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품 정보
상세설명
골굴사는 경주시의 함월산에 위치한 사찰로 선무도(禪武道)의 총본산으로 한국의 소림사라는 별명이 있다. 약 1,500여 년 전 인도에서 온 광유 선인 일행이 경주 함월산에 정착하면서 골굴사와 기림사를 창건하였는데, 골굴사는 광유스님 일행이 인도를 본떠 석굴사원 형태로 조성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석굴사원이다.
함월산 기슭의 골굴암에는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응회암에 12개의 석굴이 나있으며, 암벽 제일 높은 곳에는 돋을새김으로 새긴 마애불상이 있다. 법당굴은 굴 앞면은 벽을 만들고 기와를 얹어 집으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도 벽도 모두 돌로 된 석굴이다. 북쪽벽에 감 실을 파고 부처를 모셨으나 마멸이 심해 얼굴 표정은 알 길이 없다. 법당굴과 다른 굴들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앉을 수 있는 것부터 서너 명이 들어앉아도 넉넉한 큰 것에 이르기까지 크기가 다양한데 귀여운 동자승부터 위엄이 넘치는 노스님까지 여러 형태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굴과 굴로 통하는 길은 바위에 파놓은 가파른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정상에 새겨진 마애불로 오르려면 자연 동굴을 지나게 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화가 겸재 정선의 그림 [골굴 석굴도]에는 마애불상과 12처 석굴이 모두 목조 와가로 그려져 있으나 현재 전실은 모두 소실되고 바위굴만 남아 있다. 절벽 꼭대기에 새겨진 높이 4m, 폭 2.2m 정도의 마애불상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모래기가 많이 섞인 화강암에 새긴 터라 보존상태가 썩 좋지 않고 오랜 풍화 작용에 의해 훼손이 심해 유리 지붕을 씌어 놓았다.
골굴사는 불가의 전통 수행법인 선무도 수련원을 개설과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선무도와 사찰체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1일 템플스테이, 함월산 트레킹과 명상을 하는 체험형 템플스테이, 장기 휴식형 템플스테이와 청소년 인성교육 프로그램인 선무도 청소년 화랑수련회를 진행하고 있어 외국인도 많이 참가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기여와 문화복지 차원에서 공연단(사천왕)을 창단해 골굴사 경내에서 상설공연을 하고 있다.
-
소개·새소식
소개글
-
- 골굴사 석굴도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5-30
겸재 정선의 교남영승첩에 수록된 '골굴석굴도'
골굴사는 경주에서 동해안(감포)으로 약 20km 떨어진 기림사 입구에 위치한 함월산 불교 유적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신라시대 불교 문화가 번창하던 6세기경 서역(인도)에서 온 광유성인 일행이 암반 전산에 마애여래불과 12처 석굴로 가람을 조성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해 온 국내 유일의 석굴 사원이다.
예로부터 인근 주민들의 기도처로 전해져 왔으나 근래에 이르기까지 교통이 불편한 관계로 퇴락 되어 가던 중, 기림사 주지를 역임한 설적운 스님의 법연에 의해 1990년부터 중창 불사를 하여 오늘의 가람을 이루었다. 본래 타 종단에 소속된 사설 암자였으나 적운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골굴사로 등록했다.
골굴사는 불교금강영관 양익 대종사의 법맥을 이은 선무도의 총본산으로서 사단법인 세계선무도 총연맹의 사무국과 재단법인 선무도 대금강문의 선무도 대학이 함께하고 있다.골굴사 마애불
정면에서 본 마애불과 석굴
마애불 주위의 석굴
마애불 주위의 석굴 -
- 골굴사 연혁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5-30
기림사의 사적기에 의하면, 약 1500년 전 천축국(인도)에서 건너온 광유성인 일행이 함월산 지역에 정착하면서 골굴사와 기림사를 창건하였다.
기림사는 통일신라시대 원효대사에 의해 크게 중창되어 사명이 개칭되기 전에는 임정사(林井寺)라고 하였으며, 오종수(감로수, 화정수, 명안수, 오탁수, 장군수)의 설화를 전하고 있다. 또한 불국사보다 약 200년이 먼저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골굴사는 당시 광유스님 일행들이 자국의 사원 양식을 본따서 창건한 전형적인 석굴사원이다. 응회암 지층으로 형성된 암반정상에 마애불을 조성하고 주변에 12처의 석굴을 파서 목조와가로 전실을 건조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했다. 여러 개의 동굴군으로 형성된 석굴사원은 우리나라에서는 이곳이 유일하지만 중국이나 인도 등지에서는 고대 석굴사원의 유적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예컨대 인도의 아잔타와 엘로라 석굴, 중국의 돈황, 운강석굴과 용문석굴이 그 대표적인 유적이라 할 수 있겠다.
골굴사는 신라시대 불교가 처음 유입될 당시 신라인들의 호국불교 정신과 정토적인 이념을 배양한 정신문화의 산실로써 경주 함월산 유역의 성지로써 유서 깊은 도량이다. 조선중기의 화가 겸재 정선의 교남명승첩에 수록된 골굴 석굴도를 보면 여러 개의 기와지붕으로 지어진 석굴의 전실이 가람을 이루고 있다. 또한 토함산 산중일기를 쓴 성리학자 정시한 선생의 기행문에도 당시 골굴암의 모습을 상세히 전해주고 있는데, “여러채의 목조와가로 지어진 전실을 연결하는 회랑이 있고 단청을 한 석굴사원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병풍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고 표기하고 있다.
불교학자들에 의하면 조선 중후기에 화재로 인해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 사람이 살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오다가 조선말기 박씨 일가가 상주하면서 개인암자로 전해왔다. 주불인 마애아미타불은 보물581호로써 동해안의 문무대왕수중릉을 향하고 있다. 관음굴, 지장굴, 약사굴, 라한굴, 신중단, 칠성단, 산신당 등의 굴법당이 있고, 특히 수천년 전부터 전래된 남근바위와 여궁의 음양조화로 득남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이 간직된 설화가 유명하다.
골굴사는 12처 석굴사원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부처님 오신날 골굴사 대적광전과 마애불의 연등 야경
-
-
변경/수정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