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익산성지 > 성지

본문 바로가기
싸이룩스 불교 :: CYLOOKS BUDDHISM
카테고리 Hot
메인으로

원불교익산성지 益山聖地요약정보 및 구매

상품 선택옵션 0 개, 추가옵션 0 개

소개글 19개 / 자유게시판 0개 등록
위시리스트0
대표전화 063-850-3262
  주소 전북 익산시 익산대로 501
   전북 익산시 신용동 344-2 원불교중앙총부
   501 Iksan-daero, Iksan-si, Jeonbuk-do
Tag 원불교성지, 익산성지순례길, 익산순례길
  • 상품 정보

    상세설명

    원불교 성지란?
    성지란 종교의 발상지이며, 종교상의 유적이 있는 곳을 말합니다.
    원불교에서는 대표적인 5대성지로 영산, 익산, 변산, 만덕산, 성주 성지가 있으며, 그외에 교단적 가치가 있는 사적과 유물이 있습니다.

    원불교의 심장부로, 최고 지도자인 종법사가 머무는 곳입니다.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1924년(원기 9)에 터전을 잡고 법을 전하는 장소로 정했습니다. 초기 교단의 모습이 잘 보존돼 있으며, 원불교 교화 활동의 시작이 이뤄진 성지입니다.


    '익산' 전법성지

    중앙총부는 익산역에서 대전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4km 떨어진 국도 변에 자리하고 있다. 사이에 도로를 하나 두고 교립 원광대학교와 함께 50만 평의 부지에 세워진 원불교 중앙총부는 전법성지이며 대종사가 친히 건설 후 이곳에서 18년간 교화를 펴다가 열반에 든 곳입니다. 총부 구내는 사적 유물 관리위원회에서 보존지역으로 지정한 대종사 당시 이루어진 지역과 개교반백년 기념사업을 하면서 확장한 두 지역으로 총 10만 평의 대지위에 각종 기념물과 건물들이 건립되어 있습니다.

    원기 9년(1924) 3월에 대종사는 부안 변산에서 교법을 제정하신 후 교화를 펴실 기지로 정읍 내장사를 계획하고 한때 머물면서 여러 가지 상황을 보았으나 이 계획이 원만히 진행되지 않자 다시 전주 완산동 전음광 선생의 집에서 몇몇 제자들을 만났는데 그곳에서 서중안, 송만경, 이청춘, 이청풍, 문정규, 박원석, 전음광 등이 발기인이 되어 불법연구회 창립준비를 논의하였습니다. 모임에서 회관건립 장소를 이리로 결정하고, 대종사는 제자들과 함께 이리 부근을 답사한 후 박원석의 주선으로 이리역에서 4km 떨어진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에 총부 건설 기지를 정하였습니다. 마침내 원기 9년(1924) 4월 29일 이리 보광사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함으로써 본격적인 총부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원불교 중앙총부가 속해 있는 익산시는 백제면 소력지현所力只縣이라 했고, 신라 때는 옥야현沃野縣이라 개칭했습니다. 그 후 통일신라 때에는 금마군金馬郡, 고려 때에는 익주군益州郡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익산군 남일면과 병합하여 익산군으로 되었습니다. 1931년 11월에 이리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45년 8.15 조국 광복과 더불어 행정구역 확장과 지방자치법 시행에 따라 이리시로 승격되었다가 1996년 다시 익산시로 명명되었습니다. 중앙총부가 속해있는 북일면은 1973년 7월 1일 이리시 확장에 따라 이리시(현 익산시)에 편입되었습니다.

    처음 원불교 총부가 있던 장소는 익산군에 속해있는 잿배기 [도치盜峙]재라는 곳이다. 인가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곳으로 칙칙하게 들어찬 솔 숲 사이로 황등 호수가 있었는데 이 호수를 상시연上矢淵 또는 요교지腰橋地라 했다. 1922년 대아리 저수지가 준공되면서 황등 호수는 1923년 없어졌으며 현재 원광대학교가 차지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 호수 건너편으로 사방이 좀 트인 곳에 거친 잡초가 무성한 황토땅이 있었는데 여기가 바로 현 신룡동 344-2번지에 해당하는 지금의 총부 자리입니다. 이 지대를 이름하여 신룡벌이라 했습니다. 이곳에 서중안 선생이 3,945평의 대지를 구입 희사 함으로써 본격적인 총부 건설이 착수되었으며 이와 함께 각처에서 모인 제자들의 건축 희사금으로 원기 9년 9월 공사를 시작 11월 경에 목조 초가 2동 17간을 완공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전무출신의 공동생활이 시작되었으나 생활방도가 막연하였으므로 회장인 서중안 선생의 주선으로 동양척식회사 소유의 토지 소작 작농을 통해 스스로 공부할 비용을 모았습니다. 한편 생활유지 대책이 곤란하여 송적벽, 문정규 선생 등의 발의로 엿장수를 하면서 엿밥과 아카시아잎 반찬으로 끼니를 이어갔습니다. 낮에는 각자 맡은 고된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여자 전무출신들은 고무공장 공원으로 일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에도 밤에는 모두 한자리에 모여 그날의 경과를 보고하고 대종사의 법설에 법열이 넘치는 공부 길을 잡아가는 영육쌍전의 산 도량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초기 중앙총부의 선진들은 일제의 압박과 경제적 빈곤을 극복하면서 대종사의 일원대도 정법을 전했고, 또한 이곳은 새 회상의 발전을 위해 힘 기울였던 선진들 희생정신이 스며있는 땅이며 원불교 전법 성지인 동시에 교단의 심장부입니다.

    동쪽에는 미륵산이 있고 서쪽에는 배산이 있으며 호남평야가 서면으로 펼쳐져 있는데 중앙총부란 말이 처음 나오는 인쇄물은 월말 통신 28, 29 합간호로 원기 15년 6월에 발행되었습니다. 서중안의 열반을 당하여 쓴 위령문에서 [불법연구회 중앙총부 근고]라 하였습니다. 대종사 당시 세웠던 대각전, 본원실, 공회당. 종법실, 금강원, 정신원, 구정원 등과 소태산 대종사 성탑, 성비, 정산종사 성탑, 영모전 등 각종 사적과 유물, 사료 등이 있고 소태산 대종사의 유품 등이 소태산 기념관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한편, 지난 86년 3월에 총부 재정산업부에선 장기 종합개발계획안이 마련되어 총부의 성지 성역화 작업이 개교 백주년 사업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4532_47.jpg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0440_47.jpg
    익산성지 정문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0451_21.jpg
    대종사성탑



  • 소개·새소식

    소개글

    총 19 건

    원불교익산성지 소개
    1. 익산성지 배치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6795_3.jpg
       


    2. 익산성지 정기훈련터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익산성지 정기훈련터(定期訓練址)
      번호 : 교적 제2호
      소재지 : 전북 익산시 익산대로 501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익산에 불법연구회 중앙총부가 건설되자 혜산 전음광 일가가 제일 먼저 집을 건축하여 이사했습니다.
      당시 중앙총부 건물은 초가집인데 비해 전음광의 집은 반든한 기와집이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 10년 봄에 정기훈련법을 제정 발표한 뒤 훈련법에 의한 첫 정기훈련(을축 하선乙丑夏禪, 6월 15일(음 5.6) ~ 9월 15일(음 8.6))을 개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중앙총부에는 마땅한 훈련 장소가 없었으므로 전음광의 집 한쪽을 빌려서 임시선방으로 사용했습니다.
      전음광 가는 원기 47년 5월에 교단에서 매입하여 관리를 해오다가 건물의 노후화에 따라 원기 80년 기존 건물을 해체하고 그 터에 한옥 와가를 신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전음광 가의 본채가 있던 곳에 건축한 건물은 세심원, 창고터에 건축한 건물을 서정원이라 이름하였으며, 현재는 남자 교무들의 숙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6762_89.jpg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6762_94.jpg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6762_83.jpg
       

    3. 익산성지 익산총부 식당터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익산총부 식당터
      번호 : 교적 제3호
      소재지 : 전북 익산시 신용동 344-2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익산 중앙총부 건설 당시 소태산 대종사와 제자들이 엿장사와 소작농으로 근근이 생활하는 형편을 알게 된 오타원 이청춘이 원기 10년 농토 70여 두락을 희사하고 본격적인 공동체 생활 을 위해 총부 구내로 이사를 단행하였습니다.
      이청춘은 원기 11년 세탁부 아래에 터를 잡고(현 공덕원 자리) 가옥을 신축한 뒤 모친 김설상화와 함께 이사하고 출가를 단행했습니다.
      이청춘의 사가는 이후 이청춘이 전주지부 교무로 부임함에 따라 한동안 환자들의 치병실 등으로 이용되다가 한 차례 개축 과정을 거쳐 중앙총부에 근무하는 전무출신들의 식당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건물이 퇴락하여 더이상 활용하기가 어려워짐에 따라 원기 80년 그 터에 한옥 와가를 신축하고 공덕원으로 명칭하였습니다.
      공덕원 건축 후 총부 호상소로 사용하다 내부시설을 사무에 적합하도록 재구성하고, 원기 94년부터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와 '대산종사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 사무실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감찰원사무처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6695_23.jpg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6695_19.jpg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6695_13.jpg
       

    4. 익산성지 만석평사적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익산 만석평(萬石坪)
      번호 : 교적 제4호
      소재지 : 전북 익산시 북일면 만석리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 9년(1924)에 전라북도 익산군 북일면 신용리 344-2번지에 새 회상의 전진기지인 원불교 중앙총부를 건설하고, 이듬해 총부 유지와 생활 대책으로 인근 동양척식회사 소유 답 3,000여 평을 빌려 그 수익으로 공부 비용과 운영 경비 일부를 충당하였습니다.
      당시 선진들은 낮에는 폭염 속에 농사를 짓고 밤에는 감각 감상과 심신 작용 처리 건을 토론 하며, 소태산 대종사의 법설로 공부길을 지도받는 공동생활을 통하여 생활 종교의 토대를 굳건히 세웠습니다.

      만석평 소작농이 언제까지 이루어졌는지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지는 않으나 원기 10년 오타원 이청춘이 70여 두락의 논을 교단에 희사하여 작농을 하게 되면서 그만둔 것으로 추측됩니다.

      성가 117장 '공덕탑의 노래' 중 2절 '익산 총부 건설 당시 엿장사이며 만석평의 밭 갈기도 눈물겨워라'는 당시의 어려웠던 정황을 노래 한 것입니다. 교단에서는 선진들의 자취를 기리기 위해 만석평 일대의 3,500여 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원기 104년 만성교당에 만석평 사적비를 세워 기념하고 있습니다.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6630_54.jpg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6630_6.jpg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6630_64.jpg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6630_67.jpg
       

    5. 익산성지 대각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5-17

      명칭 : 익산성지 대각전(益山聖地 大覺殿)
      번호 : 성보 제5호(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79호)
      소재지 : 전북 익산시 익산대로 501
      지정일 : 원기 85년(2000) 7월 6일

      원불교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인 법신불 일원상이 최초로 모셔진 원불교 익산성지의 중심 건물입니다.
      원기 20년(1935) 복숭아밭이 있던 언덕에 터를 다듬어 지었는데 준공 당일 500여명의 대중들이 운집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습니다.

      대중 집회를 위해 지어진 원불교 최초 건물로 완공과 함께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이루어지는 법회나 좌선 등 대부분의 대중 집회가 모두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당시 이리 시내에도 이처럼 큰 집회장소가 거의 없어서 인근 촌로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와 구경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건축 당시에는 84평으로 지어졌으나 원기 40년(1955) 개축 공사를 통해 현재와 같은 107평 규모로 확장되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재세 시 이곳에서 직접 법회 및 행사를 주관했으며 열반 후 발인식과 종재식도 이곳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의 뒤를 이은 정산 종사는 원기 33년(1948) 4월 27일 제20회 총대회 때 이곳에서 원불교 교명을 선포하였습니다.

      원기 90년(2005)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 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원기 92년(2007)과 97년(2012) 보수 공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6514_11.jpg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6514_21.jpg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6514_05.jpg
      39443dc6c6e557892acd975fa9282de1_1715906514_15.jpg
       

  • 변경/수정신청

    자유게시판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