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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선학원 용화사 요약정보 및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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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재단법인 선학원
대표전화 042-673-2316
  주지 합장
홈페이지 http://www.yonghwa.or.kr/
  주소 대전 대덕구 계족로740번길 185
   대전 대덕구 읍내동 5-1
   185 Gyejok-ro 740beon-gil, Daedeok-gu, Daejeon
Tag 사찰
  • 상품 정보

    상세설명

    대전지역에서는 흔치 않게 사찰 연기설화가 있고, 또한 그 연기설화가 증명해주듯이 문화재로 지정된 영험있는 천년의 고불이 계신 곳이다. 많은 전설과 부처님의 영험 가피는 무수히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실제적으로 불자들이 끊이질 않고 있는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특히나 산세가 수려한 대전의 진산인 계족산의 날개 짓하는 형상 속에 한 폭의 아담한 시골 색시같은 정감있는 도량이 이곳 용화사이다. 비록 타사찰에 비하여 전각도 없고 도량이 좁은 것이 흠이지만 그에 못지 않은 신심 깊은 불자들의 기도도량이다.
    매 달 초하루는 신중기도로 화엄성중님의 가피로 한 달 동안의 무장 무애 무사고를 기도드리는 날이며, 매월 음력 18일은 지장재일로 지장보살님의 크나 큰 구제 서원력으로 업장소멸을 발원드리는 기도를 드리며, 매월 음력 24일은 관음재일로 중생들의 간절한 부름에는 반드시 가피력으로 감응해 주시는 대자비심에 감사와 참회의 기도를 하는 기도도량이다.
    이러한 부처님의 도량, 용화사에는 이 사찰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두 개의 주축인 금강회와 지장회가 있어 사찰 행사는 물론이며 자비와 봉사를 몸소 실천 수행하고 불자 상호간의 화합과 친목 도모에도 앞장서는 신행단체가 있다.

    또한 용화사가 자리잡고 있는 곳은 계족산이다.
    계족산(鷄足山)은 회덕현(懷德縣)의 진산(鎭山)이기도 하지만, 이 계족산은 불교적으로도 아주 인연이 깊은 산이다.
    불교적으로 山名을 약술(略述)하자면 다음과 같다.
    계족산은 중인도의 마갈타국(摩竭陀國) 동북에 위치한 산으로 석가모니불의 상수제자로 일컫는 마하가섭 존자가 입적한 곳이며, 장래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세존의 법의(法衣)를 전해주기 위하여 입정(入定)하여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계족산은 불교적으로도 인연깊은 도량이기도 하지만, 언제 어느때 정확히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문화재로 지정된 부처님으로 미루어 보아 매우 오래된 천 년의 고찰임이 분명하고 옛날에는 지금보다 규모가 큰 사찰이었을 가능성과 동국여지승람에서 밝힌 계족산 동북쪽에 있었다던 봉주사의 전신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대전 8경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계족산의 저녁 노을은 장관이다.
    용화사의 도량에서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면 모든 번뇌와 욕심의 끝이 그 속으로 잠겨만 가는 것 같은 묘한 전율감마저 느끼게 한다.
    이렇듯 용화사는 대전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며 아름다운 저녁노을 속에 무량수 무량광 부처님의 자비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포근한 도량이 이 곳이며, 정말로 청정한 불국정토로 향하는 서원의 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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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새소식

    소개글

    총 2 건

    대한불교조계종 선학원 용화사 소개
    1. 용화사 석불입상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0

      사유형문화재 제26호

      이 부처님은 매우 세련되고 정돈된 불상양식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조성 년대로 미루어 볼 때,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회덕현불우조 (懷德縣佛宇條)에 계족산 동북쪽에 있다고 언급한 봉주사(鳳住 寺)가 이 사찰의 전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며, 이 석불입상의 뛰어난 작품기량으로 보아 원래부터 상당히 중요한 사찰이 었음을 짐작케 함을 알 수 있다.
      [ 출처 : 동국대 문명대 교수님의 석불입상 고증자료 용화사석불입상(龍華寺 石佛立像) ]

      이 석불입상은 거대한 광배와 상대적으로 작은 불입상을 한 돌로 조각하여 불상을 부조식으로 묘사한 독특한 구도미를 보여줄 뿐 아니라 불상 자체의 얼굴과 신체, 수인과 불의 등 모든 특징이 상당히 정돈되고 세련된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얼굴과 체구의 형태가 단아하고 부조된 볼륨감과 세부적인 선과 옷주름선이 다소 딱딱하지만 유려한 9세기 말의 양식을 계승한 10세기 전반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만복사석불입상이나 남원 신계리 마애불좌상 또는 용화사 대불입상 같은 후삼국 특히 후백제 내지 고려초기에 해당되는 석불상들과 상당한 친영성이 있다고 판단되므로 이 불상도 10세기 초의 후백제 불상양식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흔하지 않는 이 시기 불상의 수준작으로 당시의 불상양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불상의 세련미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므로 중요한 불상으로 판단된다.

      이 불상이 있는 용화사는 조선조 후기에는 상당기간 폐사되어관계지견을 알 수 없지만 이 석불입상의 뛰어난 작품기량으로 보아 원래 상당히 중요한 사찰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동국여지승람 회덕현불우조(懷 德縣佛 宇條)에 계족산 동북에 있다고 언급한 봉주사(鳳住寺)가 이 사찰의 전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석불입상은 우리나라 불상연구에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중시되어야 마땅하며, 대좌까지 완전하다면 국가지정 불상으로 평가되어도 무방하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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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용화사 창건설화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0

      사찰창건유래(寺刹創建由來)

      대전 계족산에는 용화사(龍華寺)라는 절이 있다.
      용화사는 한밭 고을에서 드물게 사찰 창건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여기엔 옛날 나라를 잘 다스리던 왕이 왕자가 없어서 고민하던 중 이곳 용화사에 부처님을 조성하고 백일기도를 드려 왕자를 얻었다는 데서 그 유래를 전하고 있다. 「옛날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임금이 있었는데, 후손이 없어 근심하던 중 왕비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깊은 영산에 절을 짓고 백일기도를 하면 소원하는 왕자를 얻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한 후에 사라졌다. 그 후 꿈의 현몽대로 명산 기도처를 물색하다 이곳 회덕땅 계족산에 기도처를 발견하고 부처님을 조성하고 불사를 한 후 기도를 하였다.
      그렇게 기도를 드린지 백일째 되는 날, 왕과 왕비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난데 없이 하늘에 오색구름이 휩싸이고 그 오색구름이 절 안까지 퍼지더니 갑자기 그 구름이 청룡으로 변하였다.
      청룡은 몸을 꿈틀대며 법당 안 까지 들어와 왕과 왕비가 기도하는 곳에서 오색 영롱한 빛을 내뿜으며 주위를 맴돌다가 사라졌다. 그 후로 왕비는 태기가 있어 왕자가 태어나니 왕자를‘청룡'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 절이름을 용화사(龍華寺)라 이름하였다.
      그 때 조성된 부처님은 현재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창건설화가 위와 같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창건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불자들이 생남 기도를 하여 그 기도의 가피로 원하는 자식을 얻었으며, 대다수의 불자들이 지금도 기도가 끊이지 않고 도량을 찾고 있다.

      부처님 영험설화
      용화사 창건 설화에 나오는 부처님의 영험 가피력은 많이 전해지고 있으나 그 중 한 가지는 다음과 같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부처님의 목 부분이 확연히 금이간 부분에 대한 데서 전해 내려오는 영험 가피력은 다음과 같다.

      하나.
      「옛날에 소 한 마리가 큰 재산이었던 시대에 소를 잃어 버리고 큰 근심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차에 이곳 용화사 부처님한테 와서 소를 찾게 해달라고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했는데, 꿈에 현몽을 하여 그 소를 훔쳐간 사람을 잡게 되었다.
      그 소는 마적떼의 사람들이 훔쳐간 것이었다. 그 사람들은 그후 관가에 잡혀 들어가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고, 얼마후 감옥에서 풀려나와 이 부처님이 현몽한 것이었다는 소문을 듣고 이 부처님의 목을 도끼로 치고 그 사람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인근 세 동네의 주민들 꿈에 뒷골(이곳 용화사가 있는 동네 이름)부처님의 목에서 피가 흐르는 꿈을 똑같이 꾸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인근 어르신들이 이곳에 오셔서 여러분들이 전해주신 영험설화이고 많이 알려져 있으며 실제 이 부처님의 목이 금이간 부분을 친견할 수 있다.

      둘.
      한 때 어떤 사람이 장난기가 발동하여 부처님앞에서 소변을 보고 그 소변으로 흙을 개서 부처님 얼굴에 발랐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사타구니가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한테 공양물을 올리고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며 참회기도를 하고 가려움증이 나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실제 있었던 많은 영험가피의 설화가 이 밖에도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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