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공소
선교회/수도회
파정/기도의 집
성지/사적지
-
상품 정보
상세설명
학야리 공소는 선교사들의 활동이 법적인 보장을 받게 되는 조불통상조약(1886년) 전인 1882-1883년에 영동 지역의 다른 7개 공소와 함께 프랑스인 뮈텔 신부 (1854-1933)가 순방했던 기록이 나온다. 그때 신자 수는 44명이었다. 그로부터 20년쯤 뒤인 1900년 12월 4일, 뮈텔 주교는 하 프란치스코 공소회장 집에 머물렀다고 그의 일기에 기록했다. 학야리 공소는 그동안 관할 본당이 많이 바뀌었다.
일제 강점기 교계 소식지 ‘경향잡지’에는 이곳 교인들의 신앙 활동이 가끔 실렸다. 20년대 말 공소회장을 맡은 신 시몬 형제는 야학에서 한글, 기도문, 교리 문답을 가르치는 등 청년 교육에 힘썼으며 210원을 모아 8평짜리 초가집 공소를 마련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하성원 형제는 전국 교리경시대회인 ‘교리경쟁’에서 두 차례에 걸쳐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작은 공소인 학야는 지금도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관할(모)본당 : 간성
신자수 : 54
-
새소식
-
변경/수정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