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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정보
상세설명
하느님을 부르며 살아온 신앙의 터전
천호성지는 병인박해(1866) 때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이명서, 손선지, 정문호, 한재권 등 네 명과 그해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 등이 묻혀있고, 또 2년 뒤여산에서 순교한 열 명의 순교자가 묻혀 있다.
아직도 종적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천호산 자락에 묻혀있다.
천호는 기해박해(1839) 이후로 박해를 피해와 숨어살던 신자들이 이룬 유서깊은 교우촌이다. 또한 성지 인근에는 1845년 김대건 신부가 체포된 후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가 숨어서 미사를 드리던미사굴과 1867년 블랑 신부가 처음으로 정주하여 사목한전라도 최초의 사목지 어름골이 있다. 또한 이웃사랑을 실천한 박준복의 삶을 생각할 수 있는 낙수골이 있다. 천호성지에는 피정의 집과 세상을 떠난 영혼을 모신 봉안경당, 그리고 성물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도보순례
1코스(1시간30분)
부활성당광장 → 놋짐재 → 가상칠언묵상길 → 놋짐재 → 부활성당광장
놋짐재 : 공소를 사목하는 사제와 동행하던 복사들이 미사짐을 인계인수 하던 곳.
가상칠언묵상길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마지막으로 남기신 일곱말씀을 묵상하는 길(수많은 골짜기를 따라 신앙을 증거하며 사셨던 신앙선조들의 삶의 터전 관망)
2코스(1시간)
부활성당광장 → 다리실교우촌 → 로사리오동산 → 대나무숲길 → 실로암 -> 부활성당광장
다리실교우촌 : 170년 역사의 아름다운 한옥으로 지어진 천호성당.
3코스(3시간)
부활성당광장 → 놋짐재 → 가상칠언묵상길(대침묵) → 어름골 → 놋짐재 → 부활성당광장
어름골 : 1877년 블랑신부 5년 사목, 리우빌신부 5년 사목. 라푸드카드신부 2년 사목장소. 12년 동안 한국최초의 본당 사목지였음.
기도순례
성인묘역(30분) : 성인묘역 참배 및 기도, 1866년 전주숲정이에서 순교하신 4분의 성인과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하신 10분의 묘역
십자가의 길(30분) : 부활성당광장 → 게세마니동산 → 십자가의 길 → 부활성당광장
로사리오 길(30분) : 부활성당광장 → 로사리오동산 → 대나무숲길 → 실로암 → 부활성당광장
성물박물관(30분) : 천호 가톨릭성물 박물관 관람
눗짐재
공소를 사목하는 사제를 따라 동행하던 복사들이 미사짐을 인계인수 하던 곳을 놋짐재라 한다. 이곳은 산수골 복사와 다리실 공소 복사가 인계인수 하던 곳.
어름골
초남이가 전주교구 신앙공동체의 못자리라면 비봉면 대치리 어름골은 제도교회인 전주교구의 모태와 같다. 1877년 11월 가을 판공이 시작되기 전 블랑(한국명:백삼규)신부가 어름골에 정착했다. 당시 여러 사정에 의하여 본당으로 설립되지는 않았지만 블랑신부가 거처를 정한 이 어름골은 본당과 동등하게 보아야 한다. 1882년 1월 28일 리델 주교가 체포되어 5월4일 중국으로 추방되면서 같은 해 봄 부교구장인 블랑 신부는 교구장 직무를 대행하기위해 상경하고 후임으로 리우빌 신부가 부임하여 5년동안 사목한 후 그 후임으로 라푸드카드 신부가 부임했다. 그러다가 고산되재로 거처를 옮겼다. 이렇게 어름골은 12년동안 사제가 상주하여 사목하던 한국 최초의 본당 사목지이다. 지금은 우물터의 흔적만 남아 있다. 품안길 내 여러 골짜기에는 신앙선조들이 흩어져 신앙을 지키며 살았던 곳들이다.
산수골
지금 현재의 산수골 공소는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후 옮겨진 곳이고 1868년 이곳에 사는 박베드로와 그의 아내 전마리아 부부가 여산으로 끌려가 박베드로는 석방되고 전마리아는1868년10월17일 교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또한 1839년 고산 옥에서 불타 죽은 박바르바라를 이곳 산수골에 안장하였다고 하는데 그 묘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낙수골
박경진 프란치스코(전주교구 박성운 베네딕토 신부의 증조부)와 오말가리다는 1868년8월14일 현재 안성시 일죽면 죽림리 이전터에서 순교하였다. 그 후 아들 박준복은 비봉면 대치리 낙수골에서 살며 이웃들에게 애긍시사를 하고 선덕을 베풀어 현재 대치리 경로당 옆에는 주민들이 세운 공덕비가 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박해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였다.
시목동
다리실과 가깝게 인접한 곳이다. 1866년12월13일 정문호, 한재권 성인이 순교한 후 그 가족들이 이곳으로 피신하여 살던 곳이다.
다리실교우촌
천호 교우촌은 박해시대에 다리실 또는 용추네라 불렸다. 다리실은 월곡이라고도 썼으며, 용추네는 본래 용이 등천한 내가 있다하여 용천내라고 했는데 용추네는 용천내가 변한 이름이다. 천호라는 행정명은 후대에 교우촌이 형성되면서 용천내가 천호로 바뀌듯하다. 천호교우촌은 1839년 기해박해 이후로 인근 충청도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 일대 산골짜기로 숨어 들어와 신앙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비롯되었다. 신자들이 처음 교우촌을 형성한 곳은 성인들의 묘지아래 (부활성당 아래 골짜기) 골짜기인 무능골이었다.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이후 서서히 아래쪽으로 이동하여 현재의 마을이 이루어졌다. 1866년12월13일 손선지성인이 처형된 후 그의 아들 손순화(요한)가 일가족을 데리고 이곳으로 피신하여 살게 되었고 이듬 해 3월17일 많은 교우들과 더불어 전주숲정이에서 정문호, 한재권, 손선지 성인의 시신을 모셔와 지금의 성인묘역에 안장하였다. 1868년6월9일 무진년 박해 때에는 이곳의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어 여산으로 끌려가 순교하였다. 이러한 순교신앙 선조들의 얼을 이어받은 다리실 교우촌은 170여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서 지금은 약35세대 80여분들이 선조들의 거룩한 신앙의 유산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전주교구에서는 2007년5월17일 현재의 한옥성당을 축성했으며 2011년2월 천호공소를 천호 준본당으로 승격시켜 천호성지 관장신부를 주임신부로, 부관장신부를 보좌신부로하여 사목하고 있다.
대숲길-실로암연못
로사리오동산 아래편에 대나무숲길을 조성하여 대숲길과 실로암 연못길을 따라 순례자들이 신앙선조들의 발자취와 숭고한 신앙의 얼을 새기면서 걸으면 게세마니 기도처와 십자가의길 기도처를 만나며 순례기도가 이어지도록 조성하였다.성물공예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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