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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전화 02-763-0054
팩스 02-763-5851
홈페이지 http://www.kwanum.or.kr/
  주소 서울 종로구 종로63가길 31
   서울 종로구 숭인동 178-3 묘각사
   31 Jong-ro 63ga-gil, Jongno-gu, Seoul

  • 상품 정보

    상세설명

    대한불교관음종 大韓佛敎 觀音宗

    대한불교관음종의 종조는 고려국 선교양종의 도청섭을 지내신 의천 대각국사이다. 전통불교의 원류를 쫓아 법통을 이어온 종단으로서 관음종의 개산조인 태허 조사(1905-1979)는 조계산 선암사의 경운(擎雲) 선사께 입실하여 득도하였다
    태허조사는 해방 후 어지러운 동족상잔의 불안한 시절에 불타의 가르침으로서 사회의 안정과 민심을 수습할 수밖에 없어 대승 보살의 원력을 세우셨다. 또한 오직 부처님의 일대사 인연법을 실천하여 현세에서 불국정토의 뜻을 펴기 위해 제자들과 더불어 창종에 이르게 되었다.
    관음종은 일승실교사상(一乘實敎思想)과 일승원교사상(一乘圓敎思想)을 봉대하고 보살의 제세원력(濟世願力)으로 전법도생(傳法度生) 견성(見性) 성불(成佛)함을 종지(宗旨)로 종단을 세우게 되었다.
    관음종을 개산한 태허 조사를 1세 종정으로 모시고, 2세종정에 백상 경조스님, 3세 종정에 철운 종현스님, 4세 운호 대천스님, 5세 운공 혜웅 스님, 6세, 7세, 8세 남천 죽산스님, 현재 9세종정에 홍파스님께서 임하고 계시며, 총무원장은 법명스님이 종단을 이끌고 있다.
    현재 관음종은 재단법인으로서 종단재산을 관리 운영을 하고 있으며, 사회복지법인 관음종복지재단을 운영하며 복지사업에도 앞장서고 있다. 또한 서울불교문화대학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고, 대학 내 관음장학회를 두어 도제양성에 힘쓰고 있다.
    국제관계에는 일본 불교와 30여년의 교류를 하고 있으며, 미얀마와 라오스에도 뜻있는 교류를 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 대륙에 한국불교의 미래상을 위한 불사계획도 준비 중에 있다.

  • 소개·새소식

    소개글

    총 5 건

    대한불교관음종 소개
    1. 개산조 태허 (太虛 1905~1979) 조사스님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16

      개산조 태허(太虛 1905~1979)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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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스님 생애
      법명은 홍선(泓宣)이며 태허(太虛0는 법호이다. 전주 이씨로 속명은 이용이(李龍㶊)이다. 1905년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서 아버지 선준(善俊)과 어머니 묘행심(妙行心)을 연(緣)으로 출생하셨다. 어려부서부터 정의감과 기개가 있어 주위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고 자랐으며, 1928년 경성예비고 등전문학교(京城豫備高等專門學校)를 졸업 할 때까지는 학문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별세한 후 세간의 학문으로는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전국 의 사찰을 돌며 참배하다가, 26세 때인 1930년 선암사(仙巖寺)에사 발심, 경운(擎雲)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이때부터 4년간 불경을 배웠으나 그것만으로는 미진하다는 생각에 1935년부터 소요산 백운암(白雲庵)에 들어가 1천일동안 안거 정진을 했다.
      그 후 중국 산시성(山西省)으로 구법을 떠나 여러 명찰을 순례하며 고승들의 가르침을 받았고, 1940년 원불(願佛)인 철불상을 모시고 귀국하여 서울 종로구 숭인동 낙산(駱山)밑에 묘각사(妙覺 寺)를 창건하고 포교에 들어갔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경북 상주 모동면으로 자리를 옮겨 백화암(白華庵)을 창건하고, 선정(禪定)을 익히면서도 「법화경(法 華經)」을 사경하면서 구도의 길을 걸었다.
      6년 동안 상주에 머무르며 공부에 전념한 스님은 그 후 서울로 돌아와 하루도 빠짐없이 탑골공원에 나가 일없이 그곳을 찾는 사람들 에게 설법 했다. 1957년에는 법화계통(法華系統)을 규합하여 일승불교현정회(一乘佛敎顯正會)를 창립하고 회장에 취임했으며, 1965년 12월 8일에는 대한불교관음조의 전신인 대한불교불입종(大韓佛敎佛入宗)을 창종했다. 이듬해 초대 종정이 된 스님은 제자들 을 가르치며 포교에 전력하여 종단을 크게 발전시켰다.
      또 1970년에는 한일불교 친선회(韓日佛敎 親善會) 고문으로 추대됐고, 1971년에는 정부로부터 보국훈장(保國勳章)을 받았고, 전일본 불교회(全日本佛敎會)의 초청으로 일본 불교계를 시찰했다.
      청소년 포교의 중요성을 느낀 스님은 1973년 마하연불교학생회를 창립했고, 불교잡지 「범성(梵聲)」을 창간했다. 1975년 한중불 교회(韓中佛敎會) 고문, 1976년 국가총력안보협의회(國家總力安保協議會) 불교대표로 추진됐으며, 같은 해 묘각사 대웅전을 중창 했다. 또한 고희(古稀)의 나이에도 「법화경」홍보에도 힘을 써 백일기도중에도 「법화경」을 사경하여 법보(法寶)로 모시기도 했다. 이렇게 온 국민에게 법화사상(法華思想)의 포교와 불입종의 발전에 힘쓰던 스님은 1979년 6월 24일 세수 74세, 법랍 50세로 묘각사에서 입적했다.
      5일간의 종단장(宗團葬)이 끝난 후 다비를 하니 1백28과의 사리가 수습되어 스님의 법력을 나타냈고, 이는 묘각사 경내 사리탑에 봉안됐다.
      스님의 가르침은 대한불교관음종에서 법맥을 잇고 있다. 저서로는 「成佛圖」「人生탈출」「법화문종선집」「믿음의 생활신조」 「피안의 등대」「해동천태법화맥소고」등이 있다.

    2. 경운원기 (擎雲元奇 1852~1936) 선사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16

      경운원기(擎雲元奇 1852~1936)선사
      개산조 태허홍선(太虛弘宣) 조사스님의 법맥(法脈)을 찾아 은법사(恩法師)이신 경운원기 선사의 행장을 되돌아보는 것은 관음종의 법맥을 바로 아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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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장
      1852년 1월 3일 경남 웅천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김씨(金氏), 석옹(石翁)이라는 호도 사용했 다. 모친은 구씨(具氏)였다. 17세에 구례 연곡사에서 환월(幻月)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사미계는 해룡(海龍)스님에게, 비구계는 화산(華山)스님에게 받았다. 순천 선암사 대승강당 (大乘講堂)에서 경붕(景鵬)스님에게 교학을 배웠으며 30세 되던 해에 강석(講席)을 승계했다. 그 후 후학 양성에 전력을 다해 근세 대강백(大講伯)으로 명성을 떨쳤다. 스님의 강의를 듣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학승들이 선암사 대승암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경운스님은 순천에 포교당을 건립한데 이어, 1910년에는 경성에 중앙포교당이 설립되자 교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세속으로 들어가 중생들을 제도하는 입전수수(入廛垂手)의 삶을 몸소 보 였다. 1911년 1월 15일 만해, 석전스님 등이 일제에 맞서 조선불교임제종(朝鮮佛敎臨濟宗)을 만들 때 임시관장으로 추대될 만큼 존경을 받았다. 당시 임제종은 순천 송광사에서 총회를 열 고 임시 종무소를 설치했다.
      스님은 1917년 조선불교선교양종교무원(朝鮮佛敎禪敎兩宗敎務院)창립 당시 교정(敎正)으로 추대 됐다. 이 같은 사실들은 스님이 일제강점기 조선불교의 정신적 중심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운스님은 말년에 “병들고 늙어지면 아무 소용이 없는 물건이 되니, 젊어서 공부 하여 중생을 건지라”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또한 정묘년(丁卯年, 1972년) 9월 20일(음력)에 쓴 편지에서 스님은 제자에게 이렇게 당부하고 있다.
      “내가 모여 바다를 이루고, 티끌이 모여 산을 이루며, 털이 모여 머리를 형성하듯, 우리 부처님은 덕을 쌓아 부처가 될 것이니 털끝 하나도 소홀히 하지 말라” 작은 일을 소중히 여기고, 언제나 방심말고 수행정진하여 정각의 경지에 오를 것을 당부 하는 내용이다.
      스님은 글씨 또한 명필로 소문이 나서 전국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일찍이 29세 때에 명성황후의 뜻으로 양산 통도사에서 금자 법화경을 사경하기도 하였다.
      통도사에서 사경할 때 족제비 꼬리털로 정필(淨筆) 2자루를 만들어 3개월 동안 일자 일배(一字一禮)로 전 14축을 완자(完字)하였다. 또한 46세 되던 해에 선암사 비로암에서 5년동안(1897-1901) 일행삼배(一行三拜)의 금강신(金剛信)으로 80화엄경 전부를 20여권에 나누어서 사경하였다.
      경운스님의 명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전국31본산의 주지스님들이 직접 선암사 대승암에 와서 스님의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평생 후학을 기르는데 헌신하던 경운스님은 1936년 11월 11일 오전 11시 순천 선암사 대승암에서 원적에 들었다.
      세수 85세, 법랍 68세. 현재 선암사에는 스님의 비와 진영, 그리고 화엄경사경 등 많은 유품이 전해진다.

    3. 대각국사 의천 (大覺國師 義天 1055~1101)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16

      대각국사 의천을 종조로 묘법연화경을 소의경전으로 의지하는 본 종단은 선암사 경운선사를 은사로 득도하신 태허조사스님께서 창종하시어 산문을 여셨다.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1055~1101)은 고려 교장(敎藏: 2005년 교육부는 일제시대 잘못 오역된 속장경(續藏經)을 교장으로 정식 교과서를 교정함)을 간행하시고 묘법연화경을 한국에 뿌리 내리게 하신 대한불교관음종의 종조(宗祖)이시다. 훗날 종조 대각국사의 뿌리는 전라남도 순천 선암사(仙庵寺)의 경운원기(擎雲元奇)(1852~1936) 선사께 이어지고 관음종 개산조 태허홍선(太虛弘宣) 조사스님께로 그 법맥(法脈)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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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 1055~1101)

      대각국사 의천의 탄생과 출가
      호는 우세(祐世), 이름은 후(煦), 자는 의천(義天), 문종(고려11대 왕)의 넷째 아들로 선종의 동생이시다. 어머니는 인예왕후(仁睿王后)이다. 1055(문종9)년 9월 28일 탄생. 대각국사는 그의 시호다.
      부왕은 네 왕자를 불러놓고 “누가 능히 출가하여 복전(福田)의 이익을 짓겠는냐”고 물었다. 이에 국사는 출가를 결심하여 1065년(문종19) 5월 14일 당시 왕사였던 난원 (爛圓: 훗날 景德王師)에 의해 내전에서 머리를 깎게 하고, 개경의 영통사(靈通寺)에서 살게 되었다. 난원은 화엄종에 속한 66세의 노승이었고, 국사는 이해 10월 불일사 계단(戒壇)에서 계를 받았고, 난원은 그 다음해 입적했다.
      국사는 어린나이였지만 학문을 쉬지 않았고 13세인 1065년(문종21)때 왕은 우세(祐世)라는 호를 하사하고 승통(僧統)직을 내렸다. 19세에 세자를 대신해서 교장(敎藏)의 수집발원의 글을 지었다.
      국사가 20세 이전에 이미 교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수집에 착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불교학에 대한 남다른 안목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23세 때부터 강의를 했는데 이로부터 입적할 때까지 24년 동안 한번도 폐한 적이 없었다

      구법 행적 (화엄과 천태사상 수학)

      국사는 34살 되던 1084년(선종1) 정월에 내전에 들어가 송나라로 가서 구법 할 뜻을 간곡히 아뢰었으나 허락 받지 못했다.
      둘째형인 선종은 여러 신하들을 모아 의논했지만 모두 반대했다. 이에 국사는 중신들 앞에서 현장의 서역구법과 의상의 입당구법의 예를 들면서 눈물로 호소했지만, 왕자의 입송(入宋)이 요나라를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염려하는 중신들의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국사의 구도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이듬해 4월 8일 밤 왕과 태후에게 편지만 남긴 채 제자 수개(壽介)등과 함께 정주(貞州:오늘의 김포)에서 상선을 타고 송나라로 향했다. 국사는 5월 초 판교진에 도착했고. 7월에는 송의 서울 변경(汴京)에 이르렀다.
      송제(宋帝) 철종(哲宗)은 국사를 따뜻이 맞아 주었고, 여러 가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송에 체류하던 14개월의 짧은 기간에 변경(汴京)과 항주(杭州)를 오가면서 고승 50여 명을 만나 불법을 묻거나 교류했다. 국사가 직접 만났거나 서신으로 교유했던 송나라의 승려 중에 소속 종파의 확인이 가능한 경우만을 분류해 보면 아래와 같다.

      <종본선사의 국사 찬양게송>
      이 세상 그 누가 만 리의 높은 파도 타고, 불법 위해 몸 잊고 선재를 본받았던가?
      생각건대 염부제에서는 참으로 희유한 일, 마치 우담발화꽃이 불 속에서 핀 것 같네.

      14개월 동안 송나라 구법을 통해 고려의 국제적 지위를 높였고 「화엄대부사의론(華嚴大不思議論)」등 제종(諸宗; 여러 종파)의 교장 3천여 권을 3,000여 권의 불전을 구해 고려로 귀국하였다.

      국사의 고려 교장(敎藏: 2005년 교육부는 일제시대 잘못 오역된 속장경(續藏經)을 교장으로 정식 교과서를 교정함) 간행의 빛나는 업적
      1090년(선종7) 요나라, 송나라, 일본 등에서 4천여 권의 장소를 수집하고 국내의 고서를 모아 흥왕사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두고 이들 경서를 간행하고, 그 목록으로서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摠錄)」3권을 편집했는데, 각 권의 안쪽에 해동유본 현행록(海東有本 現行錄)이라 했다. 교장도감에서는 이 목록에 의해 모두 1,010부 4,740권의 장소를 간행했는데, 이것을 고려 교장(高麗 敎藏)이라 한다.
      그 뒤 선암사(仙岩寺)와 홍원사(洪圓寺)를 거쳐 해인사에 머물고 있다가 숙종이 즉위하여 간청하자 다시 흥왕사에 돌아와 강의를 했다.
      1097년(숙종2) 2월 태후의 발원으로 국청사(國淸寺)가 낙성되자 그 해 5월 그가 제1세 주지가 되어 천태교학을 강의했다.
      그의 강의를 들으려고 모여드는 학자가 무려 1천 명을 넘었다. 이로서 고려에 묘법연화경과 천태사상이 그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저술

      「대세자집교장발원소(代世子集敎藏發願疏)」 「신집원종문류(新集圓宗文類)」「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摠錄)」
      「간정성유식론단과(刊定成唯識論單科)」 「팔사경직석(八師經直釋)」 「소재경직석(消災經直釋)」
      「기일본국제법사구집교장소(寄日本國諸法師求集敎藏疏)」,「신편제종교장총록서(新編諸宗敎藏總錄序)」,
      「대선왕제종교장조인소(代宣王諸宗敎藏彫印疏)」등 10여 부 300여 권이 된다고 한다.
      현존하는 것은「신편제종교장총록」과「대각국사 문집」「신집원종문류」「석원사림」등이 있고, 「간정성유식론단과」의 서문이 있다.

    4. 대한불교관음종 종단로고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16

      심볼마크
      대한불교관음종의 이미지를 대표적으로 표현한 상징으로, 크게는 외부의 법륜과 내부의 ‘학족(鶴足)옴’의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서 설명 할 수 있습니다.

      외부-둥근법륜
      둥근 법륜 위에 새긴 ‘나무 삳달마 푼다리카 수드라’
      관음종 개산조 태허(太虛) 조사스님께서 종단의 소의경전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 귀의합니다’라는 뜻의 산스크리트 원어인 ‘나무 삳달마 푼다리카 수드라’를 둥근 법륜 위에 새기신 의미를 형상화한 것으로 묘법연화경에 대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부-’학족(鶴足)옴’
      학의 발을 형상화한 것으로 인욕과 정진 그리고 선정에 대한 창종 이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근대 한국불교계에 큰 고승이셨던 관음종 개산조 태허(太虛) 조사스님께서 후학들에게 게을리 하지 않고 정진 할 것을 강조하시며 ‘학족(鶴足) 옴’의 의미를 늘 새기고 수행할 것을 당부하셨다. 우주의 소리인 ‘옴’과 ‘학족(鶴足)’에 담겨있는 학(鶴)의 의미를 조사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한 다리로 가장 오래 서있는 새 학(鶴)의 모습에서 우리 수행자들은 세 가지를 꼭 배워야 한다.
      하나는 참기 오려운 것을 참아내는 인욕(忍辱)이고 그 두번째는 끊임없이 수행하는 정진(正眞)이며, 세 번째는 고요히 생각하는 선정(禪定)의 가르침이다.”

      *심볼의 황금색은 함께 정진하고 나아가는 미래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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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대한불교관음종 조직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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