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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정보
상세설명
청류암은 백양사 서쪽 골짜기에 있다.
이곳은 도집봉 서쪽에서 형성되어 백양사 계곡으로 합류하는 계곡 상류에 해당하는 곳이다. 백양사 입구에서 서쪽 가인마을로 향하여 골짜기 상류로 오르면 그 끝에 사찰이 있으며, 사찰 뒤편을 가인봉이 감싸고 있다.
청류암은 백암산 내 다른 암자들과 함께 각진국사가 1350년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이에 관한 명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후기 청수선사, 소요대사, 羊岳 啟璇스님, 만암스님 등을 비롯한 역대 백양사 고승대덕들이 주석하였던 곳으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또한 사찰은 華曇 法璘(1848-1902)스님이 주석하고 입적하신 곳으로서, 스님의 문집인 「聾默集」는 화담스님이 청류암에 머무르셨던 행장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화담스님 주석 시에는 현재 부산광역시 북구 안심사에 있는 삼세불회도(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66호)와 담양 용화사 묵담유물관 소장 신중도 등의 그림들이 관음전과 별실에 봉안되어 있었다. 錦溟 寶鼎(1861-1930)스님의 글 중에는 백양산 정토사와 청류암을 방문하고 작성한 「白羊山淨土寺靑流洞記」가 전한다. 이와 같이 청류암은 조선후기 많은 고승들이 수행하셨던 선원도량이었으며, 지금도 그 法脈을 잇고 있다.
암자는 서쪽과 북쪽으로부터 흐르는 계곡의 합류지점에 입지하며, 좌향은 동향이다.
평탄지 전방은 석축을 쌓아 정비하였다. 평탄지 동쪽에는 관음전이 있으며, 남쪽에는 선당이 있다. 6·25 전쟁 이전에는 현재보다 많은 전각이 있었다고 하며,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청류암 신중도」 에는 극락전에 봉안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후기에는 관음전 이외에도 극락전, 별실 등의 전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선당 남쪽은 계곡과 맞닿아 있는데, 이곳에는 작은 샘이 있다.
이 샘은 갑오농민운동 때 전봉준이 이곳에서 하룻밤 묵어가며 물을 마신 후 부지깽이로 ‘南泉甘露’라 썼다고 하여 ‘장군샘’이라고도 한다. 현재 관음전을 제외한 사찰 건물들은 새로 정비하여 지은 것이며, 평탄지도 정지되어 있다. 주변에서는 수파문, 무문 와편과 백자편 등 조선후기 유물이 주로 확인되고 있다. 사찰 마당에는 77×63×30㎝ 크기의 돌확이 있다. 돌확 상면 중앙에는 지름 28.5㎝, 깊이 24.5㎝인 원형 홈이 파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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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새소식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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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양사 청류암 관음전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5-08
백양사 청류암 관음전 白羊寺 淸流庵 觀音殿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79호
청류암 관음전은 평탄지 북쪽에 입지한다.
사찰에 전하는 「觀音寺創建記」에 따르면 이 건물은 화담스님의 제자인 錦海 瓘英스님이 스승을 위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창건기에 따르면 화담 스님은 1879년부터 청류암에 토굴을 짓고 면벽좌선을 하였으며, 이에 금해 관영스님이 건물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얹었으며, 지붕은 배흘림 없이 두툼하다. 기둥 머리에는 주두를 얹고 그 위에 2익공과 연화형 첨차를 얹었다. 특히 화반은 선 채로 소로를 받치고 있는 인물상, 사자, 사자와 코끼리를 탄 동자상 등 다양한 형태로 조각되어 있다. 전각에는 「觀音寺創建記」를 비롯한 각종 현판과 주련이 걸려 있다. 또한 원래 청류암에는 삼불회도, 지장도, 신중도, 산신도, 칠성도 등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모두 백양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
- 청류암 관음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5-08
청류암 관음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淸流庵 觀音殿 木造阿彌陀如來坐像
이 불상은 현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불상은 높이 73.7㎝, 무릎 폭 45.6㎝이며, 별도로 조성된 대좌는 상과 무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은 고개를 약간 아래쪽으로 숙이고 있으며, 왜소한 상반신에 비해 다리 폭이나 무릎이 높다. 양 손은 별도로 제작해 끼운 형태이다. 육계에는 정상계주가 있고, 머리 중앙에 중간계주가 있다. 착의법은 편삼을 착용한 편단우견식이다.
복장공은 상 받침 하부 뒤쪽에 있다.
2017년에 실시한 청류암 관음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복장물 조사에서는 결원문을 포함하여, 축원방, 후령통, 묘법연화경, 보협진언다라니 등 총 24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특히 결원문을 판독한 결과 “康熙二十七年壬辰(1688)”, “淸流洞岐峯庵”에서 “弥陀之尊像二軀”를 조성하여 1구는 “淸流蘭若”에, 또 한구는 “白蓮精舍”에 봉안했다고 한다. 또한 결원문에는 대시주 尙明 比丘와 證明 敬淨 비구의 명칭과 함께, 畵員의 이름으로는 수화승 自珪스님과 太淳스님, 眞贊스님 등 조각승 3명을 기록하였다. 자규스님은 17세기 중·후반 경상도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조각승으로서, 1677년에 조성한 합천 해인사 희랑대 지장보살상이 스님이 수화승으로 불상을 조성한 첫 사례이다. 자규스님은 주로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지만, 이 불상은 스님이 전라도에서 제작한 불상의 첫 사례이다. 즉 이 불상은 조각승 자규스님이 1688년 제작한 2구의 불상 중 하나로서,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 영남지역의 벽암 각성스님 문중과 백양사 소요 태능스님 문중의 교류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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