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골제 > 전라북도 Jeollabuk-do, 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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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제

063-540-3934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로 442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242-1

442, Byeokgolje-ro, Buryang-myeon, Gimje-si, Jeollabu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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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1

벽골제단지는 김제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내외로 천명하고 근대이전 오천년의 농경 문화가 살아숨쉬는 사적(史蹟)과 역사의 현장이자 문화 휴식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저수지인 사적 제111호 벽골제는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월승리에 걸친 약 3㎞에 이르는 제방(두 개의 수문 장생거와 경장거 포함)과 1415년 건립된 벽골제 중수비를 포함하여 1963년 1월 21일에 국가사적 제11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국가사적 벽골제와 그 배경인 김제만경들녘의 문화사적 의미를 조명하기 위하여 김제시는 1975년 벽골제 부분발굴을 필두로 하여 1980년 유적정화공사, 1990년 개발위원회 구성 및 추진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할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였습니다.
현 벽골제단지에는 벽골제와 농경문화를 대주제로 전시 및 자료수집과 연구조사를 진행하는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김제를 발원지로 일제강점기를 다룬 소설 아리랑의 자료를 전시하는 아리랑문학관, 그리고 전북미술계의 거목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친 나상목선생의 벽천미술관과 농경사를 주제로 어린이 관람객을 대상으로 하는 농경사주제관 및 체험관, 김제 우도농악관 등 문화시설과 각종 야외전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적 벽골제와 각 박물관들은 오래된 고을, 김제의 지역정체성 및 문화를 대내외에 천명하는 문화공간이자 휴식공간의 역할을 수행하며 문화백년지대계 김제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연혁
1980년 벽골제 유적정화공사(벽골제중수비 이전, 기반시설 신설)
1991년 민간주최 벽골제 개발위원회 구성(성금모금액 : 1억 3백만원)
1998년 04월 21일 벽골제수리민속유물전시관 개관
1999년 11월 13일 벽천미술관 개관
2003년 05월 16일 아리랑문학관 개관
2006년 12월 15일 (개칭)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박물관등록(전라북도 제6호)
2009년 10월 9일 농경사주제관 및 체험관 개관

총 면적 : 188,848㎡

벽골제 단지
창작스튜디오, 아리랑문학관, 소테마공원, 벽천미술관, 농경사주제관 및 체험관, 우도농악관, 단야루, 농경문화박물관, 단야각, 테마연못, 쌍용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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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안내
벽골제에서는 사적 벽골제와 각 박물관의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해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시설명은 문화관광해설사와 우리시 관광안내원에 의해 진행되며 일반 및 단체 관람객을 대상으로 합니다. 해설을 원하시는 관람객께서는 아래의 전화로 미리 예약해 주십시오.
전화 : 063-540-4094, 063-540-4098, 063-540-4985, 063-547-8503

관람시간

동절기(11월~2월) : 09:00 ~ 17:00
하절기(3월~10월) : 09:00 ~ 18:00
휴관일 : 매년 1월 1일, 매주 월요일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군경) 2000원, 어린이 1000원
단체(20인이상) 어른 2000원, 청소년(군경) 1500원, 어린이500원
입장료 면제대상
1. 국빈·외국사절단 및 그를 수행하는 사람
2. 공무수행을 위하여 출입하는 사람
3.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관 또는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
4. 보호자를 동반한 6세 이하의 영유아
5. 65세 이상인 사람
6. 김제시 관내에 주소를 둔 사람
7.「국가유공자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국가유공자 및 유족
8.「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독립유공자
9.「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등록된 장애인과 장애등급 1등급부터 3등급 까지의 장애인을 동반한 일명
10.「관광진흥법」제2조제12호에 따른 문화관광해설사 자격증 및 같은 법 제38조에 따른 관광종사원 자격증을 패용하고 단체관람객의 안내를 하기 위하여 입장하는 사람
11.「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라 책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12. 관광지에 유물 또는 자료를 기증한 사람
13. 그 밖에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전통가옥 숙박객
전통혼례 혼주 및 하객(결혼식 관계자 포함)
지평선아카데미 강사 및 수행자
전북 투어패스카드 소지자
명예시민증 소지자
※ 무료입장을 원하시는 분은 관련서류를 지참해주시기 바랍니다.

편의시설

주차장 : 1700대(승용차 기준)
쉼터 및 정자 : 23동
특산품 판매장 : 지평선 몰(특산품 및 다과 판매)

테마연못의 가운데 섬을 조성하여 초정과 물레방아를 설치하고 빙 둘러진 물길을 따라 무자위, 용두레, 맞두레를 설치하여 전래의 물대는 방법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관람객이 직접 인력수리도구를 사용해 보면 과거 농부들의 노동의 수고를 저절로 실감할 수 있는 좋은 체험 공간이다.

무자위
무넘이가 아주 얕은 곳에서 대량으로 물을 대는데 사용하는 연장으로 물을 자아올린다 하여 ‘무자위’라고 부른다.
한 개의 굴대(軸) 주위에 여러 개의 나무판을 돌려 붙여 마치 날개 달린 바퀴처럼 보인다.
이 나무판을 두 발로 번갈아 밟으면 바퀴가 돌아가고 퍼 올려진 물이 봇도랑으로 흘러들어간다.
지방에 따라서는 자새, 자애, 물자새, 무자새, 수룡(水龍), 수차(水車)등으로 부른다. 무자위는 평야지대의 논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맞두레

맞두레는 바닥이 좁고 위가 넓은 나무그릇 네 귀퉁이에 줄을 달아 두 사람이 마주서서 두 줄씩 잡고 물을 떠올리는 기구이다.
물이 깊이 고여서 두레나 용두레로는 물을 옮기기 어려운 곳이나 높은 언덕 같은 곳에 물을 댈 때 쓰인다.
두 사람이 같이 하는 것이라 힘을 더는 장점이 있으며, 파손이 쉬운 나무통 대신 양철통이나 헌 이남박을 대용하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쌍두레, 물두리, 물파래, 두레, 고리박으로 부른다.

용두레
물이 많고 무넘이가 높지 않은 곳의 물을 대량으로 퍼 올리는 연장이다. 흔히 논 한 귀퉁이에는 가뭄에 대비한 구덩이를 파고 물을 가두어 두는 둠벙이 있다.
이 둠벙의 물은 어느 정도까지 용두레로 푸고, 나머지는 맞두레를 이용해서 퍼낸다. 용두레를 사용할 때는 기둥 3개를 원뿔형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용두레 끈을 매어 앞뒤로 움직이면서 물을 푼다.
용두레에는 보통 두 말의 물이 실리고 두세 사람이 교대하면서 푸면 하루에 1,000석(石) 정도 물을 옮길 수 있다. 통두레, 파래, 품개, 풍개로 부르기도 한다.

소테마공원
작가 : 김형기, 재질 : 청동, 작품수량 : 총 14 점
전통농경사회에서 소는 사람 힘이 감당하지 못하는 논밭갈이나 짐 나르기 등 농사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고 사람들은 생구(生口)라 하여 소를 대접하였다.
농촌의 정경을 떠올릴 때면 소와 관련한 이런저런 풍광까지도 함께 연상되곤 한다.
이렇게 전래농경의 상징적 동물인 ‘소’를 주제로 전통농경사회의 기억을 공유하기 위하여 조각공원을 조성하였다.

연자맷간 (25.6㎡)
연자매라고도 한다. 발동기가 없던 옛날 한꺼번에 많은 곡식을 찧거나 밀을 빻을 때 사용하는 마소의 힘을 이용한 방아이다.
둥글고 판판한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옆으로 세워 얹어, 아래 위가 잘 맞닿도록 하고 마소가 끌고 돌린다.
정미소에 밀려 강원도 산골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으나, 옛날에는 마을마다 하나씩 있어 공동으로 사용하였으며 이곳을 연자방앗간 또는 연자맷간이라 하였다.

디딜방아 (25.9㎡)
발로 밟아서 곡식을 찧거나 빻는 농기구인 디딜방아는 양다리방아와 외다리방아의 두 가지가 있다. 방아채의 앞머리에는 공이가 달려 있어서 돌로 만든 확 속의 낟알을 벗기는 구실을 한다.
방아채를 디뎠다 얼른 놓는 서슬에 내려쳐진 공이의 힘으로 왕겨를 벗기게 되는 것으로, 토매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디딜방아는 곡식을 찧는 이외에 떡을 찧거나, 고추를 빻기도 하며, 메주콩을 이기는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쌍용
작가 : 최평곤, 재질 : 철골, 대나무, 높이:15m, 길이:54m, 직경:2m
전통사회에서 농사에 필요한 물은 전적으로 자연의 힘이었기에 물을 다스린다는 상상적 동물, 용에 대한 추구도 뿌리깊었다.
일례로 전통농경국가에서는 국왕에게 치수자(治水者)의 권능이 요구되었으며 왕은 용 상징을 권위확보에 활용하였다.
벽골제는 물을 제어하는 국가규모의 수리시설이었던 까닭에 역시 용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다.
김제 토착세력인 김제 조씨의 시조 조연벽장군의 전설이나 벽골제 쌍룡추, 용추(龍湫)와 용연(龍淵) 등이 그것이다.
본 작품은 벽골제와 생명인 물, 신화와 삶을 연결하는 상징적 고리이다.

청해진 유민 벽골군 이주 기념탑 장보고 청해진비
작가 : 김동헌 재질 : 문경석, 황등석, 오석, 스테인레스 스틸 작품수량 : 총 1 점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성왕 13년(851년)에 청해진사람들을 벽골군으로 옮겼다는 기사가 있다.
841년 청해진 대사 장보고가 염장에게 암살당한지 10년만의 일이다.
본 기념탑은 해양경영의 경험을 가진 청해진 유민의 벽골군 이주와 김제만경들 및 벽골제 경영과의 문화적 상관성을 주목하여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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