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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은 1801년 신유박해 때 복자 김정득 베드로가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한 마을이다. 대흥 봉수산 성지와 연고가 있는 순교자는 복자 김정득 외에 황 베드로, 백청여, 원지우 안드레아, 이 루도비꼬, 이 아우구스띠노 등이 있다.
복자 김정득은 예산에서 순교한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와 함께 ‘의좋은 순교자’로 알려져 있다. 두 순교자는 고향이 서로 달랐으나 공주 무성산에서 신앙생활을 함께 하다가 신유박해가 일어나 체포되었다. 그들은 예산, 홍주, 청주를 거쳐 한양까지 이송되며 여러 차례 형벌을 받으면서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고향으로 보내어 처형하라는 지시에 따라 1801년 8월 두 순교자는 예산까지 함께 내려왔으나 김정득은 대흥으로 보내졌다. 헤어질 때 둘은 “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라는 작별 인사를 했고, 약속대로 8월 25일 같은 날 순교하였다.
봉수산 정상에는 백제부흥운동이 있었고, 후백제 견훤과 고려 왕건이 최후 결전한 ‘임존성’이 있으며, 그 아래로 예당호가 보이는 휴양림이 있다. 성지 곁에 ‘대흥관아’가 있고, 그 안에 흥선대원군의 ‘척화비’가 있다. 임성아문(任城衙門) 앞에는 교과서에 실린 의좋은 형제를 기리는 ‘의좋은 형제 효제비’가 있다. 성지 옆에 ‘의좋은 형제공원’과 인접하여 ‘대흥옥’, ‘조리돌림 하던 저잣거리’, ‘순교한 참수터’ 등을 재현한 순교자 공원이 있다.
성지 미사
주일: 오전 11시
평일: 오전 11시(월요일 7시)
피정·식사 가능(사전 예약 필요)
대흥동헌 : 교우들이 심문과 고문을 당하며 배교를 강요당하던 장소. 동헌 뒤뜰에 척화비가 있음.
대흥 옥터 : 교우들이 가두고 배교나 순교를 선택할 기회를 주던 형옥터. 현재 대흥농협 창고터임
대흥 참수터 : 청양다락골에서 여사울을 향해 흐르는 무한천을 대흥 아사(衙舍) 앞에서는 내천(奈川)이라 불렀음. 예당호에 수몰된 내천변(奈川邊)이 조선시대 처형지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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