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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295번지에 소재해 있는 천주교 순교 성지인 여산순교성지는 병인박해(1866년)때 천주교도들이 체포되어 1868년부터 동헌 앞 백지사터, 배다리 옆 옥터 교수대, 시장과 부근의 숲정이에서 백지사, 교수형, 참수형 등으로 김성첨, 김면언, 김정규 등 23명의 신자들이 순교한 곳이다.
백지사란 손을 뒤로 묶고 얼굴에 물을 뿌리고 백지를 여러 번 붙여 질식시키는 가혹한 처형 방법이다.
병인박해 당시 여산 지역의 천주교 순교사건은 조선 후기 천주교 전라도 전래과정을 중심으로 한 천주교 역사 뿐 아니라 조선 후기 전라도 지역사에도 의미 있는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호남의 관문으로 일찍이 천주교가 전래되어 수많은 신앙 공동체와 그만큼의 순교자들을 배출하였다.
'여산순교성지'라고 쓰인 대형 돌판이 있으며, 그 안쪽으로 백지사 기념비가 서 있다.
순교자들의 무덤은 천호산 기슭 천호 공소 부근에 있다.
주변에는 여산동헌 앞의 담장에는 백지사지라는 이름의 순교성지비가 서 있는데 천주교를 탄압하였던 대원군 집정 시절에 천주교 신도 일곱 사람의 얼굴에 백지를 씌우고 그 위에 물을 뿌려 숨이 막혀 죽게 만든 고문의 장소다.여산은 작은 고을이지만 왕비를 배출한 지역이어서 특별히 사법권을 지닌 부사와 영장이 있었다. 때문에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처형도 이뤄졌는데, 특히 1868년에는 많은 신자들이 처형되었다. 이곳 순교자들은 여산, 고산, 진산, 금산 등지에서 잡혀와 다양한 방식으로 처형되었다. 배다리 근처에서는 교수형으로, 여산 숲정이에서는 참수형이 주로 집행되었고, 동헌 앞마당에서는 교우들의 손을 뒤로 결박하고 얼굴에 물을 뿌린 후 그 위에 백지를 여러 겹 붙여 질식시켜 죽게하는 백지사형이 집행되었다.
여산옥터는 옥에 갇힌 신자들의 고통과 신앙을 묵상할 수 있는 곳이다. 여산의 순교자들은 옥에서 한마음으로 서로 격려하며 기도했던 공동체로 유명하다.
옥에 갇혀 있던 신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굶주림의 고통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통 중에 있던 신자들은 옷 속에 있는 솜을 먹기도 하고 처형지로 끌려 나오자 풀을 뜯어 먹기 바빴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이곳 순교자들 중의 대표적인 인물은 김성첨이며, 이들의 유해는 천호성지와 천호산 일대에 묻혀 있다.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
주보 : 치명자의 모후
신자수 : 594
공소수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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