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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설명
운문암은 사자봉과 기린봉 사이에 형성된 골짜기 최상부에 있다.
백양사 북쪽 계곡을 따라 약 2.3㎞ 진입하면 암자에 이르며, 백양사 암자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입지한다.
운문암은 1350년 각진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자세한 창건 기록은 확인할 수 없다.
또한 조선전기 문헌에서도 그 명칭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656년 반계 유형원이 편찬한 「東國輿地志」에는 당시 운문암이 “彌陀寺”로 알려져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17세기 오도일, 월저도안스님을 비롯한 많은 문인과 스님들이 운문암에 머무르거나 방문하고 남긴 글이 다수 전하고 있으며, 19세기 전반에는 「禪文手鏡」, 「作法龜鑑」 등의 佛書가 운문암에서 간행되었다. 이로 보아 운문암은 조선후기부터 백양사 암자 중에서도 위상이 높았던 것으로 보이며, 만암스님을 비롯한 고승들이 이곳을 수도처로 삼으면서 지금도 수도도량으로서 유지되고 있다. 한편 운문암은 일제강점기 만암스님이 한 차례 중창하였지만, 6·25 전쟁 때 소실되었고 이어 1985년 서옹스님이 현재의 규모로 중창하였다.
운문암은 해발 523m 지점에 있으며, 기린봉과 사자봉을 잇는 능선이 배후를 둥글게 감싸고 있다.
암자는 정남향으로 입지하며, 현재 선방 3동과 요사채 등이 건립되어 있다. 대지 규모는 82×26m이며, 동-서로 긴 평탄지 위에 건물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평탄지 아래에는 석축이 있으며, 암자 배후로는 완만한 경사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 경사지 내에는 작은 건물지가 있는데, 이는 과거 산신각터로 추정된다. 이 터 내에는 현재도 조선후기 기와편이 다량 산포되어 있다.
유물은 산신각터 외에도 요사채와 소림굴 뒤편 경사지에 주로 산포되어 있다.
확인된 유물 중에는 조선전기 유물로 추정되는 집선문 와편 소량이 포함되어 있으며, 집선복합문(집선문+차륜문), 수파문 와편, 백자편 등이 주를 이룬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유물은 청자편이다. 이 청자편은 운문, 기하문 등이 상감되어 있으며, 내면에는 일부 흑상감 기법도 사용된 것이다. 이 유물은 비록 작은 파편에 불과하지만 14세기 무렵에 이곳에 사찰이 운영되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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