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산(太祖山) 도리사(挑李寺)는 우리나라 불교의 초전지(初傳地) 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즉 도리사는 묵호자(墨胡子) 와 동일인으로 짐작되고 있는 아도 화상에 의하여 눌지왕 때에 개창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는 아직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 이전이므로, 추측컨대 이곳 선산 일대를 중심으로 아도 화상에 의한 개인적인 포교가 이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도 화상에 의하여 개창될 당시 지금의 도리사는 산내에 위치한 금당암(金堂庵) 이었다. 그러므로 본래의 절터는 현재의 도리사 아래쪽에 있는 유허지(遺墟地) 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신라시대 도리사의 현상에 대하여는 잘 알 수 없고 또 당시의 조형물로 추정할 만한 물적 근거가 희박한 실정이었으나, 근래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 내에서 발견된 금동육각사리함(金銅六角舍利函, 국보 제208호) 과 불사리(佛舍利) 의 출현으로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었다. 이는 놀라운 일로서 사리함은 신라 8세기의 전형적인 금동사리함으로 판명되었다. 즉 창건 이래 전래되던 불사리를 금동육각사리함과 함께 조선시대의 석종부도(石鍾浮屠) 에 봉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존 건물은 법당 극락전과 삼성각을 비롯하여 선원과 2동의 요사, 그리고 근래 불사리의 출현으로 새로 건립된 적멸보궁(寂滅寶宮) 이 있다. 먼저 극락전은 정면 3간, 측면 3간의 거의 정방형의 다포팔작지붕이다. 건평은 총 15평이며, 아름답게 단청을 한 법당은 주변의 송림과 함께 잘 조화되어 있다. 건물의 중건(重建) 은 법당 내부에 봉안된 불상의 연대와 거의 같은 17세기경으로 보아도 무난하리라 본다. 다만 이후 고종 12년(1875) 용해 화상(龍海和尙) 에 의하여 중수되었고, 다음해 단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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