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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는 남해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해발 650m의 호구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남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절인 용문사는,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호구산 계곡의 맑은 물로 인해 여름에도 추위를 느낄 정도입니다. 요즘에야 많이 유명해졌지만 한때 호구산은 소위 산꾼들만 아는 '숨어있는 산' 이었습니다. 산 자체는 크지 않지만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흡사 원시림을 생각나게 하는, 산 다운 산입니다.
용문사는 원효대사로부터 시작합니다. 원효대사가 금산을 찾아와 보광사를 짓고 산명도 보광산이라 한 이후 호구산 첨성각을 세우고 금산에 있었던 보광사를 이 곳으로 옮겼다고 전해집니다. 용문사는 보광사의 후신으로 등장하는 사찰인 셈입니다. 다른 설화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현종 원년(1660)에 남해현의 남해향교와 이 절의 입구가 맞닿아있으니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백월당 대사가 남쪽에 있는 용소마을 위에 터를 정하고 용문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백월당 대사는 스님들과 함께 먼저 선당양당을 윤색하였으며 성암이 봉서루를 창건하였고 태익이 낙성했다고 합니다. 이밖에 나한전은 보휘, 명부전은 설웅, 향적전은 인묵, 첨성각은 설잠, 천왕각은 유탁, 수각정은 각오가 낙성한 것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어 숙종34년(1708)에는 염불암을 중창했습니다. 관음, 백운 두 암자는 마을 사람들의 발원으로 축조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않습니다. 후에 백련암을 절의 서쪽에 신축했습니다.
용문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당의 뜻을 받들어 승려들이 용감하게 싸운 호국사찰이기도 합니다. 그 증거물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용문사에 보관 중인 삼혈표라는 대포, 그리고 숙종이 호국사찰임을 표시하기 위해 내린 수국사 금패가 그것입니다. 조선 숙종(1675~1720)은 용문사를 수국사로 지정하고 왕실에 용문사 경내에 축원당을 건립하고, 위패를 비롯하여 연옥등, 촉대, 번 등을 하사했습니다. 그러나 연옥등, 촉대 등은 일본 강점기에 없어지고 지금은 번과 수국사 금패만 보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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