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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정보
상세설명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주보 :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신자수 : 1,285
공소수 : 1미사시간
주일: 06:30 / 08:30 (공소) / 11:00 (교중) / 19:30
토요일 오후 주일: 16:00 (어린이)
토요일 저녁 주일: 19:30
평일: 월 06:30 / 화 · 목 19:30 / 수 · 금 11:00 / 토 11:00
예비자교리 : 금요일 저녁 7시, 주일 오전 9시
순교자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
양양성당은 1921년 4월 영동지역 최초로 설립된 본당이다. 이 지역은 1887년 원산 성당, 1889년 안변성당, 1891년 내평 성당에 진출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에 의해서 사목이 이루어졌다. 1921년 4월 중국 연길현 팔도구 본당에서 사목활동을 하던 최문식 신부가 양양의 상도문리에 천주당을 세운 것이 시초가 되어 양양 본당이 설립되었으며 당시 주보는 ‘예수 성심’이었다. 최문식 신부는 도문에 경당을 건립했던 같은 해 경당을 철거하고 1921년 12월 서문리에 50평 건물을 매입하여 성당을 옮겼으며 1937년 8월 현재의 위치(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군청길 17)에 성당부지를 구입하여 성당을 신축하기 시작하고 이광재(디모테오)신부가 3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후 1940년 2월에 65평의 건물로 성당이 완공되어 헌당식을 하였다.
그 후 본당의 기틀이 점차 잡히고 활성화되었지만 일제 식민 통치하에서 성직자들과 신자들은 수없이 고통을 당하였고, 2차 대전 종식 후에도 양양본당은 38선 10마일 이북에 위치해 소련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 시기 주임 신부였던 이광재 신부는 1909년 강원도 이천군 낙양면 냉골에서 태어나 1936년 3월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풍수원본당의 보좌로 사목을 시작, 1939년 7월 양양본당 주임으로 부임해 성당 밑의 사택에서 생활하며 사목활동을 했다. 이광재 신부는 소련군이 철수하고 성당을 되찾은 후 38선 이북과 이남의 광범위한 지역을 다니며 활동하였다. 이광재 신부는 비밀리에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38선 이남으로 넘어가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양들을 두고 갈 수 없다”며 월남하지 않았다. 그는 평강과 이천의 지역에 사목하던 사제들이 체포되자 이곳까지 다니며 사목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1950년에 공산군에 의해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이광재 신부는 1950년 10월 9일 새벽 원산 방공호에서 인민군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때도 그는 “제가 도와드릴게요, 제가 가져다드릴게요.”라고 외치며 순교하여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가 되었다. 현재 양양성당에서는 이광재 신부의 시복 시성을 위해 꾸준히 기도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2000년부터 이광재 신부님 순교를 기리며 38선 디모테오 길 도보순례를 실시하고 있다.
양양성당은 한국전쟁으로 성당이 전소되어 미8군의 지원으로 부서진 성당을 재건하고 1954년 11월에 현 성당을 지어 봉헌하였는데 이때 주보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로 변경하였다. 이광재 신부 순교 이후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사제들에 의해 사목이 이루어지다가 1984년에 한국인 사제가 처음 부임한 이래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2021년이면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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