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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1교구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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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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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사찰의 하나인 승보사찰로서 매우 유서깊은 절이다. ‘송광’이라는 절 이름은 조계산의 옛 이름인 송광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송광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이 있다. 구전해 내려오는 전설에는 이 산이 장차 ‘18공이 배출되어 불법을 널리 펼 훌륭한 장소’이기 때문에 송광이라 하였다고 한다. 소나무 ‘송’자를 ‘18공’이라고 파자하고 ‘광’자를 불법광포의 뜻으로 해석한 데서 유래한다. 또, 다른 전설에는 보조국사가 이 절터를 잡을 때 나복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를 날렸더니 국사전의 뒷등에 떨어져 앉았으므로 이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라고 불렀다 한다. 이 이야기를 토대로 하여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라고 풀었다. 김영수는 이 산에 ‘솔갱이’가 가득 차 있었으므로 지방사람들이 이 산을 예로부터 ‘솔메’라고 해 왔던 것이며, 그래서 송광산이란 이름이 생긴 것으로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송과의 ‘광’은 원래 언덕을 의미하는 ‘강’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승려 임석진도 <송광사사지>를 저술하면서, 김영수의 해석을 가장 타당하다고 보았다. 산에 소나무를 많이 심어 바위가 드러나지 않게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역사]
송광사의 창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송광사사적비>와 <보조국사비명> 및 <승평속지>등을 보면, 신라 말기에 체징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그 당시에는 길상사라고 불렀고 승려 수는 30명 내지 40명을 넘지 못하는 규모의 사찰이었다. 그 뒤 고려 인종 때의 석조가 중창하려는 원을 세우고 역부를 소집하고 임목을 준비하였으나, 완공하지 못한 채 죽었으며, 그뒤 얼마 동안 길상사는 거의 폐허화되었다. 50여년을 지난 뒤 보조국사가 이곳으로 정혜사를 옮겨옴으로써 새 규모의 사찰로 발전하였다. 보조국사가 송광사를 대수도도량으로 만들 수 있었던 연원은 1182년(명종 12) 개성 보제사의 담선법회에 참석하여 수행결사를 약속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법회에 참석하였던 승려들에게 도를 닦을 것을 간곡히 권유하여,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맹문을 지어 정혜결사를 맺을 것을 기약하였다. 그 뒤 10년이 지나, 정혜결사를 약속하였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인 득재가 팔공산 거조사에 머물면서 1188년 봄에 결사를 기약하였던 지기들을 모은 뒤 보조국사를 청하였다. 그 뒤 1197년에 보조국사는 결사의 동지들과 함께 지리산 상무주암에 들어가 3년 동안을 정진하다가 송광산 길상사로 옮겨와 자리를 잡았다. 이때부터 조선 초기까지를 조계산 수선사시대라 부르는데, 이는 즉위하기 전부터 보조국사를 존경하였던 희종이 송광산 길상사의 이름을 고쳐 조계산 수선사로 하도록 친히 글을 써서 제방을 내렸기 때문이다. 1210년 보조국사가 입적하자 그의 고제자 혜심은 왕명에 의하여 조계산 수선사의 제2세주가 되었고, 그때부터 조선초에 이르기까지 180여년 동안 15명의 국사가 이곳을 중심으로 수선사의 정신을 이어 받아 우리나라 선종을 이끌어왔으며, 이와 같은 탁월한 후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송광사는 승보사찰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 건국된 직후, 송광사 16번째의 국사에 해당하는 고봉화상이 이곳에 왔을 때에는 상당히 황폐한 상황에 있었다. 고봉은 1395년(태조 4) 불ㆍ법ㆍ승의 전당을 중건하였고, 정종은 수륙사를 중창하도록 윤지를 내렸다. 1420년(세종 2)에는 고봉의 뒤를 이어 중인이 당우도 증축하였고, 절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정종 때의 설립되었던 수륙사를 철폐하고 선종으로 복귀시키는 행정적인 절차도 밟았다. 그 뒤 임진왜란과 정유재 란으로 수각ㆍ임경당ㆍ보조암ㆍ천자암 등이 소실되었을 뿐 아니라, 왜군의 노략질을 견디다 못한 승려들이 다른 사찰로 옮겨가거나 속가로 되돌아감에 따라 한때 폐사가 되다시피하였다. 이에 응선을 수각과 천자암과 보조암ㆍ임경당을 차례로 중건한 뒤 당시 지리산에 있던 부휴를 모셨다. 부휴는 제자 400여명을 거느리고 이곳으로 옮겨와 조전과 동행랑, 천왕문 등을 새로 짓고 기타 건물을 보수하였다. 그 뒤 600여명의 송광사 승려들이 부휴를 모시고 동안거를 성대히 보냄으로써 근세에 이르는 송광사의 명맥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1842년(헌종 8) 3월 2일 낙하당에서 일어난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하여 불우 5개소, 승료 8옥, 공사 12곳 등 2,152칸이 소실되 었으며, 유물로는 대웅전의 삼존상ㆍ경판 및 외향각의 유조, 창고에 있는 모든 소장품이 소실되었다. 이듬해 기봉과 용운은 대웅전ㆍ명부전ㆍ응향각ㆍ법왕문 등을 차례로 중건하였는데, 1856년(철종 7)까지 중창에 소요된 기간은 14년이었으며 경비와 총액은 1만1290냥에 달하였다. 그 뒤 율암은 관의 협력을 얻어 1924년에서 1928년 사이에 용화등 등 9채를 중수하였고 명성각 등 7채를 중건하였으며, 사감고ㆍ장탄문을 신축, 종각을 증축하 였다. 1948년 1월 여수반란사건과 6ㆍ25사변으로 조계산일대에 무장공비들이 잠입하자, 공비 토벌을 위하여 국군은 작전상 사찰 주변의 나무를 벌채하였고, 공비들은 사찰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키다가 1951년 5월 대웅전 등 사찰의 중심부를 불태웠다. 1955년에서 1961년 사이에 취봉과 금당은 불탄 건물을 다시 창건 또는 중창하였다. 1970년대에는 조실인 구산이 설법전ㆍ수선사ㆍ화엄전 등을 보수하였고 조계총림을 부활하여 수선사으 전통을 되살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1983년부터 주지 현호가 대웅보전ㆍ지장전ㆍ승보전 등 크고 작은 건물 20여동을 새로 세우거나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람배치 및 당우]
<사적기>에 의하면 고려 명종 때 이미 80여동의 건물을 가진 대사찰이었고, 1951년 공비들에 의하여 소실되기 전만 하여도 건물 총수가 80여동을 유지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재건된 건물을 합하면 약 50여동의 대사찰로서 그 사격을 유지하고 있다. 중요한 건물은 대개가 서향하여 있다. 6ㆍ25사변 전만하여도 가람배치가 법계도의 도표처럼 배치되어 비를 맞지 않고 경내를 다닐 수 있었으며, 대방만도 6방이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다. 6방은 남쪽의 법성료ㆍ해청당ㆍ행해당, 서쪽의 문수전ㆍ임경당ㆍ도성당이다. 현존하는 건물을 중심으로 동구에서 부터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청량각ㆍ일주문: 청량각은 송광사가 자리잡은 조계산의 계곡물이 동구에서 굽이치는 지점의 깊숙한 계곡에 홍교를 쌓아올려 그 다리 위에 조성된 건물이다. 이 건물은 1921년에 중건하고, 1972년 승주군의 보조에 의하 여 중수하였다. 청량각에서 500m 오르면 일주문이 있고, 일주문 앞에는 송광사의 역대 고승 및 공덕주의 비석들이 있다. 다포로 형성된 일주문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이다. 이 문의 현액이 보통 옆으로 한 줄로 쓰이는 데 대하여 종서로 씌어 있어 특이하다.
② 척주각ㆍ세월각ㆍ우화각: 일주문 뒤쪽에 4방 1칸씩의 몹시 작은 건물이 두 채 있는데, 현판에 척주각ㆍ세월각이라 하였다.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건물이다. 죽은이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재식시 영가의 관욕처가 된다고 한다. 즉, 망령도 남녀를 갈라서 척주각은 남자 영가를 위한 관욕소이고, 세월각은 여자 영가의 관욕소가 된다. 영가가 절에 들어오기 전에 이 관욕소에서 목욕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관욕소 왼쪽 에는 보조국사가 스스로의 불멸을 입증하기 위하여 심었다는 고향수가 있다. 높이 15m의 이 고목나무는 보조국사가 다시 송광사를 예방할 때 소생한다는 전설이 얽혀 있다. 고향수를 지나면 계곡을 지나는 곳에 능허교 가 있고, 이 위에 우화각이라는 일종의 문루가 4칸 길이로 서 있다. 이곳에는 예로부터 송광사를 거쳐간 시인ㆍ묵객들이 지은 한시가 많이 걸려 있다. 건립연대는 1700~1711년 사이이며, 1774년(영조 50)에 중수하였다.
③ 천왕문ㆍ해탈문ㆍ대장전ㆍ종고루ㆍ법왕문: 이 건물들은 모두 대웅전을 향하여 일직선상에 나란히 위치하였다. 이들 가운데 천왕문을 제외하고는 1951년 공비들에 의하여 불타버렸고, 현재 종고루만이 재건되었다. 천왕문은 1609년(광해군 1)에 초창하여 1718년에 중수하고 이듬해 봄에 내부의 천왕상을 중수하였으며, 또 100여년이 지난 1806년(순조 6)에 다시 사천왕상을 중수하고 채색하였다. 현 건물의 크기는 4방 3칸으로서 23평이며, 목조 사천왕상이 있다. 해탈문은 화재 전에 정면 3칸으로서 지붕의 중앙에 낮은 규모로 1칸을 다시 올려 건물이 독특한 양상을 띠었다고 한다. 대장전 안에는 화재를 입기 전까지만 해도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었 고, 사찰의 도서실로 사용되었다. 당시의 신문ㆍ잡지ㆍ도서 일체는 물론 작은 불상들이 봉안되어 있었으며, 현 박물관은 유물들은 소재 전에 이곳에서 꺼내어온 것이라 한다. 당시 보조국사의 장삼은 유리장 속에 걸어두 었고, 가사는 비단으로 되어 있었으나 많이 낡아서 함 속에 펴두었는데 불타버렸다. 종고루는 화재 이전에는 7칸 2면의 큰 건물이었고 지금처럼 아래쪽 중앙을 바로 통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1962년에 중건되었다. 현재 2층에는 범종ㆍ운판ㆍ목어ㆍ홍고등 불전사물이 있다. 법왕문은 정면과 측면 각 3칸이었으나 역시 소실되고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 이 문을 통과하면 법왕인 부처님을 봉안한 대 웅전에 바로 도달할 수 있다는 뜻에서 이 문을 법왕문이라고 한 것이다.
④ 대웅전ㆍ설법전ㆍ수선사: 대웅전은 송광사의 중심건물이다. 1951년의 화재로 불탄 뒤 1961년에 주지 금당이 중창하였다. 그 당시에는 내부에 비로자나불을 1구 봉안하였고, 건물은 전면과 측면 각 3칸이었다. 그뒤 1983년으 중창 때, 평면 넓이 108평의 亞자 형의 건물을 다시 세웠으며,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연등불ㆍ미륵불 등의 삼존불을 봉안하였다. 대웅전의 뒤쪽에는 대상의 건물들로서 설법전ㆍ수선사 등이 있다. 대웅전 뒤쪽 으로 설법전이나 선방 등이 있는 예는 요즘의 다른 사찰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가람배치이다. 대웅전 뒤 계단을 올라 진여문을 통과하면 설법전에 이른다. 설법전은 본래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두던 곳으로, 1899년 봄, 조정에서 인출한 해인사의 대장경 4부 가운데 1부를 봉안하였으나 1951년 화재 때 설법전과 함께 소실되었다. 현 건물은 1968년 4월 30일에 재건되어 법회 등을 위한 대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수선사는 최초에 조 계총림의 방장인 보조국사의 거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는 조사당으로 이용되었다. 현 건물은 1968년 여름에 착공하여 1969년에 낙성된 정면 6칸ㆍ측면 4칸의 건물이며 내부에는 커다란 원경만 있다. 이 건 물은 수행하는 선객이 이용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현재 외국인 승려 여러명이 함께 정진하고 있고, 일체 외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는 분위기가 차분한 선실이다.
⑤ 상사당ㆍ하사당ㆍ응진전: 송광사의 건물은 대웅전 뒤의 높은 축대를 기준으로 대상과 대하로 대별된다. 대상의 건물로는 상사당ㆍ하사당ㆍ향적전ㆍ응진전ㆍ성수전ㆍ산신각ㆍ진여문ㆍ청운당ㆍ백운당ㆍ설법전ㆍ 차안당ㆍ조사당ㆍ국사전ㆍ진영당 등이 있다. 상사당은 하사당과 함께 남향으로 병립해 있는데 제9대 국사 담당이 이곳의 물을 마시고 3일 만에 오도하였으므로 일명 삼일암이라고 부른다. 지금의 수선사 건물을 짓기 전 에는 이곳이 선방으로 사용되었다. 하사당은 보물 제263호로 지정되어 있는 특수한 건물이다. 건축양식이 국사전과 같으며 조선초기형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응진전은 1951년의 대화재를 모면한 1623년(인조 1)의 건 물로서 정면 3칸, 측면 4칸이며, 지붕은 역시 맞배지붕이다. 내부에는 석가여래와 그의 제자 16나한을 봉안하였으며, 중앙 동쪽 벽 후불탱화는 1724년(경종 4) 화승 의겸이 그린 것이며, 오른쪽의 탱화는 1725년에, 왼쪽 의 탱화는 같은 시기에 회안등에 의하여 조성되었다. 응진전 바로 옆에는 노전의 화목을 적재해 두는 향적전이 있다.
⑥ 국사전ㆍ진영각: 국사전은 승보사찰 송광사의 상징적 건물이다. 송광사와 더불어 나라를 빛낸 국사들의 영정을 봉안하고 그들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일종의 법당이다. 이곳은 일명 자음당이라고도 하며, 옛날에는 참선을 하는 수선장으로 이용되었다. 이곳에 봉안된 16국사는 조계종의 가풍을 선양하고 불교의 진면목을 드러낸 한국불교의 증인들이다. 현재 이 건물은 국보 제56호로 지정되어 있다. 진영각은 그 편액을 풍암영각이라 고 하였다. 그 까닭은 조선시대의 송광사 대덕들으 거의 다 풍암의 법손이었으므로 그와같은 이름을 붙이게 된것이다. 사찰의 기록에 의하면 1852년에 건립되었으며, 전면 3칸, 측면 2칸의 이 건물안에는 주로 풍암의 문 하대덕들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⑦ 약사전ㆍ영산전: 약사전은 송광사 안에서 규모가 가장 작은 법당이다. 건물 양식이 독특하여 현재 보물 제302호로 지정되어 있다. 내부에는 약사여래상과 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영산전은 보물 제30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석가여래의 소조상을 비롯하여 영산회상도, 석가여래의 일생을 묘사한 팔상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중앙의 영산회상도는 1725년에 만들어졌고 화승은 의겸 등이다. 팔상탱화 역시 같은 시대에 이룩되었 으나 각기 다른 15명의 화승에 의해서 이룩되었다.
⑧ 관음전ㆍ명부전ㆍ화엄전: 관음전은 1903년에 건립되었으며, 관음전의 뒤쪽 언덕에는 보조국사의 부도탑이 있다. 높이 250cm의 탑은 고려 말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고, 4각 기단 등은 대체로 딱딱한 감을 주고 있다. 그 옆에는 ‘불일보조국사감로지탑’이라고 쓴 오세창의 글씨가 있다. 전면과 측면이 각각 3칸인 명부전은 유명계의 시왕을 봉안하였으므로 일명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화엄전은 대웅전 서남방 약 300m 지점에 위치한다. 1641년 건립된 화엄전에는 송광사의 장경판본들이 봉안되어 있다. 화엄전 주위에는 53불의 석불을 봉안한 불조전이 있고, 삼성각ㆍ월조헌이 있다. 이 불조전은 1684년에 건립되었고 1905년과 1946년에 중수하였다.

[유물 및 사간장경]
이 절에 소장된 유물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재로는 국보 제42호인 목조삼존불감을 비롯하여 국보 제43호인 고려고종제서, 보물 제572호인 노비첩과 수선사형지기, 보물 제134호인 경질과 보물 제175호인 경패, 보물 제176호인 금동요령 등이 있다. 전라남도유형문화재로는 제18호이니 자정국사사리함, 제 19호인 은견난사, 제22호인 송광사금강저, 제28호인 고봉국사주자원불, 제30호인 팔사파문자 등이 있다. 이 중 능견난사는 바루로서 풀리지않는 신비성이 있다.

[부속암자]
기록에 의하면 조계산에는 모두 16개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암자들은 폐허가 된 채 유지만 남아 있거나 아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 상태에 있다. 현재 수행승이 거처하고 있는 암자는 천자암ㆍ부도암ㆍ감로암ㆍ불일암뿐이다. 이밖에도 유지만 밝혀진 암자로는 광원암ㆍ청진암ㆍ목우암ㆍ실상암ㆍ판와암ㆍ상선암ㆍ자정암 등이 있고, 보조암ㆍ은적암ㆍ조계암ㆍ묘적암 등은 이름만이 전할 뿐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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