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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황석두 루카
    1814 – 충청도 연풍 출생
    1866 – 순교
    1968 –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
    1984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

    황석두 루카는 지체가 높지는 않았으나 매우 부요한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황석두가 가문을 일으켜 세우기를 기대해서 어엿한 벼슬길에 들어서게 하려고 착실한 교육을 시켰다. 실제로 황석두는 재주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미래는 모르는 것이어서 황석두는 끝내 벼슬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스무살이 되었을 무렵 그에게 글을 가르치던 선생의 영향으로 천주교를 알아 개종한 후로 자신의 믿음을 관직과 바꾸고자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천주교를 알게 되면서 과거 공부를 하는 대신 몇 권의 교리책을 얻어 그것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와 같은 변화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천주교를 가문을 파괴하는 몹쓸 종교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아들 석두를 천주교에서 떼어놓으려고 했다. 벌써 여러 차례 위협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석두를 불러 말했다.
    “어느 양반 가문에서 이런 짓 하는 것을 볼 수 있단 말이냐? 이제부터 다시는 천주교 교리 공부를 못한다.”
    “죽어야 한다면 죽을지언정 교리 공부를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황석두가 이렇게 고집을 부리자 아버지는 하인들에게 볏짚을 썰 때 쓰는 작두를 가져오게 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인다고 엄포해도 교리 공부를 하겠다고 하니 목을 이 작두에다 넣어라.”
    “왜 제게 그런 명을 하십니까?”
    “몹쓸 녀석, 목숨을 걸고 천주를 섬기겠다고 하니 너를 죽이려고 그런다.”
    “제가 천주를 숭배하기 때문에 죽이시려는 겁니까?”
    “그렇다”
    “그러면 목을 작두날 밑에 들이밀겠습니다.”
    하인들은 감히 작두의 발판을 밟아 누르지 못했고 아버지는 통곡을 하면서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황석두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철저하게 침묵을 지켰다. 2년동안 그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집안 사람들은 그가 병에 든 줄 알고 온갖 약을 다 썼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석두는 부모가 실의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 방에 들어가서 한마디 했다.
    “아버지”
    “네가 말을 하느냐?” 이에 그의 아버지는 깜짝 놀라 말했다.
    “저는 벙어리가 아닙니다. 다만 아버지께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엄금하셨기에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도대체 그 교리가 어떤 것이냐? 내가 좀 읽어 보게 그 책들을 가져오너라.”
    책을 읽어보고 나서 그의 아버지는 슬픔과 경탄이 가득차서 그 고장에 있는 교리 선생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이렇게 말했다.
    “교리 선생을 한 분 모셔 오너라. 이왕 우리가 이 교리를 믿을 바에야 몰래 믿지 말고 내놓고 믿자꾸나.”
    이렇게 해서 아버지가 입교했고 가족도 모두 입교했다. 그것은 1839년 기해박해가 있은 후의 일이었다.

    페레올 주교가 1845년에 한국에 도착한 후로 황석두는 전적으로 선교사들을 도왔다. 그래서 주교는 황석두의 아내가 그와 헤어져 순결을 지키며 살기를 승낙했기 때문에 그에게 사제품을 주려고 생각한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교황청에서는 한국에 아직 황석두의 아내가 들어갈 정식 수녀원이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관면을 주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형이 가산을 탕진해 버렸으므로 황석두는 자기의 개인 재산을 가족들에게 모두 주었다. 그리고 가족들을 좀더 효과적으로 도우려고 교우들이 그에게 맡겼던 밑천으로 투기를 시작했는데 별 이득을 보지 못했다.

    그러자 선교사들은 황석두가 자신들과 맺고 있던 관계 때문에 다른 교우들이 어느 정도 그를 신용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그를 멀리했고, 이 괴로운 상태는 10년간 계속되었다. 1858년 황석두로 하여금 하던 일을 모두 버리게 하고 한문 선생으로 채용했던 페롱 신부는 “황석두는 내가 공소에 가서 성무를 수행하는데에도 따라다녔는데, 나는 그가 교구 전체에서 가장 훌륭한 회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후에 증언했다. 그 후 황석두는 조안노 신부 밑에서 회장이 되었다가 다시 베르뇌 주교 밑에서, 나중에는 다블뤼 주교 밑에서 회장으로 있으면서 주교의 신심서들과 라틴어 조선어 한문 사전 편찬과 교정을 도왔다. 그리고 벌어들이는 돈으로 전날의 채권자들의 빚을 갚으며 대단히 검소한 생활을 했다. 그리하여 신용과 존경을 다시 얻게 되었다.

    다블뤼 주교가 체포되었을 때 황석두는 자기의 영적 스승이요 아버지인 주교를 따라가고자 포졸들에게 주교의 제자라고 말했다. 다블뤼 주교가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고 말하자, “무슨 말씀입니까? 세상에서는 같이 살았는데….”하고 대꾸했다. 포졸들이 “오지 말라”고 말렸으나 소용없었고, 결국 포졸들은 그 역시 죄인으로 잡아 서울로 데리고 갔다. 그는 옥에 갇혀 있으면서 관리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열심히 설명했다. 그래서 한때 포졸들은 “상부의 명령을 완화해서 이 사람을 살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황석두가 너무 열성을 부렸기에 짜증스러워하며 끊임없이 천주교를 설교하는 그에게 형벌을 더했다. 1866년 3월 23일 사형을 선고받고 3월 30일 성금요일에 처형되었다.

    처형 전에 사형수들에게 식사가 제공되었는데 황석두는 말하였다. “천주께서 만드신 음식을 먹는 것이 이것으로 마지막입니다:” 그리고는 즐겁게 먹은 후 기도에 몰두했다. 다블뤼 주교가 처형될 때 망나니가 첫 번째 칼을 내리치고 돈을 더 내라고 하며 오래 흥정하는 동안 위앵 신부가 겁에 질려 울며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보고 신부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위앵 신부는 다시 힘을 얻어 평소의 얼굴빛을 되찾을 수 있었다. 황석두 자신은 기쁜 표정으로 즐거움이 넘쳐 흐르는 것 같았다. 황석두 루카는 성직자들과 함께 군문효수형을 받고 54세를 끝으로 순교했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품에 오르고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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