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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정보
상세설명
행정공소는 본디 외교인 촌이었으나, 1924년경에 김세중 라파엘(이정행 신부의 외증조부)이 일가를 이끌고 양평에서 행정 1리로 이주해 와 옹기점 교우마을을 이루면서 시작되었다. 후에 조병태 일가가 금광리에서 이주해 이들의 전교로 행정리 마을에 천주교 신자가 급증하게 되면서 교우촌이 형성되어 공소가 설립되었다. 당시 행정 공소는 전체 주민 모두 교우들이고 옹기점에 종사하며 힘써 이웃 농민들에게 전교했으며, 김세중 라파엘 회장의 아들 김문교 요한회장과 손자 김창식 아오스딩 회장까지 3대에 걸친 노력으로 영동지역에서 손꼽히는 큰 공소로 발전하였다. 행정 공소는 처음에는 목조 건물이었으나, 1958년 김창석 아오스딩, 김종호 바오로를 주축으로 전신자가 협심하여 직접 벽돌을 찍어서 38평의 강당을 건립했다. 현 공소 건물은 최창규 발로도메오 신부 재임 시절인 1958년 10월 8일 춘천교구장 구인란 토마스 주교의 집전으로 축복식을 가졌다.
당시는 매우 의욕적이고 왕성한 전교 활동으로 신자 세대수가 50세대 250여 명에 달했다. 또 신자들의 열심한 전교 활동으로 삼산공소(1958)와 인구공소(1959)가 설립되기도 했다. 공소에서는 매일 저녁 1시간 정도 만과가 바쳐졌고 주일에는 첨례(공소 예절)를 바쳤다. 이 때에 두 명의 사제 곧 김종석 도마(1987년 선종)와 이정행 사도 요한이 탄생했으며, 이귀녀 칸디다 등 여러 수도자가 배출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옹기산업은 기계화에 밀려 사양길에 접어들고, 도시 집중 현상을 대부분 신자들은 인근 도시나 서울로 이주하게 되어, 행정 공소는 쇠퇴기를 맞게 되었다. 공소 건물은 관리 부족과 한때 프란치스코회의 지원을 받던 지체장애인들이 공소에 입주하여 내부를 개조해 사용하면서 건물 본래의 모습이 훼손되기도 하였다. 2003년 11월 건물의 보수를 시작하여 2004년 9월에 보수공사를 마쳤고, 같은해 10월 28일에 장익 주교가 중창식을 하였다. 공사를 맡은 민봉영 레오는 1958년 행정공소 건립시 목수였던 민레문도의 아들이다.
춘천교구에서는 옹기마을 교우촌이면서 오지벽돌로 지어진 행정 공소 건물을 교구 사적지로 지정하고 2009년에 표지석을 세웠다. 많은 순례자들이 옛 신앙교우촌 공소를 찾아 편안하게 기도하고 가는 신앙의 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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