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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설명
신라 최초의 여왕이자 27대 왕인 선덕여왕(재위 632∼647)의 무덤이다. 높이 6.8m, 지름 23.6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밑둘레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2∼3단의 둘레돌을 쌓았다. 선덕여왕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재위 579∼632)의 딸로서 성골이라는 특수한 신라 왕족의식에 의해 여왕이 되었다. 첨성대와 분황사, 황룡사 9층탑 등을 세웠으며, 김유신, 김춘추와 더불어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여왕이 죽거든 부처의 나라인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하였으나 신하들이 이해를 못하자 여왕이 직접 도리천이 낭산(狼山) 정상이라 알려주었다.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한 후 낭산에 사천왕사를 지었고, 낭산의 정상이 도리천이라 한 여왕의 뜻을 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종목 : 사적 제1호
수량/면적 : 1,559㎡
지정(등록)일 : 1969년 08월 27일
시대 : 신라 선덕여왕
소유자 : 국가
관리자 : 경주시
관람료 : 무료
주차정보 : 선덕여왕릉 주차장(배반동 949-1, 무료) 이용






낭산의 정상부로 오르면 솔숲 사이로 단아한 왕릉 1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신라 제27대왕 선덕여왕의 능이다. 삼국유사에서 표현하는 선덕여왕은 지혜의 여왕이었다.‘선덕여왕 지기삼사(善德王知幾三事)’라는 제목으로 선덕여왕이 미리 알아차린 세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그 하나는 당 태종이 보낸 모란과 관련한 일화이다. 태종이 모란 그림과 씨앗을 보냈는데 선덕이 그림을 보고는 “그 꽃에는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씨앗을 심어 꽃이 필 때를 기다리니 정말 꽃은 향기가 나지 않았다.두 번째는 옥문지이야기이다. 영묘사 앞 옥문지의 겨울, 난데없이 개구리들이 사흘 밤낮을 울었다. 왕에게 고하자 선덕은 알천랑과 필탄랑에게 서쪽으로 가면 적의 군사가 있을 것이니 소탕하라 명했다. 과연 서쪽 경계지역에 백제 병사 수백이 숨어 있어 이를 소탕했다.마지막으로 선덕은 본인이 죽는 날과 묻힐 자리를 예언했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명했다. 신하들이 위치를 몰라 묻자 낭산의 남쪽이라고 말했다. 신하들은 유언대로 그를 낭산에 묻었다. 그로부터 33년 뒤, 문무왕이 낭산 기슭에 사천왕사를 지었다. 불교에서는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라고 했는데 사천왕천을 상징하는 사천왕사 위에 선덕여왕의 무덤이 있으니 바로 도리천이 되는 것이다. 신하들은 그때야 선덕여왕의 유언을 깨닫고는 감탄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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