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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앙골은 1800년대 초부터 공주, 서천 등지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주하여 살던 교우촌이다. 1890년의 교세통계표에 50명이 넘는 교우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나온다. ‘도앙골’은 이 마을 계곡 주변에 개복숭아 나무가 많다하여 생긴 도원곡(桃園谷)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1866년 병인박해가 발생하자 도앙골 출신 김사범, 김 루카, 김 바오로, 오 시몬, 오 요한 등이 체포되어 공주에서 순교하였다.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은 두 번째 한국인 사제 최양업 신부가 국내로 입국하여 1850년 10월에 쓴 첫 편지의 발신지가 ‘도앙골’이다. 오랜 기간 동안 한 곳에 머물며 조선 천주교의 사정을 자세히 기록한 편지인데 이곳 도앙골에서 작성되었다. 이에 따라 도앙골에는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기원하는 현양비가 세워져있고, 사제로서 그의 열정적인 사목을 기념하는 제대를 만들어 봉헌하였다.
도앙골 교우촌은 월명산 정상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있는 ‘삽티 교우촌’(부여군 홍산면 상천리)과 관련을 맺고 있다. 도앙골 교우들이 삽티 교우들과 서로 연통하며 신앙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도앙골과 삽티를 잇는 도보순례길이 조성되어 있어 옛날의 의미를 살리고 있다.
관리 공소 : 만수리공소
근접 도보순례 가능 성지
삽티성지→도앙골성지로의 도보순례 구간이 있다.(삽티→도앙골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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