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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새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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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경사 환지본처(還至本處)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30
도난당했던 불교문화유산 32점이 마침내 제 자리로 돌아간다
문화재청은 1988년~2004년 사이 보경사의<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와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 등 전국 14개 사찰에서 도난되었다가 되찾은 불교문화유산(불화 11점, 불상 21점) 총 32점을 대한불교 조계종에 돌려줬다. 이 유산들은 지난 2020년 1월경, 경매사에 불화를 출품해 처분하려다 발각된 피의자의 자택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지난 5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불교문화유산 32점의 환수를 부처님께 고하는 환수 고불식(告佛式)을 봉행했다.
포항 보경사는 지난 1999년 팔상전과 명부전에서 각각 도난당했던 <영산회상도>와 <지장보살도> 불화 2점이 7월 25일(화) 부처님의 가피로 24년 만에 원 소장처인 보경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제작연도는 두 점 모두 1778년으로 추정되며 18세기 후반 불화의 전형적인 채색법과 세련된 필치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에 환수된 <영산회상도>는 향후 문화재 지정 절차를 밟아 보경사의 <팔상도>와 함께 일괄 보물로 신청할 예정이다.
도난 불교문화재 피해사찰협의회와 불교문화유산환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이신 포항 보경사 주지 탄원스님은 데일리 임펙트에서 "이번 도난 성보 32점의 환수는 종단과 문화재청, 경찰청 등 여러 기관의 노력과 의지를 모아 이루어낸 값진 성과"라면서 “도난당한 성보가 마침내 환지본처(還至本處)하는 뜻이 깊으며, 종단 소임자이면서 동시에 도난 피해 사찰 중 하나인 보경사의 주지로서 더욱 감개무량하다"고 전했다.
문화유산은 제 자리에 있을 때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 특히 예경의 상징인 불교 성보들은 사찰에 있을 때 제대로 된 가치를 지닌다.
포항 보경사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조선 1778년 비단에 채색220×242cm
도난일 1999.05.14
포항 보경사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
조선 1778년, 비단에 채색, 158.9×180cm
도난일 1999.05.14 -
- 보경사 寶鏡寺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30
천수백년 동안 붓다 진리의 보배로운 거울을 닦아온 가람
603년(진평왕 25) 대덕 지명법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
『內延山寶鏡金堂塔記』1588년 사명대사
『寶鏡寺事蹟』1792년 회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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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경사 서운암 동종 寶鏡寺瑞雲庵銅鐘 현종 8년(1667)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30
보물 제 11-1호
2000년 2월15일 보물로 지정
총 높이 54.1cm, 종신 높이 42.cm, 종입 지름 41.4cm, 종입 두께 4.5cm.
조선 숙종 때인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반에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승장僧匠 사인思印, 태행太行 등이 주조하였다.
사인은 뛰어난 승장으로 전통적인 신라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기법으로 사 인비구가 만든 종 중에서 조성연대가 가장 앞선 것으로, 사인비구의 초기제작기법 을 볼 수 있다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는 한국 종의 가장 큰 특징인 음통音筒이 있는 전통형 종들이다. 사인의 종들은 그의 청년기(1660년대), 장년기(1670~1700년), 노년기(1701~1711년)에따라 조금씩 변화되었는데, 전체적 으로 조선후기의 외래형 종들보다는 전통을 고수하면서 음통대신 중국종의 특징인 쌍룡의 종뉴나 띠장식이 수용된 예도 있다.
포항 보경사 서운암 동종은 고려후기 종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하동 쌍계사 동종 (1641년)과 종신형, 입상화문대와 상대,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을 도안화한 원문범자의 시문위치등이 매우 유사하다.
꼭대기에는 종을 메다는 데 사용하는 둥근 고리가 있으며, 견대 어깨 부분에는 40개의 연꽃잎을 세워 넓은 띠를 이루었으며, 각 잎마다 인물상을 안치했다.
유곽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9개의 돌기대신 5개의 돌기를 설치하였다.이 견대 아래로는 줄기가 위 아래로 뻗어나가며 둥그런 구획을 짖고 그 내부에 길상을 상징 하는 보상화 무늬를 새겨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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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경사 괘불탱 (1725년)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30
보물 제1609호
2000년 2월 23일 보물지정
높이 1,051cm, 폭 516.5cm
이 괘불화의 본지는 마본채색麻本彩色이며 삼베 16폭을 옆으로 잇대어 한 화폭을 이루고 있다. 화면 가장자리 상단과 좌우 변에는 범자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고, 그 외곽에 보상당초 연속문을 그렸다. 중앙에는 10m에 이르는 대형의 화면에 연꽃 줄기를 든 보살형의 여래만을 단독으로 크게 부각시켰는데, 의균義均의 작품 중에서 최대의 역작이다. 화관은 합장형 5불을 중심으로 보주, 영락, 서조를 장식하여 화려하며, 장신구와 가사의 장식화문등에 금박이 확인된다. 전반적으로 원만한 상호 와 건장한 체격, 색면과 문양의 조화 등이 뛰어나다. 5여래가 표현된 화려한 보관 과 연꽃을 들고 있는 괘불도상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 경상도 지역에서 유행한 괘불형식으로 괘불도상의 계승을 연구하는데 의미있는 작품이다.
숙종34년(1708)에 조성되었지만,17년 뒤인 영조 원년(1725)에 중수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의식이주의 불교로 정착함에 따라 불화는 전각에 봉안되어 의식의 대 상으로 정착되었다. 조선전기까지 후불화의 주류를 이루던 벽화는 거의 사라지고 걸개 불화인 탱화를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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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경사 적광전비로자나후불탱 寶鏡寺 寂光殿毘盧舍那後佛幀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30
보경사 적광전비로자나후불탱 寶鏡寺 寂光殿毘盧舍那後佛幀
영조18년(1742)
보물 제 1996호 / 2018년 8월 21일 보물지정
길이 275.5cm, 폭 272.4cm
1742년(영조18, 임술) 5월에 조성되었고 마본홍지摩夲紅地에 백선으로 표현 한 선묘불화로서, 16세기 조선시대 민중불화에 그 연원을 두며 조선후기까 지 지속적으로 사용된 화법이다.
화면 중앙에 낮은 수미단 위 연화좌에 지권인을 맺은 비로자나불이 결가부 좌하고 비로자나불 앞에 ‘주상전하수만세主上殿下壽萬歲‘왕비전하수제년王妃 殿下壽齊年’ ‘세자저하수천추世子邸下壽天秋’ 라고 쓰인 원패가 세워져 있는 것이 그려져 있다. 본존 좌우에는 문수, 보현 보살이 시립하고 있고, 그 바 깥에 천왕상이 2위씩 배치되어있다. 이 불화 조성의 목적이 왕실을 축수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지방관과 양반 사대부들의 수탈과 억압으로부터 사찰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숨어있다.
조선후기 경북지역에서 활동한 불화승 뇌현雷現, 밀기密機, 석잠碩岑3명이 다. 보경사 말사인 서운암에 수화승인 뇌현스님 승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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