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사 圓通寺
원통사(圓通寺)는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1번지 남덕유산(南德裕山)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무주읍에서 장수군 쪽으로 가다가 안성면에서 왼쪽의 덕유산으로 들어가면 원통사가 나온다. 1698년(숙종 24) 세워진 「원통사중창비」에는 절이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밖에 창건 이후 고려시대까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자세히 전해주는 자료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금산군」<불우(佛宇)> 조에 덕유산의 원통사(元通寺)가 보이고 있어, 조선 전기부터는 역사 기록에 나타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와서 절은 중흥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1698년(숙종 24) 탄언 도영(坦彦道英)ㆍ혜왕 일학(惠王一學)스님이 법당과 종각을 중창하는 일대 불사를 단행한 것이다. 이전의 가람이 어느 정도 규모였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이때의 중창으로 원통사는 법당과 종각ㆍ누각ㆍ요사 등의 당우를 갖추게 되었다. 18세기에 간행된 『여지도서』ㆍ『가람고』ㆍ『범우고』 등에도 절이 존재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곧 ‘원통사는 덕유산에 있으며, 무주부(付)로부터 남쪽으로 50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하였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이후, 의병장 김동신(金東臣)ㆍ문태서(文泰瑞)ㆍ신명선(申明善) 등의 부대가 이 절을 의병활동의 근거지로 삼았었다. 원통사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호국의 터전이 되었던 것이다. 1907년에서는 아미타극락회도ㆍ칠성탱화ㆍ신중탱화 등을 봉안하였다. 그러나 1949년 여순사건의 병화로 전 당우가 소실되었으며,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로 미처 절을 복구할 겨를을 갖지 못한 채 당시 주지였던 황범인(黃梵仁) 스님이 명천마을에 임시로 법당을 마련할 뿐으로 근근히 부처님의 법을 전하였다. 범인 스님은 그 뒤 1957년 가람 재건에 착수하여 인법당과 산신각을 건립하였으나 복원의 뜻을 완전히 이루지 못하고 1962년 입적하였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1976년 주지로 부임한 배정공(裴正涳) 스님이 옛 터에 움막을 짓고 중창 불사를 기원했는데, 마침내 1983년 서울 삼보법회 회장으로 있던 황범인 스님의 둘째 아들 황경석(黃慶石) 거사의 시주로 초연교(超然橋)ㆍ선초당(善超堂) 등을 세웠다. 1985년에는 대웅전을 신축하고 영단탱화를 봉안하였으며 이듬해에 지장탱화를 봉안하였다. 최근에는 1996년 명부전을 새로 지어 중창을 이루었다. 1998년 명부전 봉불식(奉佛式)을 하였으며, 산신각을 새로 지었다. 안에는 산신을 봉안하였고 단청도 마무리 되었다. 현재 원통사지가 전라북도 기념물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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