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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정보
상세설명
산막골성지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금덕길81번길 117
산막골은 기해박해(1839) 이후 신자들이 산간벽지로 숨어들면서 신앙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산막골은 베르뇌, 다블뤼 주교님과 함께 활동했던 페롱 신부님의 사목 활동 근거지였고, 황석두 루카 성인이 가족과 함께 6년을 머물면서 선교사들의 복사와 한문 선생, 그리고 신자 회장을 하며 지낸 곳입니다.
다블뤼 주교님도 산막골을 방문하여 세례를 주기도 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 역시 가까운 불무골에 머물 때 이곳에 와서 페롱 신부님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곤 했던 곳입니다. 산막골은 근처에 있는 많은 신앙 공동체와 함께 하부 내포 지역 선교의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산막골 출신 순교자만 해도 10분이 계십니다.
산막골 성지는 오래 전 신앙 선조들이 숨어 살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간절함이 담겨 있는 곳입니다. 숨어 신앙 생활하던 곳이기에 크지는 않지만, 산 속 깊은 곳에 호젓하게 자리 잡고 있어, 바쁘고 정신없이 사는 오늘날, 조용하고 작은 쉼이 필요한 순례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은재 줄무덤 성지
충청남도 서천군 문산면 수암리 568-1
산막골 성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고갯마루에는 인근에서 숨어살던 신앙 선조들이 죽어 묻혔던 곳이지만, 안타깝게도 30년 전에 임도를 만들며 그 줄무덤 터는 콘크리트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당시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길을 내면서 묵주와 십자고상 등 많은 성물이 나왔지만, 연고자가 없어 인근에 다시 묻어버려 지금은 그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줄무덤이 있던 고갯마루에 십자가와 야외 제대, 14처를 조성하여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작은재 줄무덤 성지와 산막골 성지를 오가던 옛길이 있는데, 지금은 덤불로 덮여있습니다. 조만간 옛길을 복원하여, 오래 전 신앙 선조들이 다녔던 그 길을 걸으며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볼 날을 희망해봅니다.
산막골성지 미사 : 매일 11시 미사(월요일만 제외)
근접 도보순례 가능 성지
서천 산막골·작은재 교우촌 사적지 순례길 안내(총 5.5km)
독뫼 공소(수암리 296-4) - 오르막길 임도 0.9km - 작은재 줄무덤 터 - 내리막길 임도 1km - 작은재 공소 터 입구 표지석 - 평야길 농로 2.4km - 천방농원 입구 - 오르막길 임도 1.2km - 산막골 교우촌
페롱(Feron, Stanislas, 1827∼1903)
프랑스의 세즈(Sez)에서 태어나 그 곳 대신학교를 나와 사제 수품. 1854년 10월 14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1년간 수련한 다음 1856년 1월 23일 프랑스를 떠나 14개월 만에 한국에 도착하였다. 베르뇌(Berneux) 주교가 성직자 회의를 소집하여 다블뤼(Daveluy) 신부를 그의 후임으로 삼았을 때였다. 그는 경상도 서북부지방을 맡아 전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곧 박해의 불꽃이 타올라, 2명의 주교와 7명의 성직자가 순교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요행히도 살아남게 된 페롱 신부는 한국 교회의 장상이 되어, 하나밖에 남지 않은 동료인 칼레(Calais) 신부를 중국으로 피신시키고 스스로는 한국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본국으로 송환된 그는 1870년 인도(印度)의 퐁티세리로 파견되었고, 그 뒤 30년간을 그곳에서 사랑의 복음을 전하다가, 젊은 시절 그가 봉사했던 한국 교회가 기적적으로 되살아나는 걸 보고 만족해 하면서 1903년 6월에 77세의 고령으로 선종하였다.
다블뤼(Daveluy, 安敦伊, 1818-1866)
프랑스 아미앵(Amiens)에서 출생하였다. 성 술피스 신학교(St. Sulpice Seminary)를 다녔으며 1841년 12월 18일 신부로 서품을 받았다. 1843년 다블뤼는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선교사가 되었고 1844년 2월 6일 해외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떠났다. 1845년 10월 12일 김대건 신부와 함께 충청도 강경(江景)의 황산포로 처음 조선에 들어왔다.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전교활동. 1856년에는 충청도 제천(堤川)의 배론 [舟論]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를 세웠다.
1866년(고종 3)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베르뇌 주교가 체포되어 3월 8일에 참수되자 그 뒤를 이어 제5대 조선교구장이 되었다. 하지만 교구장으로 임명된 3일 후인 11일 충청도 보령에서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 끝에 3월 30일 그도 갈매못에서 참수되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2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저서에 《신명초행(神命初行)》, 《회죄직지(悔罪直指)》, 《영세대의(領洗大義)》, 《성찰기략(省察記略)》이 있고, 역서에 《성교요리문답(聖敎要理問答)》, 《천주성교예규(天主聖敎禮規)》, 《천당직로(天堂直路)》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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