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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재골송이마을 요약정보 및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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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강원 양양군 현북면 송이로 245-44
   강원 양양군 현북면 상광정리 511-6 상광정마을회관
   245-44, Songi-ro, Hyeonbuk-myeon, Yangyang-gun, Gangwon-do
  • 상품 정보

    상세설명

    샘재골송이마을은 산 좋고 물 맑기로 유명한 강원도 양양구 현북면에 위치한 농촌마을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광정천과 한재샘터를 비롯해 송이향이 은은한 소나무 숲이 우거진 맑은 환경에서 송이 채취와 논농사, 감자와 옥수수, 콩, 고추 등의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상광정리(上光丁里)는 현북면 중심지며 면사무소와 보통학교가 이곳에 설치되었으며, 최초에는 광정진(廣丁鎭)이였던 것이 인구의 증가로 상·중·하리로분할하여 상중하 광정리(光丁里)로 개칭되었다. 광정진의 유래는 지금의 중광정리와 본동 경계지인 잣골뒷산 능선에 고대에 여진과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광정진을 설치하였으므로 광정진이다. 지금도 진의 성지석축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명지리에서 흐르는 하수와 대치리에서 흐르는 하천이 이곳에 합류하여 광정천을 이루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 : 농촌생활체험, 대보름행사 민속놀이, 옥수수감자축제(여름)
    특산물 : 해풍오대쌀, 해풍들깨, 해풍콩, 해풍고추, 하조해풍곶감, 감자, 옥수수, 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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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총 1 건

    샘재골송이마을 소개
    1. 샘재골송이마을 소개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8-10

      상광정리 역사
      고대(古代)에 여진과 왜구의 침입을 막기위하여 광정진을 설치
      상광정리(上光丁里)는 현북면 중심지며 면사무소와 보통학교가 이곳에 설치되었으며 최초에는 광정진(廣丁鎭)이였던 것이 인구의 증가로 상·중·하리로분할하여 상중하 광정리(光丁里)로 개칭되었습니다.
      광정진(廣丁鎭)의 유래는 지금의 중광정리와 본동 경계지인 잣골뒷산 능선에 고대(古代)에 여진과 왜구의 침입을 막기위하여 광정진을 설치하였으므로 광정진이였습니다. 지금도 진(鎭)의 성지(城址)석축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명지리에서 흐르는 하수와 대치리에서 흐르는 하천이 이곳에 합류하여 광정천을 이루고 있습니다. [양양문화원 자료 제공]
      상광정리 마을 북쪽에 있는 산으로 한자로는 천치산, 우리말로는 샘재산이라고 합니다. 앞에 있는 산이 800 고진데 샘젯산인데, 왜 샘젯산이라 부르냐면 전에 꼭대기에 샘이 나서 그러는데 지도엔 천치산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 산엔 전설이 있는데 샘젯산에서 약 4km 꺾어진 곳에 가면 여운포가 있는데 거기서 3km 정도에 용네미란 곳이 있는데 전에 큰 연못이 있었다고합니다. 그 연못에서 용마가 나와서 그곳을 넘어 다녔다고 해서 용네미라고 합니다. 왜 넘어다녔냐면 옛날에 장사가 있으면 반드시 용마가 따른다고 했는데 장사가 나와도 용마는 나오지 않았다고합니다.
      용마를 기다리다가 목이 타 물을 마시면서 왼팔을 돌에 놓고 무릎을 끓고 앉았는데 그 자리에 그 자국이 남았다고 합니다.
      바위가 있었는데 전엔 그 바위를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산에서 굴려서 지금은 그 바위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용마가 나오지 않아 찾아 나섰지만 찾지 못하고 그 장수를 기다리면서 연못을 넘어 다녀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 용마가 용네미를 넘어 다니다가 장수가 없으니까 도망쳤고. 용네미에서 한 1km 정도 가면 용골이란 곳이 있는데 그곳 마을 사람들이 용마를 잡기 위해 고리를 만들어 거기다 놓았다고 해서 용고리(용골)이라 합니다. 그 후 용도 행방을 알수 없게 되었습니다. 연못에도 누룩바위란 곳에 그곳에서 장수와 용마가 만나려 했지만 만나지 못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연안 김씨 정려문(延安金氏 旌閭門)
      연안 김씨는 조선 순조 15년(1815) 4월15일 세종조 형조판서를 지낸 문 정공(文靖公) 김자지(金自知)의 후손인 김총수(金總壽)의 딸로 출생하여 출가 후 예의 범절에 어긋남이 없이 말을 삼가고 행동을 단정히 하여 효부의 칭송을 받던 중 남편 오씨가 인후병으로 병석에 눕게되자 백방으로 영약을 구해다 먹였으나 백약이 무효하였다.
      임종에 이르러 김씨는 황급히 단지 주혈(注血)하여 잠시 회생케 하였으나 김씨의 애쓴 보람도 없이 남편은 1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눈 속에서 남편의 상(喪)을 당한 김씨는 예(禮)를 다하여 장례를 치르고 22세의 꽃다운 나이로 청상수절(靑孀守節)할 것을 결심하고 시부모님에게 효성을 다하다가 62세의 나이로 한 많은 세상을 끝마쳤다.
      이 사실이 고종임금에게 주달(奏達)되어 고종임금으로부터 광무 10년 6월 20일 열녀정문(烈女旌門)을 하사받게 된 것이며, 속수삼강록(續修三綱錄)이라는 책을 만들어 이를 등재(登載)하여 후세에 귀감이 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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