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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춘천교구
대표전화 033-255-2117
   주임신부 033-254-2117, 수녀원 033-254-4314
팩스 033-242-2117
  주임신부 신정호 모세 신부 Rev. Moses Shin Jung-ho
설립일 1950.01.05
홈페이지 https://cafe.daum.net/ccsoyangro
  주소 강원 춘천시 모수물길22번길 26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소양로2가 78-1 소양로천주교회
   26 Mosumul-gil 22beon-gil, Chuncheon-si, Gangwon-do
Tag 소양로성당, 소양로천주교회
  • 상품 정보

    상세설명

    수녀회 : 인보성체수도회
    주보 : 성 파트리치오
    신자수 : 1,014


    미사시간
    주일: 07:00 / 10:30(교중) / 19:00
    토요일저녁주일: 18:00 (어린이,학생)
    평일미사 : 월 6:30 / 화 · 목 19:00 / 수 · 금 10:00

    예비자교리 : 주일 오전9시


    소양로성당은 1950년 1월 5일 죽림동 본당에서 분가되어 설립되었으며 ‘성 파트리치오’성인을 주보로 모시고 있다. 당시 춘천지목구장이었던 퀸란(Thomas F. Quinlan, 토마스) 신부는 죽림동 성당을 새로 짓기 시작하면서 춘천 시내에 또 하나의 성당을 건립할 계획을 세우고 1949년 가옥이 포함된 땅을 구입한 후 가옥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고 안토니오(Peter Anthony Collier) 신부를 초대 주임 신부로 임명하였다. 고 안토니오 신부는 봉의산 남쪽 기슭에 관사로 쓰던 한옥집을 개조하여 성당과 사제관으로 사용하였는데 소양로 본당의 관할 구역은 봉의동, 요선동, 낙원동, 소양로 1·2·3가, 근화동 1-2가 일대였으며 관할 공소로는 금산과 발산이 있었다.

    고 안토니오 신부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위험한 상황이 닥칠 것을 대비하기 위해 성체를 옮겨 놓고 신자들에게도 피신하라고 권고하며 사태를 지켜보았으나 전시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6월 27일 죽림동 성당으로 이동하던 중에 공산군에게 잡혀 총살당하였다. 1953년 휴전이 된 후 소양로 본당 관할 구역의 신자분포에 큰 변화가 생겼는데 남 미카엘 신부의 보고서에 의하면 신자들의 75%가 북한에서 월남한 피난민이었다고 한다.

    본당 설립 당시부터 계획하고 있던 성당 신축은 전쟁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1956년 3월 성당 신축을 위한 착공식을 하고 1956년 9월 3일 낙성식을 하였다. 그 당시 건축한 대부분의 성당이 고딕양식이었는데 반해 소양로 성당은 반원형(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건축되었는데, 부채꼴의 구조는 신자들이 전례 공간의 중심인 제대에 가까지 다가가고 사제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유럽에서도 2차 바타킨 공의회 이후에 드물게 나타나고 있는 형태이다. 소양로 성당은 한국 천주교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반원형 부채꼴 형태이다. 한국 최초로 지어진 근대양식의 성당이라는 건축사적 의미가 반영되어 2005년 4월 15일 등록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소양로 성당은 2007년 2월부터 2010년 7월까지 5차에 걸친 보수 정비 사업을 통해 설립 당시와 같은 형태로 복원되었다.

    소양로 성당은 이러한 건축사적 의미 외에도 ‘고 안토니오 신부 순교 기념성당’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당시 퀸란 신부는 6.25 때 순교한 사제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 곳에 성당 신축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 중 소양로 성당이 첫 번째로 건축되었다. 설립 65주년을 맞이한 소양로 성당은 관할 구역에 새로운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젊은 층의 신자들이 유입되고 어린이들도 증가하여 노인 신자층이 주를 이루었던 기존의 공동체가 활기를 찾기 시작하였으며 남녀노소가 어우러진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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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자 고 안토니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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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양로 성당은 1950년 1월 5일 죽림동 본당에서 분가·설립되었으며 ‘성 파트리치오’성인을 주보로 모시고 있다. 당시 춘천지목구장이었던 퀸란(Thomas F. Quinlan, 토마스) 몬시뇰은 죽림동 성당을 새로 짓기 시작하면서 춘천 시내에 또 하나의 성당을 건립할 계획을 세우고 1949년 가옥이 포함된 땅을 구입한 후 가옥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고 안토니오(Peter Anthony Collier) 신부를 초대 주임 신부로 임명하였다. 고 안토니오 신부는 봉의산 남쪽 기슭에 관사로 쓰던 한옥집을 개조하여 성당과 사제관으로 사용하였다. 소양로 본당의 관할 구역은 봉의동, 요선동, 낙원동, 소양로 1·2·3가, 근화동 1-2가 일대였으며 관할 공소로는 금산과 발산이 있었다.

    고 안토니오 신부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위험한 상황이 닥칠 것을 대비하기 위해 성체를 옮겨 놓고 신자들에게도 피신하라고 권고하며 사태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전시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6월 27일 죽림동 성당으로 이동하던 중에 공산군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심문들 받고, 공지천변으로 끌려가면서 함께 잡혔던 복사 김경호 가브리엘에게 총격이 있으면 얼른 엎드리라고 이야기 하였다. 마침내 총격이 시작되자 고 신부는 그를 끌어안고 넘어져, 자신은 죽음을 맞으면서도 다른 이를 살리는 살신성인이 모범을 보여주었다.

    본당 설립 당시부터 계획하고 있던 성당 신축은 전쟁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1956년 3월 성당 신축을 위한 착공식을 하고 1956년 9월 3일 낙성식을 하였다. 당시 교구장 퀸란 주교는 한국전쟁으로 순교한 사제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 곳(소양로, 성내동, 묵호)에 성당을 신축하였는데, 그중 소양로 성당이 첫 번째로 건축되었다. 그 당시 건축한 대부분의 성당이 고딕양식이었는데 반해 소양로 성당은 반원형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건축되었다. 부채꼴의 구조는 신자들이 제대에 가까지 다가가고 사제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유럽에서도 1960년대 이후에 드물게 나타나고, 한국 천주교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형태였다. 한국 최초로 지어진 근대양식의 성당이라는 건축사적 의미가 반영되어 2005년 4월 15일 등록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소양로 성당은 2007년 2월부터 2010년 7월까지 5차에 걸친 보수 정비 사업을 통해 설립 당시와 같은 형태로 복원되었다. 소양로 성당은 이러한 건축사적 의미 외에도 ‘고 안토니오 신부 순교 기념성당’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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