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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제주교구
대표전화 070-8870-4578
   064-740-6000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덕로8길 1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이동 114 천주교제주교구 중앙성당
   14 Gwandeok-ro 8-gil, Jeju-si, Jeju-do
Tag 천주교순례길
  • 상품 정보

    상세설명

    제주 근현대사의 아픔인 4·3
    그리고 신축교안의 역사적인 상처를 돌아보다

    신축화해길
    제주 근현대사의 아픔인 4·3과 신축교안의 역사적인 상처를 담고 있다.
    1901년 신축교안 당시 천주교인들이 희생된 관덕정과 희생자들이 버려진 화북천, 희생자들 중 연고가 없는 이들이 합장된 황사평을 순례의 시작으로 1901년 신축교안 당시 제주지역 최초의 본당인 중앙 주교좌성당이 마침이다.
    순례길 여정에서 1801년 신유박해 중에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주에 유배된 정난주 마리아가 도착한 화북포구와 4·3으로 사라진 곤을동 마을 등 역사적인 공간을 지나 별도봉과 사라봉의 해안비경을 걸으면서 고통의 역사를 넘어 화해를 모색케하는 시간을 느끼게 한다.


    출발지. 황사평성지
    황사평성지~중앙성당 코스구간
    12.6㎞/ 3~4시간 소요

    제주시 : 제주국제공항이나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343-1 버스타고 황사평입구정류장 하차, 토보로 18분 이동
    서귀포시 : 서귀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182번 타고 제주국제대학교정류장 에서 425-1번 환승, 영평알 동네 정류장 하차하여 도보로 19분 이동


    별도천(화북천)
    거로 마을을 오른쪽에 끼고 화북포구 방향으로 흐르는 화북천은 예로부터 마을의 귀한 자원이었는데, 이는 천을 부르는 이름이 많은 데서 알 수 있다. 다옥내, 몰푸리, 단물, 원남소, 섯내 등 천은 하나인데 이름은 끝이 없다. 말이 물을 마시던 곳, 여자와 남자가 각각 목욕하던 곳 등 용처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붙인 까닭이다. 지금은 군데군데 고인 물이 전부라 짐작해볼 따름이지만, 옛날에는 건천답지 않게 물이 풍부했다고 한다.

    별도포구(화북포구)
    별도포구는 산지천부터 조천해안을 잇는 올레 18코스의 중간지점인 화북동에 자리하고 있다.
    이 포구는 조천의 조천포구와 함께 조선시대에는 육지와 제주를 잇는 2대 포구 중 하나로 역사가 깊은 포구이다.
    별도포구가 있는 화북동은 김씨와가, 화북진선, 해신사, 별도연대, 환해장성 등 문화유적도 많아 포구뿐만 아니라 문화유적을 함께 둘러보면 좋을 마을이다.
    화북동 청풍마을을 지나 포구 쪽으로 걸어오면 화북동의 문화역사탐방코스도 확인하고 올레꾼들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별도올레쉼터가 있다.
    별도포구는 조천포구와 함께 제주의 관문으로 부임하는 목민관이나 김정희, 최익현 등 유배인들이 이곳을 통해 제주에 들어왔던 역사적인 포구이다.
    별도포구에는 해상을 왕래할 때 안전을 기원하던 사당인 해신사가 남아있으며, 현재도 매년 정월 보름과 선박이 출항하기 전에는 해신제를 지내어 안전을 기원한다.
    화북의 별도포구와 함께 아직도 옛 모습이 남아있는 마을을 돌아보고 올레코스를 따라 별도봉 쪽으로 산책을 하다보면 조용하고 호젓한 화북의 해안도로를 즐길 수 있으며, 사라봉까지 오른다면 제주의 멋진 일몰 풍경을 즐길 수도 있다.

    곤흘동마을터(곤을동마을터)
    4.3의 전 기간을 통틀어 ‘광풍’이라고 불릴 정도의 민간인 대학살이 집중적으로 벌어진 것은 1948년 10월 17일 제 9연대장 송요찬 소령이 “해안선으로부터 5km이상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모두 폭도배로 간주한다”는 포고문이 발표되면서부터다. 이 포고령은 곧 소개령으로 이어져 중산간마을 주민들은 해촌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 11월 17일에는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이른바 “태워 없애고, 굶겨 없애고, 죽여 없애는” ‘삼진작전(三盡作戰)’이 전개된다. 소위 ‘초토화작전’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 기간 중산간마을의 가옥은 95%가 전소되었는데, 약 3만 채가 불에 태워졌다. 생활 터전을 상실한 주민 2만 여 명은 결국 살기 위해 한라산으로 대대적인 도피를 시작한다. 이듬해인 1949년 3월 제주도지구 전투사령부가 설치되면서 진압과 선무를 병행한 작전으로 토벌 작전이 바뀌고, 신임 유재홍 사령관이 “한라산에 피신한 주민들은 귀순하면 모두 용서하겠다”는 사면 방침이 발표될 때까지 근 4개월에 걸친 기간 동안 섬의 곳곳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의 만행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참상이었다. 그 4개월 간은 4.3 특별법에서 규정한 4.3의 공식전개기간인 1947년 3월 1일 ~ 1954년 9월 21일 한라산금족령이 개방되면서 7년 7개월의 기간 동안 가장 집중적으로 제주섬 주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 기간이기도 했다.
    곤흘동 마을의 불에 태워지고 주민들이 무차별 학살을 당한 시기도 이 기간이었다. 곤흘동이 불에 타 폐동이 된 것은 1949년 1월 5일과 6일 양 일간이었다. 1949년 1월 5일(음 1948. 12. 6) 오후 3∼4시 쯤 군인 1개 소대 약 40명의 군인들이 곤흘동을 포위하고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로 들어선 군인들은 곤흘동 집들을 수색하고 돌아다녔다. 영문도 모른 채 눈만 껌벅이는 마을 사람들을 전부 모이게 하고는 나이가 젊은 사람들 10여 명 골라내어 곤흘동 바닷가로 데리고 가서 죽였다. 마을 주민들은 화북국민학교에 가두었다. 이어 곤흘동도 불태웠다. 1월 5일에 불탄 곤흘동의 집들은 안곤흘 22채, 샛곤흘 17채였다. 학살은 1월 6일에도 이어졌다. 화북국민학교에 가뒀던 주민들 중에 젊은이들 12명을 모아 화북동 동쪽 바닷가인 연디 밑 속칭 ‘모살불’에서 학살했다. 이들은 주민들의 학살에 그치지 않고 곤흘동의 남아 있는 집들도 1월 6일에 불태웠다. 이날 밧곤흘의 28세대의 가옥도 모두 불태워져 곤흘동의 자취는 사라져버렸다. 67호의 적지 않던 마을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곤흘동에서 살아남은 주민들은 주변 마을로 옮겨졌다.
    4.3 당시 전소된 가옥만 3만여 채에 이르는데, 4.3이 종결된 이후에도 복구되지 못한 속칭 ‘잃어버린 마을’만도 100개소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중산간마을들이다. 해촌마을이 이처럼 완전히 전소된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라 하겠다. 왜냐하면 불태워진 중산간마을 주민들이 소개되어 피란 생활을 했던 곳이 일주도로를 빙 돌아 소재했던 해촌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전소된 북촌리의 경우도 사건이 종료된 후 다시 주민들이 집터를 고르고 서까레를 다시 세우면서 하나 둘 가옥들을 복원해 다시 마을이 이루어졌지만, 이곳 주민들은 밧곤흘 동측의 화북리에 옮겨 살아 곤흘동은 다시는 복구되지 못했다. 이때 폐허로 변한 곤흘동은 이후에도 집과 집을 구분 지었던 울담(울타리 돌담)만 남은 풍경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그나마 울담만 남은 곳은 예전의 안곤흘 마을로 샛곤흘의 경우는 밭터로 변해 마을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현재의 안곤흘 마을터는 당시 불타버린 집터의 울타리가 대부분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집으로 들어가는 올래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아궁이로 사용했던 흔적도 남아있으며, 연자방아간의 방앗돌과 집터가 비교적 뚜렷이 남아있다.
    안곤흘을 둘러 돌던 마을의 좁은 길은 하천 확장으로 일부가 무너져 있으며, 가옥들이 들어섰던 곳은 하나로 합쳐져 밭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다. 안곤흘은 현재 농사를 짓는 밭들은 없다. 2005년 제주시에서 별도봉 산책로를 마을 안까지 연결하는 공사를 하면서 마을 원형이 일부 파괴됐고 2013년 안곤흘의 바닷가인 드렁곶에 해안 침식을 막는다면서 도리어 해안산책로를 내어 다시 원형이 일부 훼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전의 자연스런 폐허는 많이 사라지고 말았다.

    사라봉
    고운 비단을 뜻하는 사라봉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 곳을 선정한 영주십경 중 사봉낙조에 해당하는 오름이다. 사봉낙조는 사라봉에서 지는 붉은 노을을 의미하며, 사라봉 정상에 올라 노을로 붉게 물든 바다를 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는 파란 바다, 남쪽으로는 웅장한 한라산을 볼 수 있고 발 아래로 제주 시내의 모습이 보여 일몰 뿐 아니라 막힘없이 펼쳐진 평소의 풍경도 아름답다.
    오름의 형태는 북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로서 붉은 송이로 구성된 기생 화산이며 전체적으로 해송이 가득하다. 사라봉 남쪽에는 모충사가 있고 동쪽에는 별도봉이 연봉을 이루고 있으며, 산 일대는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공원 내에는 팔각정과 의병 항쟁 기념탑이 있고 체력단련 시설과 음수대,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관광객 뿐 아니라 도민들도 자주 방문하는 오름이다.들어간 기념품이나 각종 수공예품, 편집샵 등이 즐비해 있으며, 수제버거, 피쉬앤칩스 음식점 등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맛집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서귀포에 머물며 명작을 남긴 예술가들의 삶의 자취를 더듬어보는 작가의 산책 길도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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