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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정보
상세설명
1층 시설 안내노숙자 예수 HOMELESS JESUS
얇은 담요를 얼굴까지 덮어쓰고 잠을 청하는 노숙인의 모습이다. 담요 밖으로 삐져나온 그의 발등에 못이 박혔던 흔적이 보인다. 캐나다 작가 티모시 슈말츠는 마태복음 25장 40절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에서 영감을 받아 노숙인의 모습으로 예수를 표현했다. 성경 속의 예수님이든, 생존경쟁에서 낙오되어 노숙인이 된 사람이든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사랑을 실천했던 예수에 대한 상념을 일깨우고 있다. 노숙자의 모습을 한 예수상이 처음 어느 성당 앞에 설치되었을 때, 신성모독이라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항의를 받아 철거되었다. 하지만 곧 로마 교황청에서 바티칸 인근에서 얼어 죽은 노숙인을 기리기 위해 이 작품을 설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축복함으로써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로마 교황청에 이어 스페인의 마드리드, 아일랜드의 더블린, 싱가포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등 세계 각지에 설치되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뚜께우물
조선시대 국가 공식 처형장소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뚜께우물 터이다. 우물이 크고 깊으며 물의 양이 많아 늘 흘러내려 평상시에는 우물의 덮개를 덮어 두고 있다가 망나니가 사람을 죽이고 나서야 뚜껑을 열고 칼을 씻었다고 전해진다. 사형 집행 당시, 망나니가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칼날에 뿜어 대며 죄인 주위를 돌면 가족이나 친지들이 돈을 던져 주며 ‘행하行下’라는 팁을 주었다고 한다. 가급적 고통을 주지 말고 단칼로 죽여 달라는 부탁이었다. 뚜께우물이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개정蓋井우물이라는 명칭이 되었고, 주변 마을의 이름도 “개정동”이라 불리었다.
서소문 밖 연대기
작가 - 조완희 · 재료 - 화강석, 브론즈
앞_조선 후기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를 거치며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을 기억하며, 작은 십자가들로 이루어진 칼 형상으로 역사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뒤_누운 사람들의 군상을 사람 人자와 서소문의 ㅅ자의 중첩 의미로 표현하고, 주야간 시간대별로 변하는 음영의 흐름으로 자연의 질서에 따른 과거 서소문 밖의 모든 사람과 현재의 사람들과의 만남을 표현하였다.
순교자 현양탑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일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곳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는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그리고 1866년부터 1873년까지의 병인박해기를 거치며 수많은 천주교인이 처형을 당했다. 이곳에서 순교한 수많은 사람 중 성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한 44명은 한국 천주교 창설 200주년이 되던 1984년 5월 6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한국천주교회에서는 성인의 탄생을 기리기 위해 1984년 현재의 공원 안에 일부 토지를 매입하여 순교자 현양탑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1997년 공원이 새로 단장되면서 기존의 현양탑이 헐리게 되었다. 이에 한국천주교회는 1999년 이곳에 새로운 순교자 현양탑을 세웠다. 현재 44명의 성인과 복자 27명을 비롯해 진리를 입증하다가 희생된 수많은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월락재천 수상지진 Even if Moon falls, it still remains in Sky and Water is rising out, it still remains in pond.
작가 - 조준재 · 노출콘크리트 위 문자부조 - 30m(L) · 재료 - 청동 (돌출부조)
“달은 떨어져도 하늘에 있고, 물은 솟구쳐도 연못에서 다한다.” 1801년 순교한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 베드로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말 중 ‘월락재천 수상지진’의 한글, 한자, 영자를 양각 돌출구조로 표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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