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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설명
옥련사(玉蓮寺)는 전남 강진군 강진읍 덕남리 기룡 마을 뒤 만덕산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절이다. 1947년 이후 1951년 11월 능화(能華)스님과 인근 신도들의 노력으로 백련사(白蓮寺)의 소속이던 송광암(松廣庵)터에 초가집 두칸을 지어 강진 대구면 용운리에 있는 정수사(淨水寺)에서 목조여래좌상 1구를 옮겨와 봉안하면서부터 법등을 밝혀오고 있다.
옥련사를 처음 개창하면서 정수사에서 옮겨온 목조불상에서 1991년 5월 복장이 확인되었다. 복장을 확인한 결과 1684년명의 불상조상기문(佛像造像記文)과 여러권의 경전류 등을 비롯하여 복장물이 나왔다. 사찰 경내에는 층층이 석축을 쌓았고 1684년 제작된 목조여래좌상과 연대불명의 석조불좌상 등의 문화재와 81년에 중건한 대웅전 삼성각, 용화전 및 91년 건립한 옥련선원, 종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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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새소식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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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련사 목조여래좌상 (지방유형문화재 제188호)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5-13
이 불상은 현재 옥련사 법당(대웅전)안에 봉안된 3존불 중 본존불이다. 이 불상은 옥련사에 원래부터 봉안된 것이 아니고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에 있는 정수사에서 한국전쟁시기인 1951년에 옮겨온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1991년 5월, 강진군과 강진향토사가에 의해 복장물이 공개된 바 있다. 이 불상의 양식을 살펴보면 상호는 아무런 개성이 보이지 않는 4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고개는 앞으로 숙이고 있는데 그 각도가 많이 수그린 편이다. 머리는 나발이나 육계와 거의 구분되지 않고 전면에 계주가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이마에 백호가 보이며 눈은 눈꼬리가 약간 치솟았다. 법의는 두툼한 통견이나 오른쪽 어깨에 걸친 법의자락이 팔굽까지만 내려왔으며 그 이하는 반나로 처리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시대 후기까지 연결되는 법의의 양식임을 알 수 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는데 왼손은 별도로 만들어 끼운 것이며 왼손의 손목 끝부분에 `석가`라 묵서하여 이 불상이 석가여래임을 표시하고 있다. 앉은 자세는 오른발이 왼발위로 올라오는 항마좌를 취하고 있고 어깨선은 거의 각을 이루고 있어 경직된 느낌을 주고 있다.
복장 유물은 장방형의 한지로서 가로 75.8㎝, 세로 77.7㎝이며 행서로 묵서한 것이다. 내용은 불상을 조성하게 된 배경과 당시 참여했던 시주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기문의 내용을 보면 1684년 봄에 불상조성을 시작하여 그해 겨울 11월 18일에 완성하였다. 그런데 이 불은 16나한전에 보신 16나한을 조성하면서 이 불상도 함께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 조성기는 당시 주지였던 천기(天機)스님이 쓴 것이다. 불상조성문과 함께 여기에 딸린 복장유물이 함께 발견되었다. 이 목조여래좌상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약 90년이 지난 시대로서 이제 서서히 전란의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면서 다시 기운을 찾는 그러한 시기에 해당된다.
따라서 각 사찰에서는 많은 불사와 함께 불상을 조성하고 있을 때다. 옥련사 불상 역시 비록 조선시대 후기에 속한 불상이긴 하나 그 조성연대를 알 수 있고 또 그 시대의 불상양식의 표준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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