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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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중턱에 위치한 해운사(海雲寺)는 신라말 도선 국사가 개창하면서 대혈사(大穴寺) 라 하였다. 창건 이후 수차에 걸친 중건 . 중수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채 오랫동안 복구되지 못하다가 1925년 철화 스님이 사찰을 복원하면서 사명을 해운사(海雲寺) 라 하였다.
현 건물은 1978년부터 1984년에 걸친 현 주지 성화 화상에 의하여 중수되었는데, 이때는 고(故)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금오산과 해운사를 둘러보고 해운사 중수를 위한 특별헌금을 희사하여 대웅전, 삼성각 등이 복원되었고, 요사 제하당(霽霞堂) 은 성화 스님을 비롯한 신도 성금으로 중건되었다.
대웅전은 정면 3간, 측면 2간의 팔작지붕, 총 13평이다.
그리고 삼성각은 정면과 측면 각 1간에 총 2.5평이며, 내부에는 산신탱(111 X 91cm, 1979년)과 독성탱(111 X 91cm, 1979년)을 봉안하였다. 제하당은 정면 5간,측면 2간이며, 내부에는 석가여래좌상(58 X 41cm) 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해운사 뒤편에는 도선굴(道詵窟) 로 전해지는 석굴이 있는데, 후에 야은 길재(野隱吉再) 가 속세를 피해 이곳에서 은거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권 29에는 굴의 넓이가 16척, 깊이 24척, 높이 15척이라 하였고, <<일선지(一善誌)>>에는 도선이 거처하던 굴이라 하였으며, 임란 당시에는 인동(仁同) 과 개령의 백성 500~600명이 이 석굴에 피난하여 적의 피해를 모면하였다고 한다. 이 석굴은 천연동굴이며 길이 약 7.2m, 폭 약 4m, 높이 약 4.5m로서, 크기는 약 16평 정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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