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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부산울산교구 요약정보 및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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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전화 051-245-0717
  교구장 현산(炫山) 안인석
홈페이지 http://cafe.daum.net/wonbsus
  주소 부산 중구 광복중앙로33번길 10
   부산 중구 신창동1가 38-6 3층
   10 Gwangbokjungang-ro 33beon-gil, Jung-gu, Busan
Tag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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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총 2 건

    원불교부산울산교구 소개
    1. 원불교 부산울산교구 조직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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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원불교 부산울산교구 역사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5

      1929년(원기14년)  이타원 장적조 선생이 부산에 발을 디뎌 일원대도의 법종자를 심기에 일구월심 노력하다가 하단의 래산 양원국 교도를 만나 그의 댁에 머물면서 동지를 모으고 대종사의 대도정법을 선포하였다. 이에 부산과 경남북 지역에 원불교 교법의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1931년(원기16년)  이후 교도들이 40여명에 이르렀고 양원국, 임현기화, 이성주화, 윤문선, 김성명화, 임정술 등이 교당(회관) 창설을 염원하더니 각자 성의대로 의연금 400여원을 수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산시 서구 하단동에 건평 23평의 초가 2동 8칸을 매입하여 불법연구회 ‘하단(부산)출장소 교당’ 간판을 걸고 교화를 시작하였다. 동년 8월(음력)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와 경산 조송광 회장이 부산에 오시어 10여일 체류하였고, 이 기간 입회한 사람은 동년 8월 13일 7명, 8월 14일 5명, 8월 16일 6명, 8월 18일에는 19명에 이른다. 이타원 장적조 선생이 원기15년 부산에서 교화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원기16년(1931년) 8월 18일까지 입회 회원 수는 총 80명이었다. 이들은 불교 신도와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주류를 이루고, 지역별로는 남부민정(남부민동의 옛 이름)과 사하면 하단에 사는 교도들이 많았다.

      1932년(원기17년)  원기17년 4월 8일 부산지방 초대 교무로 삼산 김기천 종사께서 부임하였으며, 이후 교세는 날로 번창하였고, 부산시내 남부민에 사는 회원들은 하단까지 10㎞가 넘는 거리를 내왕하기가 불편하므로 따로 교당을 신설하게 되었다.

      1934년(원기19년)  원불교 남부민교당(남부민 출장소)을 설립하고 교무 요청을 한 바, 융타원 김영신 교무가 초대 교무로 부임하였다. 원기19년(1934년) 9월 19일(음력) 남부민교당 법당 신축 낙성 기념식에 임석하시기 위하여,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께서 부산지방에 행가하셨는데, 기념식 후 익산총부로 돌아가시는 길에 김통제화, 이삼중행, 이종신, 김삼도화, 이영두 등 45명의 알뜰한 새 제자를 얻으셨다. 이들은 매주 토요일에 남부민교당 융타원 김영신 교무를 초청하여 법회(야회)를 보는 한편 초량에도 교당의 개설을 서로 논의하였다.

      1935년(원기20년)  원기20년 6월 6일부터 12일까지는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를 모시고 초량초등학교를 빌려 하루에 2시간씩 교리강습을 실시하였다. 이에 크게 법풍을 진작하니 초량교당 설립의 기초가 되었다.

      1936년(원기21년)~1961년(원기46년)  원기21년에 초량동 967번지 대지 147평을 매입, 와가 1동 14간의 아담한 법당을 신축하여 원불교 초량교당(초량지부)은 일원대도의 법음을 전하는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부산(남부민)교당과 초량교당을 기반으로 교세의 발전은 급속히 진전되었다. 이후 초량교당을 연원으로 원기32년에는 다대교당을, 원기38년에는 부산진교당과 서면교당을, 원기41년에는 대신교당을 신설하였고, 원기40년에는 부산진교당을 연원으로 동래교당이 신설되었다.

      1962년(원기47년)~ 1971년(원기56년) 대산 김대거 종사가 종법사로 취임한 후 원기47년(1962년)에 영도교당과 구포교당을 비롯하여 매년 교당이 신설되었으며, 반백년 기념대회가 열린 원기56년(1971년)에는 3개 교당이 신설되었다. 당시 부산지역에 신설된 교당은 18개 교당이었다.

      1972년(원기57년)~ 1976년(원기61년)  원불교 반백년기념대회 이후 부산지역의 교당은 급속히 늘어났다. 원불교 부산교구에서 매년 2~3개의 교당이 불어나기 시작하여 원기62년(1977년)에는 4개 교당이, 원기66년(1981년)에는 5개 교당이 신설되었다. 이렇게 교당이 늘어나서 원기72년(1987년) 12월 말을 기준하여 부산지역 시내 11개구에 44개 교당과 부산 인근 경남지역인 김해시 일원과 울산시와 울주군 양산군을 포함 8개 교당을 확보하여 총 52개 교당이 되었다. 이들 교당은 법적 근거에 의한 특별한 체계나 조직의 밑받침이 없이 상호간 필요에 의해서 잠정적인 연합 활동을 벌여왔었다.

      1977년(원기62년)~ 1978년(원기63년) 원기62년(1977년) 원불교 교단은 교구제를 시행하였고, 이에 따라 제1대 항타원 이경순(경남교당. 現 부산교당) 교구장이 취임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교구 연합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 실상으로 교구 체제정비를 위한 교구교의회 창립 및 봉공연합회 발족, 청년연합회, 학생연합회, 어린이 연합 활동 등이 시작되었고, 교구 어머니 성가대가 발족되기도 했다.

      1979년(원기64년)~ 1985년(원기70년) 원기64년(1979년)에 오래전부터 계획해 오던 부산교당 건축 문제를 앞두고 부산교구 전 교역자와 전 교도가 합심하여 건축에 협력할 것을 다짐, 건축추진위원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항타원 이경순 교구장의 순직으로 제2대 교구장에 균타원 신제근 교구장이 부임하게 되었고, 원기65년(1980년) 4월 8일 부산교당 봉불식을 마치고 교구청과 부산교구사무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86년(원기71년) 이 무렵 부산교구는 50개의 교당에 이르러 있었고, 교단은 다시 교구 행정의 변화를 시행하여 기존 14개 교구를 지역적 특성에 따라 20개 교구로 분할하였다. 이때 부산은 동부와 서부로 나뉘게 되었는데, 동부지역을 동부교구로 하고 서부지역을 서부교구라 하여 동부교구에 28개 교당, 서부교구에 24개 교당을 소속시켰다. 서부교구의 교구청은 신창동 소재 기존 교구사무소를 그대로 하고 교구장에 균타원 신제근 교무가 부임하고, 동부교구는 동래교당을 교구청 소재지로 하여 초대 교구장에 건타원 김대관 교무가 부임하였다.

      1995년(원기80년)~2002년(원기87년) 원기80년(1995년), 교단은 다시 국가의 행정구역 변경에 따른 교구 제도를 개편했는데 부산의 동부교구와 서부교구를 부산교구로 통합하였다. 내용을 보면 부산광역시와 양산시, 울산시를 묶어 부산교구로 하고, 김해지역은 경남교구로 편입되었다. 통합된 대교구제 부산교구의 초대 교구장으로 교산 이성택 교무가 부임하였다. 이성택 교구장은 ‘삼하나 운동’을 전개하여 교화 활성화를 기하였으며, 그 기운으로 원기85년(2000년)에 좌산종법사를 모시고 ‘2000년 부산 대법회’를 거행하였다. 그리고 부산원음방송국의 개국과 금곡청소년수련관을 수탁하여 부산 지역에 원불교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 올려놓았다.

      2003년(원기88년)~2006년(원기91년) 원불교 부산교구 제2대 교구장으로 심타원 박순정 교무가 재임하였다. 각 가정 앞에 원불교 문패붙이기 운동과 감사생활, 낙원가정 스티커 붙이기 운동 등 가족교화에 중점을 두고 교화를 전개하였다. 이즈음 교단은 국가로부터 군종장교 승인을 받게 됨에 따라 즉시 부산교구에 군교화의 문을 열어 울산지역과 언양지역에 군 교화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2007년(원기92년)~2012년(원기97년) 원불교 부산교구 제3대 교구장으로 월산 김일상 교무가 재임하였다. 부임 당년에 교구 임시기획위원회를 구성하고 교화 컨설팅을 의뢰하여 원기100년을 향한 교구의 교화방향을 설정하였다. 교화방향의 핵심은 교화단 교화와 지역공동체교화(지구교화)였다. 또한 미래 교화를 준비하는 조직으로 기획위원회 ․ 교화후원회 ․ 교구청 건립추진위원회를 동시에 출범시켰다. 이어 교화 성장을 실현시키는 정신운동으로 ‘4ㅎ정신 - 해야 한다 ․ 하면 된다 ․ 할 수 있다 ․ 행동한다’ 을 제시했다. 주된 사업으로 교화전략교당 운영, 교당별 비전수립추진, 단장 서원단 운영, 3040세대 교화, 미자립교당 면모 갖추기(신평교당, 가야교당, 만덕교당, 괴정교당 신축), 봉공회관 건립을 통한 대사회 교화, 하단성적지 순례 및 복원, 지구교화협의회 운영 등을 진행하였다.

      2013년(원기98년)~ 2018년(원기103년) 원불교 부산교구 제4대 교구장으로 숙타원 정숙현 교무가 부임하였다. 원기100년까지 수립된 부산울산교구의 정책과 비전을 계승하는 동시에 재가 ․ 출가의 소통과 합력, 교화 역량 강화, 지역 교화와 교도 자녀 교화, 원불교100년 성업 동참에 역점을 두었다. 특히 원불교100년성업 기념대회에 부산울산교구에서 3,476명이 상암월드컵경기장에 참석하여 거룩한 기념대회에 동참하였고, 어깨동무 법회, 입교 연원 우수자 포상의 정책을 진행하였다. 원기102년 6월 11일 영남권 최초의 교당인 원불교 하단교당 부산역사기념관을 준공하였다. 부산울산교구와 영남권 교화의 뿌리가 되는 교단사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2014년 2월 6일에는 원불교 부산교구에서 원불교 부산울산교구로 교구 명칭을 변경하였다.

      2019년(원기104년)  원불교 부산울산교구 제5대 교구장으로 현산 안인석 교무가 부임하였다. ‘원불교 2세기! 새롭게 일어서는 부산울산교구’를 교화 슬로건으로, 교구 자치역량 내실 강화, 지구 공동교화체제 확립, 현장교화 지원강화, 특성교화 육성을 핵심정책으로 교화비전을 수립하고 교화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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