 워 부처님 공덕을 찬양하고 귀국하였다. 그런 이유로 이 탑을 공주탑이라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신라와 당나라는 급속히 친밀해져 삼국통일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한다. 이외 다양한 내용으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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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평사 삼층석탑(淸平寺 三層石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8호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5-25
청평사 입구의 구송폭포 동북쪽 환희령 위의 자연암반 위에 건립되었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8호(1984.6.2. 지정)이다.
탑의 구조는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노반 이상의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3층 옥개석은 계곡에서 찾아 복원하였고, 3층 탑신석은 새로 만들어 얹었다. 2중기단의 3층석탑으로 상층과 하층의 기단에는 우주와 탱주가 2:1로 새겨져 있다. 각층의 탑신석에 는 우주를 모두 새겨 놓았고 옥개받침은 모두 4단이다. 3층 옥개석 윗면에 찰주를 세웠던 구멍이 남아 있다.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옥개석의 추녀선이 위로 올라가 날렵한 감을 준다. 총높이는 3.1m이다.청평사 창건설화로 전해오는 공주설화로 인하여 당나라 태종의 딸인 평양공주가 건립했다고 하여 공주탑이라고도 한다.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청평사 창건시기로 볼 때 고려초에 건립된 석탑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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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평사 공주굴(公主窟)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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