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번호 : 기념물 제 85호
소재지 : 김제시 금구면 월전로
금구면 소재지에서 2km쯤 동쪽으로 떨어진 곳에 월전리와 선암리를 경계한 산이 있는데 봉두산 또는 봉산이라 부른다.
봉산의 높이는 130m로 낮은듯하나 지정학적으로 호남평야와 연결되어 있는 대도시의 길목으로 전술적 전략적인 요충지로써 손색이 없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횃불과 연기로써 위급함을 전하던 고대의 통신방법으로 높은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하던 봉수대가 금구 남산(양시산)에 있었다는 고사가 전라북도지에 씌어 있으며, 장병들의 필수 조건인 화살을 만들기 위한 신우대가 원시림처럼 우뚝서 1m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하게 자라 그 위용을 후세에 전해주는 듯 하다.
이 봉두산 산꼭대기에는 지금까지도 그 자취가 뚜렷하게 남아 있는 돌로 쌓은 성이 있는데, 이 성은 금구골을 구지지산현이라 부르던 백제 시대에 쌓은 성이라 전하여지며, 둘레가 900m인 자그만한 성이나 화강암으로 잘 쌓아올린 성이다.
해발 130m로 동남으로는 모악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호남평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위치에 있다.
금구산성은 토성과 석축으로 산 정상을 중심으로 동남쪽은 석축으로 서북쪽은 토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성이 축조된 시기는 정확한 문헌은 찾아 볼 수 없으나 조선시대 김정호의 "청구도 (靑丘圖)"와 "대동여지도"에 산성봉(山城峰)으로 표기되어 있어 옛날 이 곳에 산성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지금도 이 산의 정상에는 기와조각이 도처에 흩어져 있으며 건물의 초석(礎石)으로 보이는 여러 개의 석재(石材)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낙엽 속에 묻혀 있다.
성안에는 자연석으로 만들어 놓은 조그마한 우물이 하나 덤불 속에 있다. 이 우물은 동쪽 성벽 바로 뒤 평지에 있는데 식수정도를 제공할 수 있는 규모로서 이 산성과 주변과의 위치를 볼때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예상할수 있다.
백제시대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아쉬움을 남는다.
성꼭대기에서 동남쪽으로 내려가면 아직도 키보다 높은 성벽이 남아 있는곳도 있으며,그 곳에 군량미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고 전하고 지금도 깨진 기와조각이 많이 흩어져 있어 예전 산성의 위엄을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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