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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정보
상세설명
지리산 청계사는 진주에서 서쪽으로 17km, 지리산 천왕봉에서 동쪽으로 17km 그 중간지점인 오대산 남쪽에 위치하며, 주위에 600여m 5봉 속에 해발 300m 지점에 물 좋고 공기 맑은 계곡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주지스님께서 1993년 천하의 길지인 이 터를 보고, 한눈에 반해 터를 마련하고, 2005년도에 대웅전과 문수원 보현당을 지어 대한불교 조계종에 등록하여 청계사라 하였으니 연륜은 길지 않지만 청정한 불국토 도량을 가꾸고 있습니다.
대장전에는 경상남도 지방문화재 6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도량내 시원하고 청정한 계곡은 청계사 제 1 비경이라 할 만큼 아름답고, 맑은 공기와 티타늄 원광수인 1급수의 깨끗한 물이 함께하고 있으며, 절 주변에 편백숲길과 대나무숲길, 계절에 맞춰 각종 산나물 채취도 가능하고, 작설차 법제 체험과 명상이나 좌선을 통한 휴식과 힐링을 할 수 있는 청정도량입니다. -
소개·새소식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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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청계사 기도와 법회 안내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6-03
법회 및 기도 안내
매월 초하루 기도 법회 (매월 초하루 오전 10시)
보름 법회 (매월 음력 15일 오전 10시)
특별기도
년간법회 : 매년 정초법회 3일~9일간
년간 방생법회 1, 9월 중 년 2회
부처님오신날 봉축법회
우란분재 법회 지장기도
동지 기도
부도탑재 : 매년 음, 10월 13일
경하노스님 탑재일 : 음, 8월 19일(해인사)
영월노스님 탑재일 : 음, 7월 21일(청계사)
고봉큰스님 탑재일 : 음, 2월 11일(청계사)
기도문의 종무소 055-882-1013 / 010-8509-1013
동참금 입금계좌 : 농협 351-1128-6607-93 청계사 -
- 지리산청계사 성보문화재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6-03
청계사는 대방광불화엄경소를 비롯하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6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소 - 전적류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54호 지정일 2014.4.
권수정혜결사문 - 전적류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53호
몽산화상육도보설 - 전적류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55호
법화염험전 - 전적류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56호
정토보서 - 전적류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57호
현행서방경 - 전적류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58호
대방광불화엄경소
해동서상율맥의 경하 노스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대방광불화엄경소'는 119권40책의 목 판본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557년(명종11) 문정왕후와 보우선사가 국난을 막기위해 승과를 부활하고 그 교재로 '대방광불화엄경소'를 황해도 서흥 고덕산 귀진사에서 판각하였다. 귀진사판 '대방광불화엄경소'는 임진왜란으로 거의 다 소실되었고, 현재 청계사에 유일하게 남아있다.
대방광불화엄경소는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대방광불화엄경>을 당나라 징관이 풀이하고 송나라 정원이 알기 쉽게 풀이한 해설서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은 법화경과 더불어 한국 불교사상을 굳건히 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청계사에서 보관중인 대방광 불화엄경소는 임진왜란 이전 시기에 간행된 황해도 귀진사본으로 119권40권책으로 구성 되어 있다.
권수정혜결사문
고려 중기 승려인 지눌이 승려들에게 선정과 지혜를 함께 할 것을 강조하기 위해 지은 결사문이다. 이 결사문은 조선 선조41년(1608)에 송광사에서 간행되었다.
권수정혜결사문은 안으로는 결사적 수행을 하고 밖으로는 사회적 통합을 이끌려고 한 고 려의 시대정신을 기록한 중요한 책이다.
몽산화상육도보설
원나라의 승려 몽산덕이가 대중을 모아 육도윤회를 설법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육도란 중생이 살아 생전에 지은 업에 따라 가게되는 <천도>, <인도>. <수라도>,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의 여섯 세계를 의미한다.
몽산화상육도보설은 육도윤회를 벗어나 부처의 길에 오를 것을 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화영험전
<묘법연화경>을 늘 생각하고 소리내어 읽고 필사하고 논함으로써 얻게 되는 갖가지 영험담을 고려 후기 승려 요원이 당나라 혜상의 <홍찬전>, 송나라 종효의 <현응록>, 고려시 대의 <해동전홍록> 등에서 모아 수록한 2권1책 분량의 책이다.
정토보서
아미타불을 믿고 따름으로써 정토의 업을 닦고 매일 일과로 염불을 하면 정토에서 태어 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경전이다. 청계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정토보서>는 백암 성총이 간행한 197권의 불서 중에 징광사에서 간행한 것이다.
현행서방경
고려 충렬왕 24년(1298)에 원참이 저술한 수행 의식집으로 현신으로 정토왕생 할 것을 지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 세종 30년(1448), 중종 26년(1531), 숙종 36년(1710)에 각각 간행되었으며 현재 가장 널리 유통되고 있는 것은 1710년 본이다. -
- 지리산청계사 선대선사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6-03
景霞 大宗師 행장
1869년 7월 2일
경북 고령군 임천면 신기동에서 수원백씨 가문에서 부친 白一彩님의 넷째로 출생하시었다.
1884년 16세 되시던 3월 15일 가야산 해인사에 화상을 은사로 출가 得度하시고 법명은 載英이시었다.
1885년 17세 되시던 4월 8일 해인사 백련암에서 海耕화상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시다.
1986년 18세부터 해인사 강원에서 龍溟, 無碍, 應海강백으로부터 사집, 사교, 대교과를 수료하고 수의과로는 법화경과 범망경을 이수하시었다.
1901년 33세부터 해인사 선원에서 수선 안거 이래 30 안거를 성취하시다.
1918년 50세에 수도암 선원에 조실로 취임하시다.
1922년 54세에 동화사에서 대구시 포교사로 임명 하시다.
1927년 59세에 해인사 주지에 취임하시다.
1928년 60세에 종회의원이 되시다
1928년 60세부터 10년간 해인계맥인 龍城律師에게 傳戒받으시고 법호를 景霞라 하셨으며 그 후 갈마, 교수, 전계사에 취임하여 많은 계단을 設施하셨고, 70세에 도원화상에게 계맥을 전하시었다.
1933년 65세부터 해인사, 직지사, 동화사, 송림사, 유가사, 호국사 등에서 자비도량참법산림, 화엄산림, 정토산림 등을 회주로 주재하시다.
1944년 76세에 대중의 권청으로 해인사 주지에 재임하시다.
재임기간중 전임자의 부체를 모두(8천원) 상환하였고, 은행부체도(2천3백원) 해결하였고, 거창에 유실되려던 땅도 찾아서 해인사 소유로 하였고, 그외 명월당, 국일암, 극락전, 보수 및 대적광전 앞 석축과, 관음전 현당의 축대도 수축하였다.
1957년 89세 8월 19일 해인사 국일암에서 입적하시니 세수 89세요 법랍 73세시다.
경하 종사께서는 당대 제일가는 律師요, 布敎師요, 法師요, 禪師이니 理事에 능통하였고 三藏을 廻容하였으니 宗匠으로서 당대 우뚝하였다. 경하종사께서는 臨終을 앞두고 杲峰스님께 傳法하시고 임종게를 남기시었다.
景霞大和尙 임종게
人世百年內 사람이 세상에서 백년을 살아도
別離無送迎 죽을 때는 보내거나 마지하는 이 없네,
畢竟了此生 필경에는 모두 이생을 마치고
孤輪獨照明 외로운 달처럼 홀로 비칠뿐이네.
영월선사 행장
영월선사는 1907년 정미년 음, 4월 8일 전남 영광군 백수면 논산리 224번지에서 부친 丁京三님과 모친 金姓女 사이에 막동으로 출생 하시다. 본명은 丁還甲 이며 본관은 靈城이시다.
1926년 19세 시에 전주 威鳳寺로 발심 출가하시다. (당시 위봉사는 현 금산사의 본사임)
1930년 4월15일 23세 시에 전주 鳳棲寺에서 普門禪師를 은사로 월운계사로부터 사미계를 수지하시고 法名을 尙基라 하시었다.
1932년 恩師이신 普門선사를 따라 해인사에 入房하여 經學을 배우시다.
1937년 海印寺에서 보탁스님을 계사로 具足戒를 수지 하시다.
1938년 해인사에서 보탁스님을 계사로 菩薩戒 수지 하시고 법호를 迎月이라 하시다.
1938년부터 49년간 海印寺 일생 수행 근본도량으로 정진하시면서, 간혹 수도산 수도암 선원, 속리산 복천선원, 지리산 벽송선원, 팔공산 성전선원 등 전국 소 선원에서도 정진하시었다.
특이한 것은 해인사 원림대중 처소에서 항상 낮은 후원 소임인 원주 도감 소임만을 도맡아 하시고, 그 이상의 소임을 맡거나, 대중공사에 나서거나, 법상에 오르거나, 그 많은 결제 해제때 대중 사진 한번 찍은 일 없이 일체 상을 낸 일이 없이 보살의 수행으로 일관하시다.
1950년 한국동란을 맞아 최후까지 해인사를 지키시었고, 그 후부터 희랑대와 지족암에서 수행하시다. 만년에 지족암에 계실 때 손수 땔감을 마련하시려다 다리를 다쳐 극락전으로 거처를 옮겨 노후 정진하시다.
1987년 7월 21일 새벽2시 세수 80세 법납 61세를 1기로 열반에 드시니 스님은 부처님과 같은 날 나시고 같은 나이에(舊典에 세존은 19세 출가 12년간 고행성도 49년 설법 80세 열반으로 되어있음) 출가하시어 12년간 경학을 배우시고 49년간 수행자의 삶을 보이시고 80세에 열반에 드셨으니, 스님은 前世로부터 부처님 행장을 닮은 수행자가 되시려는 자기 誓願이 堅固하셨는지? 아니면 相으로 가득한 末世에 부처님이 化現하시어 우리에게 菩薩의 삶을 다시
보이심인지? 의심케 하는 수승한 삶을 사시다.
1987년 7월 23일 해인사 九光樓 앞에서 일타스님이 기록한 臨終偈를 걸어놓고 山中葬으로 永訣式을 올리고 해인사 蓮花臺에서 법답게 茶毗하니 맑은 연기가 가야산을 덮으며 온 산림이 그대로 법신 사리가 되시다.
1987년 음, 9월 8일 성주 관운사에서 49재를 올린 후에 영월선사의 문하가 모두 모여 선사를 정점으로 하는 문도회를 결성하였으며 그 문장에는 고봉스님이 되시고 8명의 문도 중심을 선임하여, 매년 음, 7월 21일 제사 후 문도회일로 정하고, 영월선사의 수행 정신(참선수행, 하심수행, 무소유정신) 을 되새겨 문도는 서로 탁마 장양하기로 하였다.
당시 상좌는; 고봉, 등각, 금해. 당시 손상좌; 지산, 일화, 정일, 청파, 불암, 초암, 법산, 남강, 대안, 상락, 진오, 성종, 성호,성보, 설봉. 당시 증손상좌; 효담, 효신, 효덕
2007년음, 7월 21일 문도회에서 영월선사 제사를 관운사 한 곳에서 20년 이상 봉행 하였으니 차후로는 徒弟 寺刹에 제사를 지내다가 탑전 다례로 올리기로 협의 하였다.
2009년 음, 2월 21일 지리산 청계사에 영월선사의 부도탑을 세우고 처음 다례제를 올렸다.
杲峰堂 慧雄大禪師 行狀(고봉당혜웅대선사 행장)
큰스님께서는 1931년 10월 23일 충북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에서 全州李氏 가문에서 탄생하셨으며, 부친은 李鍾德 이시고 무친은 慶州金氏 였습니다. 2남2녀의 자녀 가운데 次男으로 태어난 스님의 속명은 相洁 였습니다.
17세가 되던 1948년 홀연히 발심하여 가야산 해인사를 입산 출가하여 영월스님을 은사로, 인곡스님을 계사로사미계를 수지 하였으며, 이때 스승으로부터 받은 법명은 慧雄이었습니다.
1950년 19세가 되던 해에 상월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신 후 수년간 선원에서 정진을 하시게 됩니다.
1956년 25세가 되던 해 경하스님께 입실하고 법호를 고봉(杲峰)이라 하였습니다.
1958년(27세) 해인사 강원에서 佛祖語錄을 열람하시고 大敎科를 수료하였으며, 이듬해인 1959년(28세)에는 가야산 幻寂臺에서 목숨을 내놓고 용맹정진을 하시게 됩니다. 그 해 겨울 幻寂臺에서 疑團이 擉路하더니 하더니 문득 한 경계를 보시고 다음과 같은 悟道의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昨夜千萬毘盧峰(작야천만비로봉) 어제 밤의 그 많던 비로봉들이
今覺一無太虛空(금교일무태허공) 이제 깨고 보니 본래 빈자리네
無無無字亦無空(무무무자역무공) 무라, 무라 하는 무자도 또한 비었으니
幻寂臺下幻寂空(환적대하환적공) 환적대도 환적한 공이네.
1962년(31세) 응석사와 범어사 백흥암에서 일타스님 등과 함께 琢磨長養하면서 수선수행에 일관하였습니다.
1964년(33세)에는 포교일선에 뛰어들어 하양포교당에서 중생제도에 전념하셨으며 그 후 1971년(41세)에는 종회의원을 역임하고 1973년(43세)에는 총무원 교무부장 소임을 맡아 종단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1983년(52세)에는 해인총림 선원장에 취임하여 禪風을 진작하고 후학을 재접함으로서 佛祖의 은혜에 보답하였으며 또한 본분 납자로서의 정진원력은 수행자의 사표가 되었으므로 대중으로부터 존경과 흠모가 이어졌습니다.
이후 1985년(54세)부터는 해인사 극락전에 주석하시면서 禪德으로서 개인적 수행에 철저하였으며, 총림대중에게는 정신적 스승이 되어주셨습니다.
2001년(70세) 8월에 팔공산 갓바위에서 造塔法門을 하시다 병환을 얻으시고 지리산 함소굴에서 요양하면서 문도들과 안거를 나셨습니다. 하루는 시자에게 전법을 하고 싶다고 하시면서 벽암록의 '碧巖' 두 글자를 써 보이고 상좌 智山에게 다음과 같이 법을 전하는 傳法偈를 내리셨습니다.
碧水深處泥牛耕 (벽수심처니우경) 푸른 물 깊은 곳에 진흙소가 밭갈고
巖刻古佛石人去 (암각고불석인거) 바위에 새긴 고불이 돌사람 되어가네
2003년 3월 13일 正午에 해인사 極樂殿에서 문도들을 모아놓고 "서로 화합하여 중노릇 잘하라"는 당부를 하신 뒤
一生離相相裏生(일생리상상리생) 일생동안 상을 버리려는 상 속에 살았는데
一切諸相今際壤(일체재상금제과) 모든 상이 이제야 무너지는구나
西傅祖道誰問我(서전조도수문아) 서쪽에서 전한 조사의 도리를 누가 묻는다면
伽倻旲峰七佛峰(가야고봉칠불봉) 가야산 높은 봉은 칠불봉이라 하리라
하시고, 편안히 열반에 드시니 世壽는 72세가 되시고 法臘은 55세 이십니다. -
- 지리산청계사 소개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6-03
지리산 동쪽에 위치하여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다 보이는 청계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12교구 해인사 말사입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6점(대방광불화엄경소외 5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절 주변에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편백 숲과 대나무 숲이 있습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하고 부처님의 법음을 느낄 수 있는 사찰입니다.
지리산 청계사는 진주에서 서쪽으로 17km, 지리산 천왕봉에서 동쪽으로 17km 그 중간지점인 오대주산 남쪽에 위치하며, 주위에 600여m 5봉 속에 해발 300m 지점에 물 좋고 공기 맑은 안식골 계곡에 청계사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1993도에 노후 수행 처 작은 암자로 출발하였고, 2005년도에 대웅전과 문수원 보현당을 지어 대한불교 조계종에 등록하여 청계사라 하였으니 연륜은 길지 않지만 청정한 불국토 도량을 가꾸고 있습니다. 2015년도에 해인사 경하노스님의 유책이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보존각을 짓게 되고, 편의사 대방전 명상선원등 10여동의 템플스테이 수행관과 극락전 그리고 다양한 부대누정을 지어 2022년 4월 8일 청계사가 창건불사를 마치고 금빛 문화축제로 낙성식을 거행하였습니다. 2023년에는 계곡 길을 정비하고, 차茶 체험 장과 편백 숲길과 대밭 안식로를 조성하였고, 1.2km의 청량봉에 올라 지리산 천왕봉도 볼 수있고, 1km일신봉에 올라 새해맞이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24년도 템플스테이 예비사찰로 지정받게 된 청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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