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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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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 수표로 33

서울특별시 중구 저동1가 6 영락교회

33, Supyo-ro, Jung-gu,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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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0,223회   2021-08-15

한경직의 아버지 한도풍은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집안을 일구느라 공부를 하지 못했고 결혼도 늦게 했다.

그는 아들만큼은 잘 가르치고 일찍 장가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한경직이 열세 살 되던 1916년에 세 살 연상인 김찬빈과 결혼시켰다.


그리고 한경직을 서당에 보내지 않고 자작교회에서 운영하는 기독교학교이자 신학문을 가르치는 진광소학교에 보냈다.

졸업 후에는 집안의 유일한 재산이었던 소를 팔아 오산중학교에 보내어 한경직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어머니 청주 이씨는 매우 부지런하고 사랑이 많았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했다.

결국 몸이 약해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한경직에게 평생 동안 성실과 근면한 삶의 모범이 되어 주었다.


한경직은 일생을 돌아보며 정말 감사한 것이 있다면 아내를 만난 일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아내에 대한 정이 각별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어린 나이에 결혼했지만 한경직은 학업에 전념하느라 집안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특히 미국유학길에 오를 때는 아내와 어린 딸을 남겨두고 홀로 떠나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 김찬빈은 선교사가 운영하는 숭혜여학교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묵묵히 가정을 꾸려나갔다.

아내 김찬빈은 신앙 안에서 인내와 사랑으로 평생 동안 한경직을 내조했다.

생활을 전적으로 도맡아 하면서 한경직의 건강관리를 위해 애썼다.

 

가난하고 외롭고 고생스러운 목사의 아내로 살아온 아내 김찬빈이 노환으로 몸져 눕게 되자 한경직은 평생 동안 받아온 사랑의 빚을 갚으려는 마음으로 외부 출입을 삼가고 지극한 정성으로 아내를 돌보았다.

1974년이 마무리되는 12월 31일, 한경직의 그림자로 함께해온 아내 김찬빈은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77세의 일기로 눈을 감았다.

한경직은 아내 김찬빈을 평생 잊을 수 없는 은인이라고 서슴없이 고백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슬하에 딸 순희(順姬, 1920년생)와 아들 혜원(惠源, 1938년생)을 두었다.

 

딸 순희는 이영헌(목사, 전 장로회신학대학 대학원장)과 결혼하여 2남(이신익, 이신형) 3녀(이순겸, 이순화, 이순형)를 두었다.

아들 혜원은 미국 유학을 거쳐 아버지의 뒤를 따라 목사가 되었으며 Donna Rae Han(한국이름 혜순)과 결혼하여 1남(한영선, David youngsun Han) 1녀( 한영애, Bedany youngae Han)를 두었다.


학력

1916 평안남도 평원군 공덕면 진광소학교 졸업

1919 평안북도 정주 오산학교 졸업

1925 평양 숭실대학교 이과졸업 (자연과학 전공)

1926 미국 엠포리아대학교(College of Emporia) 졸업 (인문과학 전공)

1926 미국 엠포리아대학교(College of Emporia) 졸업 (인문과학 전공)

1929 미국 프린스턴신학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졸업

1948 미국 엠포리아대학교 명예 신학박사 학위

1955 연세대학교 명예 신학박사 학위

1977 숭실대학교 명예 철학박사 학위


목회활동

1934년 의산노회에서 목사안수

1933~1942년 신의주 제2교회 담임 목회

1945~1972년 서울 영락교회 담임 목회

1973~2000년 서울 영락교회 원로목사


애국활동

1945년 신의주자치위원회 결성

1950년 대한기독교구국회 결성

1950년 정부 파견 UN감사사절단 활동

1954~1957년 고당조만식선생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1985-2000년 명예 이사장)

1959~1977년 남강문화재단 이사장(1992-2000년 명예 이사장)


교육활동

1919~1920년 평양 영성소학교 교사

1932~1933년 평양 숭인상업학교 교사

1947~2000년 대광중고등학교 설립 및 학교법인 대광학원 이사장

1950~1977년 보성여자중고등학교 재건 및 학교법인 보성학원 이사장

1954~1957년 숭실대학교 재건 및 초대 학장

1959~1977년 학교법인 영락학원(영락중고등학교와 영락여상) 설립 및 이사장

1962~1975년 학교법인 정의학원(서울여자대학) 이사장

1969~1974년 영락여자신학교 설립 및 초대 이사장

1971~1973년 학교법인 장로회신학대학교 제4대 이사장

1973~1981년 학교법인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이사장


복지활동

1939년 신의주 보린원 설립

1941년 남신의주에 보린원 이전 확장 및 노인관 신축 운영

1947년 영락보린원 설립

1950년 기독교아동복리회(CCF, Christian Children's Fund) 이사장, 밥 피어스(B. Pierce) 목사와 선명회(현 월드비전) 설립

1951년 부산에 다비다 모자원(현 영락모자원) 설립

1952년 영락경로원 설립

1957~1972년 사회복지법인 영락원 설립, 이사장

1964~1986년 선명회(현 월드비전) 초대 이사장(1986-2000년 명예 이사장)

1967~1974년 홀트양자회(현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1981년 합실어린이집 개원

1984년 금성장학회 설립

1990년 영락어린이집 개원, 사회복지법인 영락원에서 영락 사회 복지재단으로 변경

1990~2000년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 명예 회장

1994년 영락애니아의 집 설립, 영락노인복지센터 설립


민족복음화 활동

1965년 전국복음화운동 명예회장

1972년 전국 신자화 후원회 설립 발기인 대표

1974년 전국 신자화 후원회 제2대 회장

1974~1976년 한국외향선교회 회장(1976~1994년 명예회장)

1988~2000년 사단법인 군복음화후원회 명예회장


교회연합 활동

1955년 기독공보사 사장

1955~1956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0회 총회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회장

1968~1975년 마포삼열박사기념사업회 이사장, 1972년 기독교방송재단 이사장

1973~2000년 아세아교회진흥원 설립 및 초대 원장

1981~1984년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협의회 총재(1984~2000년 이사장)

1989~2000년 한국기독교 총엽합회 발기인 대표 및 명예회장


상훈

1970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1985 미국 프린스턴신학교'모교를 빛낸 영예의 동문상' 수상

1986 세계도덕재무장(MRA)대상 수상

1992 템플턴상(Templeton Prize)수상

1998 대한민국 건국공로장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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