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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이 아가다 (1813~1839)
    꺼지지 않은 영혼의 반딧불

    성녀 이경이 아가타는 원래 천주교를 믿는 시골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고, 장성한 후 궁녀를 감독하던 내시에게 속아서 출가하였다. 그래서 친정으로 돌아와 지내다가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혼인장애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그러나 친정어머니가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친정어머니는 시골 동생집으로 내려가고 성녀는 한영이 막달레나와 그녀의 딸인 권진이 아가타의 집에 의탁하여 살았다. 성녀는 같은 처지이던 그들과 함께 서로 의지하며 독실히 수계생활을 하였다.

    기해박해가 한창이던 1839년7월 17일(음력6월7일) 한밤중에 배교자의 밀고로 잡혔는데, 종사관은 그들의 성명을 물은 다음 같이 잡힌 한 막달레나만을 옥에 가두고 성녀와 권 아가다 그리고 여종은 따로 사관청에 가두었다. 오래지 않아 배교자 김여상이 찾아와서 권 아가타를 함께 도망하자고 감언이설로 유인하였다. 그 후 포졸들이 와서 성녀와 동료들을 풀어 주었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당시 포도대장이었던 이완식이 파면되고 파수를 보았던 포졸들이 사형에 처해지거나 유배형에 처해졌다. 다시 성녀와 동료들에 대한 체포령이 내리고 교우들에 대한 수색과 추적이 강해져 이로 인해 피신해 있던 교우들마저 체포되기도 하면서 다시 잡히어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증언록의 제 45차 재판증언자 정 아가다의 증언에 의하면 “성녀와 권 아가다는 10월에 옥에서 도망하여 정아가다의 이웃 교우 집에 피신하였으나 그 집에 미안하여 자신의 부친과 외조부가 상의하여 삼대 우물 동산에 오두막을 짓고 두 아가다를 숨겼다. 그 동네 양반이 하인을 시켜 오두막을 헐어버리니 할 수 없이 두 아가다는 다시 그 교우의 집 벽장 속에 숨었다가 견딜 수 없어서 다음날 자신의 집으로 와 아랫방에 있었다. 그들과 같이 하룻밤을 지낼 때 권 아가다 하는 말이 포졸이 나를 꾀여들려 하기에 우리가 도망하였노라 하며, 자신에게 지금까지 영세하지 못한 것이 문답을 배우지 못한 이유이니 힘써 배우고 영세할 때 본명을 아가다라 하라 하기에 자신의 본명도 아가다 입니다. 그 이튿날 밤에 포졸들이 들이닥쳐 두 아가다와 그들을 숨겨준 교우의 집 식구들 모두를 잡아 갔고, 자신의 집 식구들 또한 잡아가려 하니 두 아가다가 그들에겐 죄 없다 여러 번 말리니 그 날 잡아가지 아니하고 다음날 다시 와서 우리 부모님을 잡아갔다. 두 아가다를 포청에 가두었다가 서울의 당고개 형장으로 나가 참수 치명하신 줄 압니다.”라고 증언하였다.

    포도청으로 압송된 이 아가타는 무서운 형벌을 받았지만 불굴의 인내심으로 형벌을 견디면서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형조로 옮겨져서도 새로운 심문과 고문을 당하였지만 순교의 의지를 더욱 굳혔을 따름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고, 1839년 12월 27일(양력 1840년 1월 31일) 서울 당고개에서 27세를 일기로 순교하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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