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사 新光寺
신광사(新光寺)는 장수군 천천면 와룡리 38번지 성수산(聖壽山)에 자리한다. 성수산은 해발 1,059m의 크고 높은 산으로서 장수읍 쪽의 팔공산(八公山, 1,151m)과 이어지면서 진안군과의 경계를 이룬다. 전하기로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즉위하기 전에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다가 이 산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다고 하여 ‘성수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신광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30년(흥덕왕 5) 무염국사(無染國師, 801~888)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무염국사는 충청남도 보령 성주사(星炷寺)에서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일으켜 후학들을 지도했는데, 신광사가 자리한 지역에는 그럴 만한 절이 없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여 절을 지었으며, 절 이름인 ‘신광사’는 곧 항상 새로운 인재가 자라나라는 뜻에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창건 이후 고려시대에 절이 어떠했는가는 기록이 없어 잘 알 수 없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1597년의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불에 타 없어졌으며, 그 뒤 1649년(인조 27) 천해선사(天海禪師)가 중창했다. 한편 18세기 후반에 지어진 『가람고』에 ‘신광사(神光寺)’가 있으며, 『범우고』에도 같은 이름이 있어 그 무렵에도 절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어서 1848년(헌종 14)에는 현감 조능하(趙能夏)와 운장(雲漳) 스님의 노력으로 중수되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인 1910~1945년 사이에 편찬된 『장수군지』에, ‘신광사는 현(縣)의 북쪽으로 20리에 있으며, 성수산 아래에 자리한다.’ 고 기록되어 있어 근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법등을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근래에는 1950년의 한국전쟁 때 잠시 절이 비었다가 1969년에 보수 되었고, 1985년에도 보수된 바 있다. 최근에는 1997년부터 고경(古鏡) 주지스님이 주석하고 있는데 그 해에 요사를 중수하였다. 그리고 1998년 칠성각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산령각을 새로 지었으며, 같은 해 선방을 지었다. 신광사는 예로부터 정성을 다하면 신비로운 서기(瑞氣)가 내린다고 전해져 수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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