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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춘천교구
대표전화 033-254-2631
   033-253-2631, 보좌신부 033-255-2631, 수녀원 033-253-7443, 유치원 033-255-7443
팩스 033-257-2631
  주임신부 신호철 토마스 신부 Rev. Thomas Shin Ho-cheol
설립일 1920.09.22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약사고개길 23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약사동 30 죽림동성당
   23 Yaksagogae-gil, Chuncheon-si, Gangwon-do
Tag 죽림동성당, 죽림동천주교회
  • 상품 정보

    상세설명

    보좌신부 : 최현규 이냐시오 신부 Rev. Ignatius CHOI HYEON GYU
    수녀회 : 성가 소비녀회
    주보 : 예수 성심
    신자수 : 2,424


    미사시간
    월: 06:00, 11:00(성지)
    화: 11:00(성지), 19:00
    수·목·금: 06:00, 11:00(성지), 19:00
    토: 06:00, 11:00(성지)
    토요일 저녁 주일: 16:00(어린이) / 18:00(중고등부)
    주일: 07:00 / 09:00 / 11:00 / 18:00(청년) / 21:00

    예비자교리 : 주일-09:30 / 화-2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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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림동 성당의 뒤뜰에는 성직자 묘역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은 춘천교구에서 활동하다가 선종한 사제들이 잠든 곳인 동시에 신앙을 증거하고 목자로서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애쓰다가 희생된 순교자들이 함께 모셔진 성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이 묘역에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희생당한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고 안토니오(Anthony Collier)신부, 라 파트리치오(Patrick Reilly) 신부, 진 야고보(James Maginn) 신부의 유해가 안장되어있고 북한지역에서 순교하여 유해를 모실 수 없었던 백응만 다마소, 김교명 베네딕토, 이광재 티모테오, 손 프란치스코(Francis Canavan) 신부의 가묘가 조성된 곳이기도 하다. 아울러 ‘죽음의 행진’ 속에서도 살아남아 교황사절과 춘천교구장으로 교구의 초석을 놓은 구인란(具仁蘭, Thomas F. Quinlan) 토마스 주교의 묘도 함께 있다.

    이 묘역은 하느님의 종으로서 충실히 살다가 생을 마친 순교자들과 성직자들이 잠들어 부활을 기다리는 영원한 안식처로 자리 잡았다.

    죽림동 주교좌 성당(등록문화재 54호)의 전신(前身)은 ‘곰실 본당’이다. 곰실 본당은 1920년 9월 22일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된 공동체이며, 활발한 전교 활동을 하기 위하여 곰실에서 현재의 자리로 본당을 이전하였다. 곰실 본당은 1920년 9월 18일에 사제품을 받은 김유룡(金裕龍, 필립보) 신부가 그해 9월 22일 부임하면서 춘천지역의 첫 본당이 되었다. 김유룡 신부의 서한에 의하면 부임 당시 곰실 본당의 관할 지역은 춘천, 인제, 가평, 양구, 화천, 홍천 등 6개 군에 15개의 공소가 있었으며 약 1천여 명의 신자가 있었다. 곰실 본당에 부임한 김유룡 신부는 활발한 전교 활동을 하기 위하여 춘천시내로 진출할 마음을 먹고 애련회(愛煉會, 연령을 위한 단체)를 조직하여 가마니짜기, 새끼꼬기, 짚신삼기 등으로 기금을 조성해 죽림동 성당 아래 골롬반 병원 터와 아랫마당 그리고 수녀원 터에 있던 집을 구입·개조하여 1928년 5월부터 성당으로 쓰게 되었다.

     현재의 죽림동 성당은 김유룡 신부와 곰실 교우들이 마련한 터와 퀸란(Thomas F. Quinlan, 토마스) 신부가 추가 매입한 부지 위에 세워졌다. 죽림동 성당의 기공식은 성당 벽에 라틴어로 붙어있는 초석에 기록된 것처럼 1949년 4월 5일에 있었다. 사전에 계획되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의 외국인 구금과 연금 등으로 착공이 지연되다가 해방과 더불어 미군부대의 도움을 얻어 1949년에 착공하게 된 것이다. 1년 동안 공사를 진행하여 완공단계에 접어든 성당 건물은 내부공사를 앞두고 한국전쟁을 발발과 직면했다. 공산군의 포격과 유엔군의 반격 공습을 거치는 중에 건축을 중단한 성당의 한쪽 벽이 무너지고 사제관과 부속건물이 대파되었다. 전쟁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53년 미군과 성청의 지원으로 복구 작업이 진행되어 1956년 6월 8일 ​죽림동 성당의 주보 축일인 예수 성심 대축일에 새로운 모습을 갖춘 주교좌 성당의 축성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어려운 시대에 파괴된 성당을 복구하며 완공한 성당이었지만 4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노후되어 대대적인 중창 작업을 해야 할 형편이 되었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1994년 춘천교구장에 착좌한 장익 주교는 1998년 4월부터 9월 14일 십자가 현양 축일까지 5개월에 걸쳐 중창 작업을 진행 했다. 성당의 안팎 공간의 형태는 역사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성당내부는 전례 거행에 합당하고 예술적으로도 흡족한 성당의 모습을 만들어 2000년 대희년과 교구설정 60주년에 죽림동 성당의 모습을 일신하였다. 죽림동 성당은 우리나라 1950년대 석조 성당 건축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인정되어 2003년 6월 25일 등록문화재 제 54호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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