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룡산 묘각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1천300여년전에 신라 선덕여왕(632~647)당시 의상조사(625~702)께서 창건하신 도량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화동에 위치하고 있다.
요사채는 조선중기의 대표적 일반 가옥형태인 ㄷ자형 양식을 따랐으며 입구가 부처님어간 (정중앙)을 비켜난 것이 특이하다 할 수 있다.
선조 25년에 일어난 임지왜란으로 사찰전모가 소실되었으나 대명숭정 18년(1644)에 현재 요사채를 창건하였다.
또한 영조 36년(1706)에 삼성을 중창하였으며 광서15년 (1889)에 다시 법당을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전하여온다.
묘각사를 창건할시 당시 산의 이름이 기룡산이 된 것은 동해 용왕이 의상대사에게 그 법을 청하고자 말처럼 달려 날아왔다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전하는데 날듯이 비상하여 달려온 용왕은 대사에게 곧바로 법을 설 하여 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대사가 법성계 일구를 설 하자 홀연히 묘한 깨달음을 얻은 용왕은 곧바로 승천 하여 감로의 비를 뿌렸는데 이는 당시 관내의 오랜 가뭄을 해소하는 단비가 되었음은 물론 기근과 가뭄으로 피폐한 민심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한다.
대사께서는 이를 기리기 위해 사찰의 이름을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 하며 묘각사라 짓고 후대에 와서 이곳 묘각사에서 용왕제와 기우제를 자주 지냈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묘각사의 가람
법당에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좌보처관음보살과 우보처 지장보살의 삼존 불로 모시는 극락전의 형식으로 현재는 아미타물과 지장보살님만 모시고 있다.
극락전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를꾸며 놓은 전각으로 이세계의 주재자이신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어 아미타전이나 무량수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이곳은 문헌이나 지명이 반증하듯 불보성지었음을 알 수 있는데 뒷산이 보현산이고 마을입구부터 용화동, 삼매동, 덕연동, 선원동, 원각동, 공덕동, 정각등 수많은 지명이 마치 화장세계 불국정토를 표현한 듯 하다. 이렇듯 10만억 국토를 지닌 서방정토는 이곳 기룡산에 유연찰토를 정하며 바로 이사바에 시현되고 웅장되어 있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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