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 實相寺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20번지 지리산 자락에 아늑하게 자리한 실상사(實相寺)는 유구한 역사와 함께 상당수의 성보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명찰(名刹)이다. 주위에 웅장한 지리산의 종주맥과 방장산(方丈山)이 가람을 둘러싸고 있지만 실상사가 자리한 곳은 분지를 이루고 있어 평지가람 형태를 띠고 있다.
사역의 범위는 지금보다도 훨씬 컸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상당히 축소되어 있는 상태이다. 실상사는 유형의 문화유산을 상당 수 간직하고 있기도 한 곳이지만 오히려 한국 불교의 중심 사상인 선(禪)의 역사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한국의 선사상은 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으로 대표되는 여러 산문이 개창되면서 본격적인 개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곳 실상사는 구산선문 가운데 최초로 형성된 실상산파(實相山派)의 근본 도량이다. 실상산문을 개창한 분은 홍척국사(洪陟國師)인데 스님은 중국의 고승 서당 지장(書堂智藏)의 문하에서 선법을 이어받은 후 826년에 귀국하였으며, 이후 828년(흥덕왕 3) 실상사를 창건하고 선 수행의 도량으로 정착시켜 나갔다. 실상사라는 절 이름은 ‘법신무적 실상이명(法身無跡 實相離名)’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실상산문의 개창자 홍척국사에 대한 자세한 전기(傳記)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실상사의 정확한 창건 연기를 전하는 자료는 찾아볼 수 없으나, 귀국 이후 2년 만인 828년 실상사를 창건하였다는 내용이 정설로 되어 있다. 아울러 처음 도량을 형성한 곳은 지금의 백장암(百丈庵) 터이고, 대중들이 늘어나자 홍척의 제자인 수철화상(秀澈和尙)이 지금의 실상사 자리로 옮겼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실상사 신중도 實相寺 神衆圖 Guardian Deities of Silsangsa Temple
조선 1752년
면에 색
150.2×113.3
금산사성보박물관
1752년 조성된 실상사 신중도는 화면과 화기가 잘려 도난당할 뻔한 흔적이 남아 있다. 상단에 황색과 녹색의 구름을 표현하고, 합장을 하고 중앙을 향해 있는 제석천과 범천이 자리하였다. 그 양 옆으로 일궁천자와 월궁천자를, 제석천과 범천 사이에는 번과 당을 들고 있는 동자와 동녀를 배치하였다. 그 아래 화면 중앙에는 깃털장식의 투구를 쓴 위태천도 합장을 한 채 서있다. 하단에는 용왕과 무장신들을 배치하였다.
화기에는 건륭乾隆 17년(1752) 극락전에 봉안하였으며 대법당 삼장도와 함께 동시 조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신중도는 전라남도 무주군에 위치한 북고사北固寺 용화전龍華殿 신중도와 매우 유사한 도상과 구도를 가지고 있다. 이 불화를 그린 회밀廻密은 18세기 중엽 활약한 화승으로 상한작은 1745년 <나주 다보사多寶寺 괘불도>이며, 하한작은 1757년에 그린 <구례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도> 중 <비로나자불도>이다. 이 작품들의 수화사가 의겸이었으므로 희밀은 그 유파의 일원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상사 독성도 實相寺 獨聖圖 Hermit Sage of Silsangsa Temple
조선 1874년
면에 색
85.5×68.5
금산사성보박물관
왕실발원으로 조성된 실상사 독성도는 왕실의 옥체안녕玉體 安寧과 만세천추萬歲千秋를 기리며 순종이 태어난 1874년에 제작되었다.
나반존자는 방형의 좌석坐席 위에 주장자挂杖子를 짚고 앉아 있다. 상단에는 흰 선으로만 구름을 표현했으며, 우측에는 패를 그려 넣어 화기를 기록하였다. 소나무나 암벽 등의 배경 묘사가 간결하고 색감이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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