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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라고 알려진 신라 헌강왕 때에는 바람과 비가 때에 맞게 불고 내려 나라가 풍요로웠다. 또 수도 금성에서는 기와 처마가 줄을 이어 비 맞을 일이 없었다고 전한다. 포석정지도 신라 헌강왕 때 조성된 연회 장소로 전해진다. 신라의 가장 흥했던 시기에 조성되어 신라 쇠퇴까지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는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오는 동안 시를 읊고,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를 마시는 일종의 유희로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였는데, 포석정은 이를 본 따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정자는 없고 유상곡수연을 즐기던 물길 ‘유배거’만이 남아있다. 22m의 물길에는 6cm정도의 높낮이차가 있어 물이 돌도록 했다. 물길의 모양이 마치 전복의 모양과 같아 전복 포(鮑)자를 써서 포석정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포석정은 경주의 유명한 가을명소이다. 포석정지의 번창했던 초록이 화려한 주홍빛으로 물들었다가 이내 떨어져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이 마치 신라의 흥망성쇠를 보는 듯도 하다.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조성연대는 신라 제49대 헌강왕(875~885)때로 본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는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읊어야 하며 시를 짓지 못하면 벌로 술 3잔을 마시는 잔치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였는데, 포석정은 이를 본따서 만들었다고 본다. 현재 정자는 없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이 남아있다. 물길은 22m이며 높낮이의 차가 5.9㎝이다. 좌우로 꺾어지거나 굽이치게 한 구조에서 나타나는 물길의 오묘한 흐름은 뱅뱅돌기도 하고 물의 양이나 띄우는 잔의 형태, 잔 속에 담긴 술의 양에 따라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유상곡수연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었으나 오늘날 그 자취가 남아있는 곳은 경주 포석정 뿐으로,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단풍 절정 시기 : 매년 11월 초순관람료 : 성인 2,000원 /군인 및 청소년 1,000원 / 어린이 500원
주차정보 : 전용 주차장(유료)종목 : 사적 제0호
수량/면적 : 5,234㎡
지정(등록)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통일신라시대
소유자 : 경주시 등
관리자 : 경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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