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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다블뤼 안 안토니오 Daveluy Marie Antoine Nicolas요약정보 및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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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다블뤼 안(安) 안토니오 Daveluy Marie Antoine Nicolas 주교(한국명:안돈이 安敦伊)
    1818 - 프랑스 아미앵 출생
    1841 – 사제서품
    1845 – 조선에 입국
    1866 – 순교
    1968 –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
    1984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

    1818년 3월 16일 프랑스 아미앵(Amiens)의 다블뤼 집안에서 태어나 1841년 12월 18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전교신부로서의 뜻을 펼치기 위해 1843년 10월 4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이듬해 극동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그해 2월 20일 브레스트(Brest) 항구를 출발하여 8월 24일 파리외방전교회의 마카오 대표부에 도착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1845년 7월에 마카오 대표부를 방문한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J. Ferreol, 高)주교의 간청을 받고 조선 선교를 지원하였다.
    1845년 8월 17일 금가항(金家巷)성당에서 거행된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의 사제서품식에 참석한 뒤 8월 24일 첫 미사를 집전한 김대건 신부와 함께 상해를 출발하여 1845년 10월 12일 저녁 8시경 충남 강경 부근 황산포(黃山浦)에 상륙할 수 있었다.

    조선에 입국한 이튿날 그는 교우촌 공동체에 가서 조선말을 배우는 한편 1846년 1월부터는 공동체 주변의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었고, 점차 더 먼 곳에 있는 신자들을 방문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김대건 신부는 1846년 6월 5일 순위도에서 붙잡혀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김 신부 체포 소식을 들은 다블뤼 신부는 페레올 주교와 함께 피신하며 큰 고초를 겪었고, 11월 2일 수리치골에 도착한 뒤에는 몇몇 신자들을 모아 신심단체인 ‘성모 성심회’를 조직하였다. 이때 겪은 고생으로 그는 1847년 봄에 중병을 앓았고, 오른쪽 무릎인대가 늘어나 평생동안 보행에 불편을 겪어야만 하였다. 또 1850년 1월에는 중병으로 인해 최양업 신부로부터 병자성사를 받고 수년동안 순회 전교를 하지 못한채 소년 신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던 중 다블뤼 신부는 1856년 3월 조선에 입국한 제4대 조선 교구장 베르뇌 주교로부터 1857년 3월 25일, 서울에서는 계승권을 가진 보좌 주교로 서품되었다. 한편, 그는 1856년부터 조선 교회사 및 조선 순교사 사료를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하였으며, 신입 교우들을 위한 교리서도 편찬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푸르티에(Pourthie)신부 등이 해 오던 사전 편찬 작업을 이어 받았는데, 이 사전은 1866년 병인박해 후 선교사들에 의해 보완되어 『나선소사전(羅鮮小辭典) 』이란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그 후 다블뤼 주교는 1861년 6월 15일 최양업 신부가 문경에서 병사하자 최 신부가 활동하던 경상도 남부 지역을 떠맡았다. 그리고 1862년에는 그동안 수집 정리해 온 조선 교회사 및 조선 순교자들에 대한 자료들을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장 알브랑(Fran ois Antoine Albrand)에게 보냈다. 이 자료들이 바로 “다블뤼 비망기”라고 불리는 것으로 달래(Ch. Dallet) 신부는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1874년에 『한국 천주교회사(Histoire de I’Eglise de Cor e) 』를 편찬 간행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1863년 봄에 다블뤼 주교가 내포지방에서 전교를 하고 있던 중 주교댁에서 이웃집 화재가 옮겨 붙어 가산과 남은 한국 자료들은 모두 불타고 말았다.

    현재까지 알려진 다블뤼 주교의 저서와 역서로는 『영세대의(領洗大義) 』, 『성찰기략(省察記略) 』, 『다블뤼 주교 비망기』, (사본 전 4권, 제 4권이 『조선 순교사 비망기』), 『신명초행(神命初行) 』상.하, 『회죄직지(悔罪直指) 』, 『성교 요리 문답(聖敎要理問答) 』, 『천주 성교 예규(天主聖敎禮規) 』 등이 있다.

    다블뤼 주교는 1866년 3월 11일 거더리에서 체포되었고, 이튿날에는 위앵 신부와 오메트르 신부가 자수하여 그와 함께 서울로 압송되었다. 두차례의 신문을 받은 끝에 군문효수형의 판결을 받고 1866년 3월 30일 충청도 수영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품에 오르고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의 저서들 Literary work and translation of the Bishop

    성찰기략(省察記略) Seongchalkitak
    고해성사 준비를 위한 성찰서(省察書)
    1864년 목판 인쇄 4대 교구장 베르뇌 주교 감수으로 초간
    Meditation book for confession.
    Wooden Press in 1864 first published under supervision of Bishop Berneux.

    신명초행(神命初行) Shinmyeongchoheng

    다블뤼 주교님께서 저술한 묵상서(默想書)이다.
    1864년 서울 목판 인쇄소에서 상.하 2권으로 간행되었다. 신명(神命)이란 영적인 생명 즉 하느님 안에서 구원을 얻는 생명을 의미한다. 영적 생명의 첫걸음을 시작한 이들에게 묵상의 중요성과 하느님과 직접 대면하기 위한 방법을 31개의 주제로 제시하고 있다.
    The two volumes of meditation book were published in 1864 at the Seoul Wooden Publishing Company. Shinmyeong means spiritual life in God. It is comprised of 31 topics to meet God based on the importance of meditation for those who begin the strides of spiritual life.

    영세대의(領洗大義) Yeongsedaeeui
    다블뤼 주교님께서 저술한 영세 준비서.
    ‘성세의 은혜’,’성세에 응하는 직분’ 및 ‘성세의 은혜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864년 목판본으로 간행
    Baptism preparation book written by Bishop Daveluy Antonio. Comprised of ‘Grace of Baptism’, ‘Calling for Baptism’, and ‘The Way to Maintain Grace of Baptism.” Wooden press in 1864.

    천주 성교 예규(天主聖敎禮規) Cheonjugyoyegyu

    상장례예식서로서 중국에서 간행된 한문본을 다블뤼 주교님께서 번역하여 1863년경에 출판하였다. 1865년 상,하 2책의 목판본으로 초판.
    It is funeral ritual book that was translated from the Chinese version by Bishop Daveluy publicly Known in 1863. The first publication of the two volumes in 1865 and it is the original version of the current funeral ritual.

    한불자전(韓佛字典) Hanbuljajeon
    1880년 일본에서 간행된 최초의 한불사전이다.
    다블뤼 주교님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으나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 원고가 소실되고 이후 리텔(F.C Ridel) 주교에 의해 1873년 11월에 완성된다. 프랑스 선교사들의 한국 선교를 위해 편찬되었으나 우리말 문법 연구의 선구적인 업적으로 평가되며, 서구에 조선을 알리는 데 공헌하였고 천주교 토착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The very first Korean-French dictionary published in Japan 1880. It was first initiated by Bishop Antonio Daveluy but destroyed in 1866. Then it was restored by Bishop Ridel in November of 1873. It was primarily for the French missionary in Korea an evaluated as a pioneering establishment of Korean grammar study. It was also greatly contributed to letting the Western know Chosun and the localization of catholic Korea.

    한국천주교회사(韓國天主敎會史)
    이 책은 본래 5대 조선 교구장인 다블뤼 주교가 1857년부터 편찬 작업에 착수하였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중단하고 모든 자료를 파리로 보냈다.  1872년부터 달레신부가 조선에서 활동하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서한을 추가 자료로 이용하여 1874년 간행되었다.

    회죄직지(悔罪直指) Hoejhejikji
    고해를 예비하거나 임종을 당했을 때, 또는 대죄를 범하였으나 신부를 만나지 못해 상등통회(上等痛悔)를 하고자 할 때 조용한 곳을 찾아 이 책의 내용을 묵상할 것을 권하고 있다.
    1864년 다블뤼 신부가 저술하고 베르뇌 주교의 감수로 서울에서 간행.
    It is advised to meditate as written in this book when a priest is not in presence in case of confession, death, or of great sins, Written by St. Daveluy Antonio in 1864, edited by Bishop Berneux and published in Seoul.

    성교 요리 문답(聖敎要理問答) Seongkyoyorimundap
    한국 천주교회에서 처음으로 채택한 공식 교리서.
    1864년 베르뇌 주교에 의해 서울 목판 인쇄소에서 단권 초판 간행. 1860년을 전후하여 다블뤼 주교가 최양업신부의 도움을 받아 한문본 성교 요리 문답(聖敎要理問答)을 번역한 것이다.
    The first official catechism by the Korean Catholic Church. First published in 1864 by Bishop Berneux at Seoul Wooden Press. It was the translation version by Bishop Daveluy Antonio with the help of Father Choi, Yangup

    천당직로(天堂直路) Cheondangjikro

    1780년 경 중국 사천(四川)에서 활동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모예(1730-1793)신부가 저술한 신심서(은총론)로서, 1837년 이후 한글로 번역되어 필사본으로 전해지다가 1964년 다블뤼 주교님이 번역하고 베르뇌 주교의 감수으로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It was the Book of Grece written by Father Moye(1730-1793) who worked in Sichuan China in 1780. Translated into Korean in 1837 and again translated by Bishop Daveluy in 1864 and published under supervision of Bishop Berneux.

    조선 순교자 비망기(備忘記) Chosun Martyrs’ Memorandum(Chosun Sunkyoja Bimanggi)
    1856년부터 조선 교회사 및 조선 순교자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1862년에 이 자료를 정리하여 파리 외방 전교회 교장 알브랑에게 보낸다. 이것을 다블뤼 비망기라 부르며, 달레(Ch. Dallet)신부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천주교회사’를 편찬 간행된다.(1874년)
    Chosun martyrs related information and church history was collected from 1856 and its file was sent to Albrand in 1862. It was first called Daveluy Bimanggi. Father Dallet worked based on this file to publish the ‘History of Korean Cathilic’.

    나선소자전(羅鮮小字典) (Parvum vocabularium, Latino-Coreanum) Naseonsojajeon

    최초의 나한자전(羅韓字典)이다.
    1891년 홍콩의 파리외방전교회 나자렛인쇄소에서 한국 신학생들을 위해 간행하였다.
    병인박해로 순교한 다블뤼, 푸르티에(Purthie, 申), 프티니콜라(Petitnicolas, 朴) 등이 편찬했던 ‘나한자전’을 박해 때 살아남은 리텔 신부와 선교사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다시 만들어 간행한 것이다. 이 소사전에는 약 1만여 개의 단어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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