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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사는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성리 7번지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 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이며, 절 배로 장회나루와 성골 선착장을 오가며 이동하고 있다.
옥천사는 통일신라시대 창건이 확인되는 ‘옥천암(玉泉庵)’의 터에 자리 잡았다. 옥천암은 『여지도서(輿地圖書)』, 『범우고(梵宇攷)』, 『가람고(伽藍考)』 등에 이름을 확인할 수 있고, 『1872지방지도(1872年地方地圖)』, 『지승(地乘)』, 『해동지도(海東地圖)』, 『광여도(廣輿圖)』 등에서 위치를 확인해 보면 현재 옥천사가 위치한 자리였음을 알 수 있다. 옥천사은 전하기로 신라의 의상대사가 상좌였던 경원스님에게 명하여 창건한 사찰로, 삼국통일을 위해 지어야 할 가은산 3대 사찰 중 하나였다.
옥천사는 조선 중기 퇴계 이황(1501-1570)이 단양 군수로 재임하던 시절 원래 白巖山이라 불리던 산의 이름을 비단에 수를 놓은 듯 몹시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하여 이름 지은 錦繡山(1,061m)의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다 남한강을 만나 아름다운 기암이 펼쳐진 加隱山(575m)이 품고 있는 사찰이다. 남한강 충주댐 청풍호가 둘러싸고 있는 옥천사는 포장된 도로가 없이 절 밑 李之蕃(?-2575)과 그의 동생 土亭 李之函(1517-1578)이 살았던 옥천사 밑 성골 터에 절 선착장을 만들어 놓고 옛 장회마을이 수몰된 이후 만들어진 장회나루에 절 배를 이용하여 이동하고 있다.
옥천사 뒤편으로는 신라 김유신과 백제와의 남한강 공방전이 있었던 가은산 가혜성터가 있으며 동쪽으로는 가은암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중·후기 많은 유학자들과 당대의 청풍부사, 단양군수 등이 옥천암을 방문하여 지은 시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민우수(閔遇洙)’, ‘김신겸(金信謙)’, ‘임수간(任守幹)’, ‘오도일(吳道一)’, ‘이운영(李運永)’ 등의 당대의 문인들이 옥천암을 방문하였으며, 옥천암과 주변 자연환경에 대한 시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2017년 1월 5일 전 경주국립박물관장 김성구의 옥천암터 시굴을 통해 건축 부재와 토기편, 도자기편 그리고 기와류를 출토하였다. 이중 격자문암키와는 통일신라 후기 제작된 것으로 간주되는 중요한 자료로 옥천암이 통일신라 후기 창건된 사찰임을 확증하는 근거가 된다.
이능화(1869-1943)가 1918년 신문관에서 간행한 『조선불교통사』에 보면 “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의 산외 말사인 무암사, 신륵사, 정방사, 옥천암, 백운암 이상 5개 절은 청풍군에 있다.”라고 나와 있다. 이 중 무암사, 신륵사, 정방사는 지금도 법맥을 이어오고 있고, 옥천암은 1915년 폐사 된 것을 비구 오명이 1975년 법맥을 이어 옥천사로 중창되었으며, 백운암은 1980년대 폐사가 되어 사지만 남아 내려오고 있다. 옥천암은 일제시대인 1915년 토지등록 법적분규로 인해 폐사된 것으로 확인되어 진다.
옥천사는 비구 오명이 옥천암 터에 중창한 사찰이다. 1966년 弱冠의 나이에 불문에 들어 부처님의 마음을 꿰뚫기 위하여 좌선의 정진을 이어오던 비구 오명은 지리산 불임암에서 어느 날 부터인가 한 산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좌선에 들면 보이기 시작한 산의 모습은 6개월이 지속되었다. 1975년 여름 하안거를 보내고 어느 날인가 운수납자의 발걸음은 단양의 장회마을에 이르게 되었다. 풍경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강을 건너 가은산에 이르러 쳐다보니 불임암에서 보았던 산이 분명하였다.
이에 비구 오명이 옥천암 터에 시주를 청하여 한 조각 작은 땅을 빌고 오고가며 낯을 익힌 대덕선인들의 발심을 쫓아 도량을 열고 아미타부처님을 모시어 작은 암자를 지어 정진을 이어가니 옥천암이 폐사 된지 60여년이요, 길을 닦고 강을 건너 절지에 불사를 이룸이요, 부터님 마음의 미묘한 법을 이움이다. 이때가 처음 가은산에 들어 온지 8년이 지난 1983년이다.
1989년 1채의 선방을 건립하니 큰방 하나와 작은 방 네 개로 지어졌다.
도량에서 홀로 정진을 이어가던 비구 오명은 초라한 법당을 헐고 부처님전을 새로 짓기 시작하니 원력과 대덕제위의 공덕으로 1994년 갑술년 오월에 극락보전을 올리게 되었다.
극락보전의 완공과 더불어 대한불교 조계종 제 19교구 본사 화엄사에 말사 등록을 하며, 부처님의 미묘한 법력이 깃든 도량을 바라는 염원이다.
2013년 낡은 요사를 헐고 새로 두 채의 요사채를 지으니 한 채는 8개의 방과 3개의 해우소와 1개의 목욕탕 겸 세면장으로 지어졌고, 다른 한 채는 큰방 2개와 지대방 하나의 전통 기와집으로 지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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