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사(東海寺)는 조선태조 7년(1398) 무학 대사가 창건하였다. 이곳의 지형은 배가 가는 것과 같은 행주형(行舟形) 이므로 식산(息山) 위에 있는 고수대(高秀대) 와 일월암(日月庵) 아래에 동해사를 지어 읍의 기틀(邑基) 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상산지(商山誌) 3권 사찰조(寺刹條) 에 동해사는 일명 한산사(寒山寺) 라 하였는데, 고을의 10리 지점 식산(息山)의 고수대(高秀대) 아래 무학 상인이 읍기(邑基) 를 위하여 절을 지었다고 하였으며, 절의 뒤에는 대명단(大明壇) 이 있어 처사 이경남(李景南) 이 대명황제(大明皇帝)를 위하여 매년 제일(祭日) 에 분향배곡(焚香拜哭) 하였다고 하였다.
이 같은 사실은 사중에 전해지는 동해사사실기(東海寺事實記)에도 실려있어 참고된다.
이들 사중기록인<동해사사실기> 및 중건기(重建記)에 의하면 동해사는 그후 인조 16년(1638) 희선 화상(熙善和尙) 이 중창하였고, 다시 헌종 4년(1838) 용담 화상(龍潭和尙) 이 3창(三創) 하였다. 그러나 본래의 절이 황폐하였음인지 고종 16년에는 화영 산인(和永山人) 과 신도 박정선(朴貞善), 이정호(李挺豪) 등이 협력하여 본래의 금당지(金堂址) 로부터 서쪽(<동해사사실기>에는 동쪽이라 하였으나 착오인 듯하다)으로 조금 옮겨 법당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모두 1968년 이후 재건되었으나, 다만 현존 건물은 법당, 칠성각, 주지실 및 요사가 모두이다. 이들 가운데 법당은 정면 4간, 측면 2간의 총 18평이며, 내부에는 석조여래좌상(60 X 40cm)과 후불탱(105 X 200cm), 그리고 신중탱(104 X 124cm)을 봉안하고 있다.
다음으로 칠성각은 정면과 측면 각 1간의 맞배집 4평이며, 내부에는 칠성탱(127 X 127cm)과 지장탱(139 X 170cm)을 봉안하였다.
산신각 역시 정면과 측면 각 1간에 2평의 규모이며, 내부에는 산신탱(112 X 90cm)을 봉안하였다. 그 외 조왕탱(60 X 43cm)이 전래되고 있다.
또한 사중에는 <화엄경> 80권이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본래의 대웅전 터는 배치도면에서와 같이 정면 4간, 측면 2간의 주초가 그대로 유존(遺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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