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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머리(한정리) 순교자 묘 성지
신평원머리성지
원머리는 이존창 성인이 내포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1785년부터 조선 교회의 시작과 함께 교우촌이 형성된 아주 오래된 곳이다. ‘원머리’는 바닷가 갯벌을 논으로 개간하여 사용하기 위해 둑을 쌓은 ‘언(堰)의 첫 머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 이름처럼 신자들은 염전, 어업, 농업에 종사하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대박해 시기에 20명의 신자들이 홍주와 해미, 수원에서 순교하였다. 원머리 성지에는 현재 1868년 무진박해 때 순교한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 마티아 두 분의 묘가 마을 한복판에 모셔져 있다.
순교자 묘 인근에는 원머리 공소의 강당이 보존되어 있으며, 원머리와 역사를 같이 하는 새터 공소와 음섬 공소의 강당도 잘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건물들과 순교자들의 묘는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신앙공동체가 지금도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실체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현재 원머리성지에서는 박해순교자 20명과 근.현대 순교자 2명을 포함하여 22명의 순교자를 모시고 시복과 시성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한정공소(원머리공소)원머리 출신 순교자 순교지
* 두 분을 포함한 교우촌 원머리(언두리) 출신 순교자(20)들병인 대박해 시기에 원머리에서 순교한 치명자들은 총 20명인데 순교 형식을 보면 교수형이 10명으로 가장 많고 생매장이 6명이며, 순교형태가 나타나지 않은 경우가 4명이다.
순교 형식을 보면 교수형이 9명으로 가장 많고, 생매장형이 6명이며 순교 형태가 나타나지 않은 경우가 3명이다.
순교 장소로는 홍주(16명), 해미(2명), 수원감영(2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원머리가 충청도 홍주 관할이었는데도 해미와 수원으로 끌려가 처형당한 이유는 1868년 무진년에 다시 박해가 확대되면서 도(道)경계, 행정· 군사 관할 지역과 상관없이 천주교 신자들 체포령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순교 연도와 함께 치명자의 이름을 기억해 보면, 1866년에 6명(한마티아, 양정수, 홍베드로닐라, 양명삼, 최아우구스티노, 홍베드로)이, 1867년에 5명(김마리아, 원(여), 양도미니코,김자선의 모친,송춘일)이 순교하였다.
1868년 무진년에는 8명(박요한, 문마리아, 박마르코, 박미티아, 최베드로, 김루치아, 김마리아, 원아나스타시아)의 치명자가 연도 미상자 1명(양아우구스티노)과 함께 굳건한 용덕을 보이며 순교하였다.성지 미사
순례자 미사·식사: 신평성당(사전 예약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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