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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위앵 민(閔) 마르티노 루카(Martin Luc Huin) 신부
    1836 – 프랑스 귀용벨 출생
    1861 – 사제서품
    1865 – 조선에 입국
    1866 – 순교
    1968 –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
    1984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

    프랑스 귀용벨에서 1836년에 태어나 1861년 6월29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1865년 5월 27일 조선에 입국하여 내포지방 세거리 공소에서 전교하시던 중,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님이 잡혔던 날 덕산과 고덕 사이에 있는 봉산의 쇄재에 숨어 있었다.  그러다가, 주교님의 자수하라는 편지를 갖고 온 신자들의 뒤를 쫓아온 포졸들에게 1866년 3월 11일 체포되었다. 그 후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님과 오메트르 오 신부님과 함께 1866년 3월 30일 성금요일에 수영 갈매못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순교하셨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복자품에 오르고,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성인품에 오름.

    제4대 교구장 베르뇌 주교는 1963년 11월 24일, 파리외방 전교회로 서신을 띄워서 해마다 성장해 가는 교회 사정과 사목자의 부족을 알리면서 선교사를 더 보내 줄 것을 간청하고 있다.

    조선 교구는 1839년의 기해박해, 1845년의 병오박해 이후 – 1860(경신)에 일시 박해가 있었으나 –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가라 앉으면서 신자 2만을 헤아리는 커다란 신자 공동체로 자라나는 발전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때 베르뇌 주교가 청한 사제들은 1865년 5월 말에 조선에 입국하게 되는데, 도리(Dorie) 김 신부, 브르트니에르(Bretenires) 백 신부, 위앵(Huin) 민 신부, 그리고 볼리외(Beaulieu) 서 신부 등 네 신부가 그들이었다.

    이리하여 베르뇌 장 주교를 비롯하여 다블뤼(Daveluy) 안 부주교, 푸르티에(Pourthie) 신 신부, 프티니콜라(Petitnicolas) 박 신부, 페롱(Feron) 권 신부, 리델(Ridel) 이 신부, 칼레(Calais) 강 신부, 오메트르(Aumaitre) 오 신부 등 12명이 이 땅에서 사목 활동을 하게 되었다.

    위앵신부가 조선에 파견되기 전 사진
    1864년 5월 21일 서품된 브르트니에르 신부와 볼리외, 도리, 위앵 신부가 한국 선교사로 떠나기 전 부모와 하직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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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앞에 대로(大怒) "이럴수가"/성인 위앵 루카(민) 신부
    (1836년 10월 20일생, 1866년 3월 30일 군문효수)
    성인은 내포, 당진, 합덕에서 선교하던 중 체포되어 갈매못에서 성 다블뤼 안 주교와 함께 사형집행을 당했는데 휘광이가 안 주교의 목을 반쯤 자르고 판관과 돈 흥정을 하자 성인이 휘광이를 크게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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