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령사(黃嶺寺)는 신라 선덕왕 7년(638) 의상 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진성여왕(眞聖女王) 3년(889) 대구 화상(大矩和尙) 이 중창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함창을 중심으로 봉기한 의병의 발원지가 칠봉산 아래 황령사로 알려져 있어 임란(1592년) 의 병화로 대웅전, 천불전, 나한전, 심검당 등 대소 건물이 모두 불타버렸다. 그후 대웅전과 심검당은 다시 건립되었으나 1962년 불의의 사고로 소실되었고, 현재의 당우는 1966년 주지 상호 화상에 의하여 재건되었다.
대웅전 역시 1976년과 1980년에 걸쳐 기와보수와 단청을 하였다. 규모는 정면 3간, 측면 2간의 팔작지붕 총 12평의 건물이며, 내부의 대세지보살상은 옹정칠년기유오월일(擁正七年己酉五月日) 경상우도(慶尙右道) 용궁현관(龍宮縣官) 이 동령(東嶺) 백화산(白華山) 천덕사(天德寺) 에서 옮겨온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영조 5년(1729) 이전에 이 불상이 이미 제작되었음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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