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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4교구 범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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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 범어사

250, Beomeosa-ro, Geumjeong-gu, Busan

전통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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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국의 남산에 명산이 있어서 그 산정에 높이 50여척의 거암이 있고, 그 바위 한가운데 샘이 있으며 그 물빛은 금색에다 물 속에 범천의 고기가 놀았다. 그래서 산명을 금정산이라 하고, 절을 범어사라 한다.”고 하였다. 범어사의 역사를 기록한 문헌으로는 1700년(숙종 26)에 동계가 편찬 간행한 목판본 <범어사창건사적>이 현존하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이 절은 당나라 문종 태화 19년 신라 흥덕왕때 창건되었다. 일찍이 왜인이 10만의 병선을 거느리고 신라를 침략하려 하였으므로 대왕이 근심하고 있는데, 문득 꿈에 신인이 나타나서 의상을 청하여 화엄신중기도를 할 것을 권하였다. 신인은 “태백산 속에서 의상이 3천명의 대중을 거 느리고 화엄의지법문을 연설하며, 화엄신중들이 항상 그의 옆을 떠나지 않고 수행하고 있다. 또 동국해변에 금정산이 있고, 그 산정에 높이 50여척이나 되는 바위가 솟아 있는데, 그 바위 위에 우물이 있고 그 우물은 항상 금 색이며 사시사철 언제나 가득 차 마르지 않고, 그 우물에는 범천으로부터 오색구름을 타고 온 금어들이 헤엄지며 놀고 있다.”고 하면서 대왕이 의상을 청하여 함께 금정산 아래로 가서 7일 동안 화엄신중을 독송하면 왜병이 자연히 물러갈것이라고 하였다. 왕이 그대로 하였더니 왜선이 서로 공격하여 모든 병사가 빠져죽고 살아 남은 자가 없었다. 왕이 매우 기뻐하여 의상을 예공대사로 삼고 범어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사적기의 창건연대인 흥덕왕 때는 826년에서 835년까지이므로 이미 702년에 죽은 의상의 창건이라고 한 기록은 믿을 수 없다. 따라서 신라화엄십찰의 하나인 범어사의 창건은 의상이 당나라로부터 귀국한 670년(문무왕 10)이후일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유사>의 기록과 같이 678년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의상이 창건하고 의상의 제자 표훈이 주석했던 범어사는 신라 화엄십찰의 하나로서, 또 왜구를 진압하는 비보사찰의 하나로서 중요한 가람이 되었다.

신라 당시의 가람배치는 미륵석상과 좌우보처 및 사천왕이 각각 병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조각하여 모셨던 2층의 미륵전을 중심으로 서쪽에 3칸의 비로전을 세우고 비로자나불상,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병기를 든 향화동자 상을 모셨다. 미륵전 동쪽에는 3칸의 대장전을 세우고 대장경과 삼본화엄경 및 석가여래상을 모셨다.

이밖에도 천왕신전ㆍ유성전ㆍ종루ㆍ강전ㆍ식당ㆍ목욕원 및 33천을 조성한 철형 석조폐탑 등이 있으며, 일주문 옆 숲속에는 수많은 비석이 있고, 그 비석 아래쪽에 고승 동산의 석조부도가 있다. 이 부도는 최근의 작품이지 만 고려 이래의 전통적 석조부도의 형태에 각종 장엄을 가미함으로써 매우 아름다운 형태를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밖에도 사중보물로는 전의상대사옥인과 구룡병풍ㆍ삼층석탑ㆍ옥와ㆍ석존사리탑ㆍ금강저ㆍ목조미륵불ㆍ범종ㆍ어병ㆍ오동향로등이 있다. 이 중 옥인은 원효의 작품이라고도 하는데, 산내암자인 원효암 우물 보수중 발견한 것이며, 널리 화엄의 그물을 펴서 인간과 천상의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을 지닌 ‘장대교망녹인천지어’라는 글자가 한문으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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