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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설명
‘삽고개’라고도 불리는 삽티(揷峙)는 박해시대의 교우촌으로 부여군 홍산면 상천리와 내산면 금지리 사이의 경계에 있는 고개 이름이다. 부여군과 보령시의 경계를 이루는 월명산과 천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남쪽과 북쪽 계곡에는 조선시대에 교우들이 숨어살면서 삽고개를 사이에 두고 연통하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삽고개로부터 남쪽으로 흘러내린 계곡에도 교우들이 숨어살았는데 이곳에 ‘삽티 교우촌’이 있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까지 살던 교우로 잘 알려진 이는 황석두(루카) 성인의 양자 황천일(요한)과 조카 황기원(안드레아)이다. 황석두 성인이 이들을 삽티에 살게 하여 교우촌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1866년 3월 30일 황석두 성인이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하자 얼마 후 황천일과 황기원이 시신을 수습하여 삽티에 안장하였다. 황석두 성인의 무덤은 현재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으나 삽티의 ‘즘터’(옹기 터)에 무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즘터에서는 1964년 산림개간 작업을 하던 중에 박해시대의 성물이 담긴 옹기가 발견된 바 있다.
삽티 교우촌은 월명산 정상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있는 ‘도앙골 교우촌’(부여군 내산면 금지리)과 관련을 맺고 있다. 삽티 교우들은 최양업 신부의 거처가 있던 도앙골 교우들과 서로 연통하며 신앙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삽티와 도앙골을 잇는 도보순례길이 조성되어 있어 옛날의 의미를 살리고 있다.
관리공소 : 만수리공소
성지 미사 : 연중 주일 오전 11시(평일에는 순례자들 사전 연락에 따라 봉헌)
근접 도보순례 가능 성지
삽티성지→도앙골성지로의 도보순례 구간이 있다.(삽티→도앙골 3.5㎞)
성 황석두(黃錫斗) 루카 (1813∼1866)
‘재건’이라고도 불렸던 황석두는 충청도 연풍의 양반 가문에서 자라나 부친의 뜻에 따라 과거 시험을 치르러 상경하다가, 한 주막에서 천주교인과 사귀게 되어 입교하였다.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3년 동안 벙어리 행세를 하며 교리서를 탐독하였고, 이에 감동한 부친과 가족들도 입교하게 되었다. 그는 덕행이 뛰어나고 교리 지식이 풍부하여 주교와 신부들의 복사로,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고 주교에게 금욕과 절제를 위하여 아내와 별거할 것을 허락받고 독신 생활을 하였으며, 안 주교를 도와 교리서 번역과 교회 서적 출판에도 참여하였다. 1866년 3월에 먼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던 안 주교를 몇 십 리나 따라간 황석두는 결국 함께 체포되어, 3월 30일 충남 보령군 갈매못에서 54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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