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악산(淵岳山) 중턱에 서향해 있는 용흥사(龍興寺)는 신라 문성왕 원년(839)에 진감 선사(眞鑑禪師) 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연악산은 일명 갑장산(甲長山) 이라고도 하나 창건 이후의 사실에 대하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805년에 지은 <중수상량문(重修上樑文)>에 따르면, 고려 공민왕 당시 나옹 화상이 시창(始創) 한 후 인조 25년(1647) 에 법심 인화(法心印和) 대사가 초영(初營), 숙종 6년(1680) 사유 홍흡(思裕弘洽) 대사가 2중수(二重修), 숙종 33년(1707) 사준 도인(思俊道仁) 대사가 3중수(三重修), 순조 6년(1806) 4중수(四重修), 1967년 주지 중덕 비구니 스님에 의하여 5중수(五重修)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이때는 박정희 대통령의 자씨(姉氏) 박재희 청신녀의 신심으로 극락보전이 중창되고, 삼존불의 도금과 석고 16나한상(70 X 34cm) 을 도분(塗粉) 하였다. 이 나한상은 비록 근세의 작이지만 그 조각 수법이 우수하고 각기 개성을 지닌 독특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경내에는 극락보전, 나한전, 삼성각, 선방 등이 있다. 극락보전은 정면 3간, 측면 3간의 팔작지붕이며, 총 25평이다. 나한전은 정면 3간, 측면 2간의 맞배집이며, 총 14.6평이다. 삼성각은 정면 3간, 측면 1간이며, 총 4평이다. 내부에는 칠성탱(142 X 160cm, 1984년), 독성탱 (142 X 117cm, 1974년), 산신탱(142 X 116 cm, 1984년)을 봉안하고 있다. 극락보전은 좌측에 자리잡은 백운선원(白雲t禪院) 은 1983년에 착공하여 다음해 5월에 완공된 건물이다. 건물의 형태는 정면 6간, 측면 4간, 총 49평에 달하는 팔작지붕이다. 요사는 ㄷ자형으로 정면 5간, 측면 5간의 총 47.6평의 맞배지붕이다.
오층석탑
극락보전 앞의 오층석탑은 1976년 6월 30일 극락보전 탱화에서 사리가 발견되자 석탑 건립을 위하여 재일교포 김철유(金喆裕) 씨의 1천만 원 시주와 함께 동참시주 700만 원을 들여 1982년 3월에 착공하여 그해 10월에 완공하였다. 초층탑신에는 사방불(四方佛) 을, 상층기단면석에는 팔부중(八部衆), 그리고 난간에는 화문(花紋) 을 조각하였다.
석탑의 크기는 총 높이 9.8m, 기단 폭 3m이다. 이때 극락보전 앞의 쌍사자석등(220 X 60cm) 2기도 함께 조성되었다.
석조부도(石造浮屠)
극락보전 뒤쪽 약 250m 지점에 2기의 조선시대 석종형(石鐘形) 부도가 전해진다. 그 가운데 큰 것은 총 높이 260cm에 폭 103cm이며, 다른 하나는 총 높이 78cm에 폭 94cm이다. 이들 가운데 전자는 기단부가 매몰되었는지 결실되었으나, 탑신이 너무 세장(細長) 하여 안정감이 결여된 느낌이다.
극락보전 후불탱
극락보전 내부에 봉안된 후불탱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크기(434 X 318cm)가 거대하여 괘불에 준할 정도이다.
훼손이 심하였으나 이번 조사에서 완전하게 보수하였다. 그 구도는 일종의 고려불화 형식과 동일한 이중구도를 취하였다. 그림의 하단에는 좌우에 사천왕을 배치하였고, 중앙 상단의 연화대 위에 아미타본존불이 정좌하였으며, 그 주변에 팔대보살과 범천, 제석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그 후면에는 제자상과 구름 속에 화불을 나타내었다.
그림을 부분적으로 탈락된 부분이 있으며 채색은 어두운 녹색계통을 많이 사용한 편이나, 그 구도와 필법 등은 우수하다. 애석하게도 본래부터 화기가 기록되지 않아 정확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17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괘불(掛佛)
괘불의 크기는 총 높이 1,003cm, 총 폭 620cm에 그림(811 X 531cm)은 조선시대 유행한 삼존불을 등장시키고 있다. 즉 그 구도는 그림의 중앙부를 가로질러 중앙에 석가, 그리고 좌우 협시에 약사와 아미타불을 배치하였다. 이 삼존의 하단부에는 각기 삼존의 협시보살 2구를 시립시켜 도합 6구의 보살을 등장시키고 있으며, 사천왕은 그림의 상하 네 곳에 배치되었다. 중앙 본존불의 머리 부분에서는 흰색의 방광이 있고, 그 사이로 제자상과 여래상, 팔부중 그리고 타방세계의 화불(化佛) 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에 나타난 채색은 홍색이 주조를 이루고 두광 부분에 녹색이 있을 뿐 전체적인 분위기는 적황색이 중심이 되고 있다. 따라서 그림의 채색은 잘 조화되었다고 보기는어려우나 다만, 조선시대 대웅전의 일반적 삼존형식을 이루는 대표적 존상을 함께 나타낸 것이 주목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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